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수산, 사람을 홀리는 마법의 산이었다. ▣

▲용바위봉에서 바라본 금수산 모습.
Ⅰ. 프롤로그
우린 모두 죽는다. 그건 가차없는 진실이죠.
시간을 이기는 인간은 이 세상천지에 없지요.
도연명은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이라 했고,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두 번의 새벽은 없다)
주희는 日月逝矣 歲不我延이라 설파했지요.
(해와 달은 계속 흐르고 세월은 날 기다리지 않는다)
공간이 시간을 이기고 살아남은 게 산이고,
고전은 시간의 시험에서 살아남은 작품이죠.
현실은 입체적이고, 삶은 계산대로 되지 않죠.
절망·희망이 병존하는 미래의 추상적 시공에
큰 울림을 주는 무늬를 그려넣고 싶답니다.
금수지맥을 찾는 건 그 작업의 일환이랍니다.
Ⅱ. 산행 얼개
◆언제 : 2026년 6월 14일 (일요일).
◆누구랑 : 범산 홀로 자유롭게.
◆어디를 : 〔금수지맥 둘째 마디〕
(결매령~작성산~동산~금수산~칠성봉~과게이재)
Ⅲ. 산행 지도 & GPS 파일


Ⅳ. 산행 흔적 & 느낌표 버무리기

▲강남 몇 만리를 단숨에 달려오듯 / 청제비인냥 오지야
철쭉이 피면 온다더니 / 라일락이 피었는데.
산을 찾아 길을 나선 이른 아침녘,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 새겨진 시 한 편이 가슴을 울립니다.

▲(단양군 적성면 적성로 819).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단장하고
금수지맥 결매령으로 향하는 들머리에 섰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깨고 싶구요,
산사랑의 열정을 바이러스처럼 산속에 퍼뜨리고 싶답니다.

▲작성산이 자신의 참한 모습을
산으로 들어가는 걸음 앞에 선물로 제공해 주네요.

▲중앙고속도로를 가뿐히 통과합니다.

▲한 번뿐인 삶, 그 여백을
산자락과 땀방울이 만나는 커리어로 설계하고 싶지요.

▲마지막 민가. 인기척은 없고,
제천터널을 들락거리는 차량소음만 귀청을 때립니다.

▲가풀막을 한 바리 올려치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즈음,
기다리고 있던 결매령이 짠 나타났습니다.

▲송전철탑 가랑이를 통과하는데,
바람 한 줄기가 자명종 울리듯 시원하게 불어주었지요.

▲본시부터 산꾼이어서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산을 오르다 보니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네요.
해서 건강한 나무들의 기운을 듬뿍 받는 복을 누립니다.

▲우리 산하 6월은 산딸기가 익어가는 시절입니다.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수직동굴을 만났습니다.
오랜 세월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 침묵이 흐릅니다.

▲언젠가 억센 비바람이 저 나무를 쓰러뜨렸겠지요.
원래 색깔도 모양도 없는 게 바람인데 심술이 과했나 봅니다.

▲산은 여러 방법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네 발로 기어오르는 코스를 마련해놓고 말을 걸고 있네요.

▲작성산 고스락은 우틀하여 200여m 지점인데...
백두사랑산악회에선 여기에다 정상표지판을 걸어두었네요.

▲작성산 고스락을 만나러 가는 중.

▲(작성산 고스락 풍경).
주변에 나무들이 둘러쳐 있어서 조망은 zero.

▲갈림지점으로 돌아와 마루금 여행은 계속됩니다.

▲산행을 통한 상상력이 우릴 키운다고 믿지요.
긴 세월,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산행이 내게 일으키는 가장 큰 사건은 ‘나의 확장’이지요.
내 영혼의 확장, 나를 담는 그릇을 무한하게 키우는 일입니다.

▲(까치산 부근 조망 1).
각 봉우리들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은 뛰고 있습니다.

▲(까치산 부근 조망 2).
치악(영월)지맥의 산들이 진한 추억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까치성산 고스락 풍경).
작성산, 까치성산. 같은 이름이요 같은 의미인데....

▲한 걸음씩 쌓아가야 할 마루금이 놓여있네요.
마찬가지로 건강은 돈으로 못 사죠. 매일의 선택이 쌓일 뿐이죠.

▲산은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네 인생의 핵심전략자산은 무엇이냐고,
무너지지 않는 몸과 마음이 최후의 무기가 아닐까 싶네요.

▲동산에서 충주호로 떨어지는 능선.
하늘에 곡진하게 선을 긋는 모습이 넘 아름답습니다.

▲(청풍호반 비봉산 전망대).
가족여행지 일번으로 꾹 찜해 놓았지요.

