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금 산행/왕령지맥

왕령(토평)지맥 3구간 (석리 임도~상리 임도~73.6m봉~합수점)

범산1 2024. 11. 10. 15:20

토평천이 낙동강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낙동강과 토평천의 합수점 풍경.

 

Ⅰ. ( Prologue )

 

살아간다는 건 기억을 연료 삼아 견디는 것.

배롱나무 껍질 벗듯이 기억을 살짝 벗겼더니

바랜 기억 속에 예의 토평천이 불려나왔구요.

멈췄던 산길 위에 걸린 빗장이 삐리릭 풀렸네요.

 

험한 세상을 걸어가듯 맥꾼은 산맥을 타고,

나무들은 어련번듯한 줄기로 품격을 세웁니다.

기적을 울리는 토평천의 분수령 열차를 타고

멈췄던 산길을 더듬으며, 합수점으로 향합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동지 여러분.

 

3. 어디를 : 석리 임도~상리 임도~73.6m봉~합수점(토평천,낙동강).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현위치는 큰당메산에서 400여m 지점의 임도.

토평천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들의 분수령입니다.

 

빗줄기와 시간에 쫓겨 다 끝내지 못했던 곳!

영암지맥을 끝내는 기회에 편승해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쩜 우린 매일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마무리하지 못한 기억이 늘 주홍글씨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다시 찾은 마루금에는 계절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합수점까지 5km 남짓의 거리, 탄탄한 임도가 이어집니다.

임도 좌우로 들락날락하는 마루금은 산꾼을 시험하는 잣대입니다.

 

▲산줄기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세월이라는 순간순간을 동력으로 운영되는 자연사 박물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인가.

눈앞에서 춤추는 임도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든 당근입니다.

 

▲큰 맘 먹고 임도 옆의 마루금으로 올라가지만,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임도와 만나게 되는 쳇바퀴 순환.

 

▲파란 하늘을 수놓고 있는 솔 무늬가

아름다움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려앉은 햇빛 사이로 꽃향유가 피어 있습니다.

꿀벌에게 꿀을 주는 밀원식물이 우리 가슴에도 꿀을 제공해 주네요.

 

▲500여m 거리의 듬밑산이 삼각점을 미끼로 유혹했지요.

‘봉 따먹기’의 유혹을 모질게 뿌리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순백의 구절초가 산자락을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줄기의 마디가 중양절에는 아홉 마디가 된다고도 하고,

중양절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 하여 구절초라고도 한답니다.

 

음력 9월 9일은 양수(홀수)가 겹쳐서 重陽節이라,

예로부터 명절로 치고 산에 올라(登高) 즐겼다고 하지요.

설날(1월1일), 삼짇날(3월3일), 단오(5월5일), 칠석(7월7일)과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걸으며 마음을 나누기 좋은 길이네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이 사진속에서 우러나면 좋겠습니다.

 

▲(상리 임도 갈림지점).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는 산길입니다.

아름다움의 아우라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사진이 불만입니다.

 

▲(현재 위치).

 

▲계속 임도만 고집하기엔 산꾼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지요.

우측의 마루금에 지남철처럼 찰싹 달라붙어 산길을 오릅니다.

 

▲우리는 지금 토평천의 서쪽 산울타리를 걷고 있습니다.

지금의 토평천은, 대동여지도 시절에는

‘큰물(낙동강) 동쪽 물길’이란 뜻으로 물슬천(勿瑟川)이었지요.

 

▲보통 산을 향한 사랑의 척도는 산에 대한 열정이라 생각됩니다.

이는 반박 불가능한 명제로서, 시간과 경제적 여건은 부차적 문제지요.

 

▲지금 걷고있는 이 마루금을 아우르는 토평천은,

화왕산과 열왕산에서 시작해 낙동강변의 梨旨浦까지 흐르지요.

 

▲토평천이 낳은 최고의 보물은 우포늪.

내륙습지 가운데 가장 큰 우포늪의 옛 지명은 누포(漏浦)입니다.

 

▲사랑꾼들도 실은 눈뜬 장님에 불과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산에 눈이 먼 산꾼들도 부단히 산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벽을 타고 올라 끝내는 제 세상을 만드는 담쟁이처럼,

온 힘을 다해 산경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말을 악착같이 찾고 싶습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산꾼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요.

막상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헉, 하는 감탄사뿐이니.

 

▲사진이나 영상은 하나 이상의 필터를 거친 이미지.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의 가슴 떨림, 그 감동의 눈빛을

직방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요.

 

▲임도는 우측으로 보내고, 마지막 봉(73.6m)으로 향합니다.

이생에서 첫 경험이니, 잊지 말아야지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

 

▲(현재 위치).

 

▲서툰 붓질과 같은 타박 걸음으로,

설렘을 한가득 안고 수풀을 헤쳐 오릅니다.

 

▲(73.6m봉 고스락 풍경).

맥의 기운이 옹골지는 혈 자리엔 묘지가 터잡고 있네요.

지맥 기운을 몰아 합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봅니다.

 

▲합수점을 몇 걸음 앞에 두고 보니,

가슴 속에서 뭉클뭉클 설렘이 피어오릅니다.

 

▲이 순간의 설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질되겠지요.

자주 만지면 금세 시들고 오래 두면 말라버리는 꽃처럼.

 

이 찰나의 순간을 사랑하자고, 그리고 홀연히 떠나보내자고, 자신을 다잡습니다.

 

▲山經의 마루금 열차를 타고 도달한 곳은,

일상의 연속선상에 있는 성산리 버스정류장입니다.

 

▲(성산삼거리).

토평천을 옆구리에 끼고 달려온, 능선의 궤적을 반추합니다.

왕령남지맥, 구룡분맥이라고도 하지만 토평지맥이 안성맞춤일 듯.

 

▲대동여지도를 믿고 달려온 토평지맥입니다.

대동여지도 상의 勿瑟川, 漏浦, 牛項山, 梨旨浦를 애정을 실어 불러봅니다.

 

▲토평천이 흘러 우포늪에다 물을 가두고,

다시 물길을 열어 낙동강을 향해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

 

▲유어교 근처의 옛지명은 이지포(梨旨浦)입니다.

 

▲梨旨浦!

토평천이 낙동강에다 몸을 푸는 어귀에 있는 나루의 이름이었죠.

 

▲합수점을 향해 조바심치며 도도히 흐르는,

물길의 등에 대고 초혼(招魂)하듯 불러봅니다. 토평천! 토평천!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낙동강 위로 가을빛이 햇살에 여물어 가는데,

산경표 시대의 대동여지도라는 계란을 가지고

GPS 시대의 마루금이라는 세찬 바위를 칩니다.

 

넘 고요해 지구 자전하는 소리도 들릴 듯한데

마른 가지 사이로 자맥질하는 바람풍의 숨소리.

거기 모든 걸 사소하게 만드는 품격이 있었지요.

 

설렘은 산자락을 죄다 일관되게 추상화시켰고,

낙동강과 토평천은 짠한 미학적 전형을 보였죠.

산줄기와 물줄기의 궁극은 합수점의 미학입니다.

 

== 이 글을 읽어주신 귀한 당신, 더 행복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