일반 산행/세종대왕자태실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군 태봉)

범산1 2024. 10. 22. 22:24

탯줄을 찾아서, 산길을 따라서

▲영암산, 검암산, 선석산, 비룡산이

물샐 틈 없이 태봉을 엄호하는 형국입니다.

 

Ⅰ. 프롤로그

 

영암산에서 선석산으로 흐르는 맥을 짚다가

용바위와 태봉바위에서 아랫녘 풍경에 빠졌지요.

 

아늑하고 포근한 품이 유년기를 떠올렸고

오랜만의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적셨네요.

 

현존하는 최고의 태실이 들어앉아 있다기에

언젠가 꼭 시간을 만들어 보리라 마음 먹었지요.

 

오늘, 합수점으로 향하는 길목을 빌미 삼아

어머니 품에 안기는 맘으로 태봉을 오릅니다.

 

Ⅱ. 발품 얼개

 

◈언제 : 2024년 10월 20일 (일요일).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

 

◈목적 : 풍수적으로 길지라 하기에, 맑은 기운을 쐬면 힘이 날까 해서.

 

Ⅲ. 세종대왕자태실 얼개

 

삼국시대 이래, 왕자의 출산으로 생긴 태반(胎盤)을 묻은 곳을

태봉(胎封), 태장(胎藏), 태실(胎室), 태묘(胎墓)라 부르며 관리해 오고 있지요.

세종대왕 왕자 태실지(사적 제444호)는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禪石山) 아래 태봉에 있는데, 현존 태실 중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이곳은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8왕자 중 장자인 문종을 제외한 17왕자와

세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있으며, 세종 20~24년(1438~1442)사이에 조성되었답니다.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에 조금의 가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Ⅳ. 세종대왕자 태실 입지

▲선석산 용바위만큼 테봉을 조감하기 딱인 장소는 없지요.

 

▲용바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흔히들 말합니다.

 

태봉의 모양새가 여자의 음부(陰部)를 닮았다고.

글쎄요, 여러분 눈에도 정녕 그렇게 보이시는지요.

 

▲앞쪽에서 선석산을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이네요.

경주 인근 오봉산의 女根谷을 조금은 닮지 않았나요.

 

Ⅴ. 세종대왕자태실 이모저모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7-7’를 입력했더니,

네비가 우리를 태봉 주차장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태봉 들머리 뒤로는

검암산이 아침햇살을 받고 싱글벙글이구요.

 

▲완만한 돌계단에서,

아이들 아장아장 걸음이 연상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탯줄은 연령상 아기들과 가까우니까.

 

▲사람들의 곡진한 마음이

돌탑으로 알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주군에는 맑은 기운이 많이 일어나는 고장인가 봅니다.

세종대왕자 태실 외에도 태종 태실, 단종 태실이 있는 걸 보니.

 

▲이곳 태실지는 원래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의 묘자리였다는데...

아마도 당시 세력의 판도에서 왕실에 밀려서 다른 곳으로 이장했겠지요.

 

▲태봉을 올라보면, 태실지는 두 줄로 나란히 누워 있지요.

 

앞쪽(우측)은 소헌왕후 소생 적손 대군들 태실 7기를 배치하고,

뒤쪽(좌측)은 후궁들이 낳은 서손 군들의 태실 11기를 배치했군요.

우측 줄 맨 끝에는 원손(元孫) 단종의 태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19기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나머지 5기는 비석이 사라지고 휑하니 받침대만 남아있습니다.

 

  이는 세조(수양대군)가 계유정란으로 집권한 후 그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형제들(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안평대군) 태실을 파괴했던 것이죠.

거기에, 자신의 태실 앞에만 다시 큼지막한 가봉비(加封碑)를 세워 두었구요.

 

▲現生에서의 거리가 태실에서도 적용되었나 봅니다.

수양대군과 원손(단종)의 거리가 극과 극에 위치해 있습니다.

 

▲반대편 끝자락에서 바라봅니다.

우측이 후궁 소생들 태실이고, 좌측이 중전 소생들 태실이 됩니다.

 

▲태봉 아래의 인촌지를 내려다보다가 뾰롯이 솟는 의문 하나.

 

분명히 여기 태실에는 세종의 장자인 문종의 태실이 없다는데....

단종의 태실을 포함하더라도 18기가 되어야 하는데 왜 19기일까?

 

▲어머니 뱃속에서 10달을 살다가 탯줄 끊고 나오는 생명은,

적서·신분을 떠나, 모두 귀한 존재임을 뼈속 깊숙이 새깁니다.

 

▲선석산, 선석사가 태봉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풍수가들이 말하기를 여기 태봉은,

蓮花浮水形이라고도 하고, 金鷄抱卵이라고도 합니다.

전자는 맑고 청정함을, 후자는 포근하고 따뜻함을 상징하겠지요.

 

Ⅴ. 세종대왕자태실을 떠나면서.

 

어머니 자궁 속에서의 10달을 생각합니다.

그 시간의 무게와 힘겨움을 계량해 보면

어느 생명인들 허투루 여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하찮은 욕심이 제도를 만들었지요.

누구의 뱃속에선 천민과 양반을 잉태하고,

누구의 뱃속에선 대군과 군을 잉태하였으니...

 

그 불합리한 차별성이 우습기만 합니다.

존재의 뿌리인 어머니의 신성함을 깨치고,

생명의 소중함을 한번 더 돋을새김합니다.

 

= 글을 읽어주신 귀한 당신, 늘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