▲소나무 틈새를 비집고 두리번 두리번.
멀리 남근석이 위치하는 곳을 탐색해 보았지만 실패.

▲인생 변곡점을 실감하면서,
하나뿐인 내 몸의 소중함을 아로새깁니다.

▲(새목재 풍경).

▲동산 오르막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합니다.
귀한 건 멋진 산이 아니라 다가가는 발의 정성과 진심이라고.

▲산길은 해방감에서 비롯되는 사색의 마당이지요.
부자라도 개미보다 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해도 태산보다 큰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는, 우리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중봉 갈림지점).

▲운동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듯이,
습관의 힘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싱그러운 신록이 뿜어주는 에너지가
습관이 된 산행과 합심하여 가슴을 벅차오르게 합니다.

▲산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설렘과 배움을 주는 순례의 길이기도 합니다.

▲(동산 고스락 풍경)

▲무한 성장을 절대 가치로 믿고 질주하는 일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도가 아니라 나아갈 방향이 아닐까 싶네요.
아름다운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가짐이 필요하겠죠.

▲(헛돌이 주의지점). 돌탑이 주요 길잡이 역할.
시그널이 고맙게도 몇 개 붙어 있어서 걱정은 금물.

▲곳곳에 뿌리째 뽑힌 거목들이 눈에 띄네요.
노 젓는다고 해도 장강의 뒷물은 앞물을 밀어내기 마련입니다.

▲멋진 바위군들이 풍경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팽팽하게 깃든 기운을 통해 절실함이 넘치는 산행입니다.

▲이색풍경으로 목을 축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적셔 주지요.

▲산행은 산길의 분위기를 마시는 것이지요.
산길 풍경의 싱그러움은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속을 뚫어줍니다.

▲요즘 인기 좋은 쇼츠와 릴스가 아니라도,
산길에 깃든 고요함은 그린라이트를 켜게 합니다.

▲스릴 넘치는 바윗길이 나타났습니다.
망설임 없이 감촉의 세례를 쏟아부으며 스릴을 만끽했네요.

▲우측으로 공간이 열리고, 덩달아 눈과 마음까지 열립니다.

▲멀리서나마 금수산을 눈에 넣고 보니,
거리와 시간을 잊은 채 남부러울 게 없었지요.

▲월악산과 미인봉의 겸상 차린 모습이 정답게 다가옵니다.

▲앞으로 나란히!
조회시간도 아닌데 봉봉이 줄을 잘 맞추고 있네요.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대상이 산이지요.
올라설 땐 몰랐는데 뒤돌아보니 동산이 바로 그러합니다.

▲산속 풍경이 점입가경입니다.
소리가 없기에 마음속 감정의 함성이 더 큰 수화(手話)와 같네요.

▲산을 오른다는 건 산을 닮아가는 과정이죠.
좋아하는 것을 닮아가는 일에는 기한이 없겠지요.

▲오늘 구간에는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여럿 나타납니다.

▲발맛에 손맛까지 더하니 산을 타는 포만감이 하늘을 찌릅니다.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
능선에 홀로 서서 고독을 씹으며 철학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용바위봉과 단백봉이 살짝 열린 공간을 분할하고 있고.

▲(갑오고개 풍경 1). 산길을 걸으며 산에게 넌지시 귀띔합니다.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말해 줘. 너를 영원토록 닮아갈 수 있게.”

▲(갑오고개 풍경 2).
고갯마루에 내려서서 한 템포 숨을 돌리고 갑니다.

▲(갑오고개 풍경 3). 국립제천 치유의 숲 주차장이네요.
돌탑을 쌓듯, 건강도 소망도 단단한 기초 위에 더 높일 수 있는 거겠죠.

▲(갑오고개 풍경 4). 가끔씩, 아주 가끔씩.
산행 언어가 일상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오고개 풍경 5).
한 템포 멈췄다가 다시 산속으로 스며들 때면
몸 저 안쪽에 꼭꼭 숨어있던 에너지가 살아납니다.

▲길섶에 애기똥풀꽃이 함초롬히 피었습니다.
꽃말이 ‘몰래주는 사랑’이라는데,
갑작스레 내 좋아하는 박정만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 가는 길섶에는 한 송이 복사꽃도 피지 말아라
눈물겨운 새소리 하나라도
청송(靑松) 높은 가지 위에 앉지 말아라....

▲보편적 아름다움은 시공을 넘지요
나의 것인 동시에 그들의 것도 되는 아름다움.
지금 걷고 있는 이 산길이 바로 그런 아름다움 아닐까요.

▲좋은 작품은 시간의 시험에서 살아남는 작품이겠죠.
인간의 손에서 고전이라는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면,
조물주의 손에서 ‘자연’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는 거겠죠.

▲(용바위봉 고스락 풍경 1).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땀 흘리며 걸음품을 판 자에게 용바위봉은 열립니다.

▲(용바위봉 고스락 풍경 2).
생각하는 사람보다 움직이는 사람에게 경험은 쌓이는 법.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산이 제공하는 조망 선물을 만끽합니다.

▲(용바위봉 고스락 조망 1).
단양이 석회암 지대라서 그런지 돌광산이 많이 눈에 띄네요.
파헤쳐져 허연 피를 토하고 있는 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분법만 존재하는 것 같네요.

▲(용바위봉 고스락 조망 2).
삼태산과 태화산의 치악지맥을 걸은 기억이 까마득하네요.
흐르는 시간처럼 중한 게 또 있으랴 싶어 오늘이 소중해집니다.

▲(용바위봉 고스락 조망 3).
아, 백두대간만 생각하면 그리움에 울컥해지는데,
그 앞에서 천주봉이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손짓합니다.

▲(용바위봉 고스락 조망 4).
덕절산! 두악산! 낯선 이름을 불러봅니다.

▲(용바위봉 고스락 조망 5).
단백봉도 까마득한데, 그 뒤의 금수산은 어떻게 할거나.

▲(용바위봉 고스락 조망 6).
오늘 산행 내내 망덕봉은 살포시 얼굴만 내밀고 있네요.

▲지광스님이 세운 이정표.
개념도가 단출하고 명료해서 눈에 쏙 들어옵니다.

▲단백봉 오르기 직전의 넓은 분지가 안정감을 불러옵니다.

▲(단백봉 고스락 풍경 1).
점진적으로 가파르면서도 부드러운 단백봉 오름길이네요.
문득 풍성함에 초점이 맞춰진 산이란 느낌이 들었답니다.

▲(단백봉 고스락 풍경 2).
단백봉의 해발고도가 900m라서 900봉이라고도 하나 봅니다.

▲이 마루금 최고봉인 금수산을 향해서 설렘을 누르고 다가갑니다.
조금은 거칠은 산자락 상태가 오히려 마음을 홀리는 기폭제가 됩니다.

▲지맥을 걷다보면, 마루금을 인생에 비유하여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요.
산길처럼 인생의 미로는 생각보다 넓고 길은 생각보다 많음을 알게 됩니다.

▲눈을 맞춥니다.
폴리페놀 성분이 많아 항암작용을 한다고 알려진 일엽초에게.

▲단백봉에서 금수산 찾아가는 후미진 산길은
산사랑의 블랙홀이 되어 범산을 사정없이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꽃말이 ‘강인함’으로 알려진 가는잎그늘사초가 산길을 덮고 있고.

▲철책을 만나, 금수산 제도권 등산로에 진입합니다.
금수산 고스락을 알현하고 돌아와 좌틀할 것입니다.

▲맛뵈기로 살짝 전위봉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는 금수산이네요.

▲(망덕봉삼거리).
이정표상 300m거리는 축지법을 써서 표기한 듯.
아님, 지금 범산의 피로도가 누적돼 그렇게 느끼는 지도.

▲산행은 속도의 게임이 아니라 방향의 진정성 문제.
해방구를 찾아 떠난 이에게 속도 운운하는 건 넌센스지요.

▲금수산 고스락이 피안의 세계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지요.

▲금수산 고스락은 좀 더 가까워진 피안의 세계였지만,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믿고 땀방울로 불안을 잊고 싶었지요.

▲제목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대자연의 작품.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은 나약한 인간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지요.

▲(금수산 고스락 풍경 1).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린 고스락에서의 감동을 영영 그리워할 운명이려나 봅니다.

▲(금수산 고스락 풍경 2).
기록은 기억보다 훨씬 오래 가는 법이죠.
이 순간의 감동을 머릿속에 기록하듯 기억하고 싶답니다.

▲(금수산 고스락 조망 1). 오늘, 허옇게 패인 갑산은
자연보호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양 계속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금수산 고스락 조망 2).
삼태산 오르막은 치떨리는 가풀막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금수산 고스락 조망 3). 머리 위에선 햇빛이 반짝이는데,
멀리서 우르릉 쾅쾅 을러대더니 무지개를 시전하려 그랬나 봅니다.
이육사 시인은 역설적으로 무지개를 표현했더랬죠.
눈 감아 생각해보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라고.

▲(금수산 고스락 조망 4). 두무산 뒤에는
월악산 영봉이 발톱을 세운 채 구름속에 숨어있을 테고.

▲(금수산 고스락 조망 5).
금수산 망덕봉의 품새가 믿음직스럽네요.

▲(금수산 고스락 조망 6).
아름다운 산너울이 미인보다 더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상학주차장 방향으로 길을 잡고,
돌탑의 기운을 받으며 마루금을 이어갑니다.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기억한다는 말이 있지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산길을 밟고간 흔적을
사람은 잊어도 산은 기억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호젓한 산길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네요.
산자락에 홀릭되어 뭔가를 비울 수 있다면 성공한 거겠지요.

▲걸으면서 확인용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이렇게 걷다보면 진정 산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직진해도 길은 연결되지만, 좌틀이 마루금에 근접하는 길입니다.

▲(설금전망대).
전망대라고는 하는데, 썩 시원한 전망은 열리지 않는군요.
다만 금수산을 제대로 뒤돌아볼 수 있는 자리이긴 합니다.

▲마루금 여행에서는 한발짝 뗄 때마다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아야 헛돌이를 줄일 수 있지요.

▲직진은 상학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길이고,
맥꾼은 좌틀하여 마루금을 탐색하며 가야 합니다.

▲(남근석공원 풍경 1).
사유지 울타리인가 했더니, 남근석공원이었네요.

▲(남근석공원 풍경 1).
동산 자락의 자연산 남근석바위만큼은 아니라도,
실물과 흡사하게 만들어놓은 작가의 솜씨가 대단합니다.

▲(남근석공원 풍경 2).
구구절절 득남, 귀남 등등의 전설을 설파해 놓았는데....

▲(남근석공원 풍경 3). 서산대사의 선시를
남근석공원에서 만나게 되니 느낌이 색다르네요.

▲(남근석공원 풍경 4).
계획했던 시간보다 걸음이 많이 지체되어
시간에 쫓기는 신세가 되니 즐거움이 반감되었지요.

▲마루금이 찜찜하게 난해한 구간입니다.

▲동공을 활짝 열고 도리질하면서 먹어 치울 것처럼,
산행 앱과 실제 지형을 들여다보았더니 길이 보이더군요.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들 하지요.
현실을 견뎌내며 희망 한 줄기 붙잡고 싶어서 산을 파고 듭니다.

▲꼿꼿하게 뿌리를 박고 風葬의식을 치르고 있는
나무들의 장엄한 모습이 가슴에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제는 거의 다 끝나 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시커먼 놈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네요.

▲지난 구간 마당재산이 막판에 고약한 텃세를 부리더니,
이번 구간 칠성봉이 그 고약한 역할을 바톤터치했나 봅니다.
마음을 비우자고 생각하면서 이를 앙다물었지만,
죄없는 애꿎은 두 다리만 생고생을 하게 되었지요.

▲천신만고 끝에 오른 칠성봉은
흘린 땀방울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었는데...
이게 인생이려니, 이게 세상사려니 여겨야겠지요.

▲칠성봉은 오름길보다 내림길이 훨 가풀막졌지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와 힘들어간 스틱 손잡이에 의지해
한 마리 겁먹은 동물이 되어 미끄러지며 구르며 내려왔네요.
가풀막이 누그러지니 몇 년은 폭삭 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나이 들어보면 비로소 알게 되지요.
꿈을 좇아 줄달음쳤던 기억을 남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은 과게이재 날머리를 좇아 줄달음친 기억이 생생합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고, 차는 끊기고.
거금을 들여서라도 제천역에 대고자 하나
택시는 잡히지 않고 속절없는 시간만 흘러갔지요.
어찌어찌 제천역에서 대전행 막차(21:40)를 잡을 수 있었네요.
Ⅴ. 산행 기록

Ⅵ. 에필로그
산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 생각을 담는 틀.
산행은 건강을 챙기려는 몸짓이기도 하지만
그 거울에 비친 마음무늬를 살피는 과정이고,
산에 밴 산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죠.
산의 아름다움과 산꾼 열정이 잘 어우러지면
명대사와 배우 열연이 결합한 드라마가 되죠.
세상이 머리·입으로 관념적 사랑을 말할 때
산꾼은 산과 살을 맞대고 참사랑을 나눕니다.
구조선일지 신기루일지 모를 山 배 덕분에
오름짓엔 절망과 희망 틈새 절실함이 흐르죠.
금수산에서의 땀의 감동은 아직 현재진행형!
감동의 여운이 샘물 되어 목을 축여 줍니다.
== 읽어주신 귀한 당신, 늘 행복하세요. ==
'30km급 산줄기 산행 > 금수(매포서)지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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