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수점, 물길은 흥하고 산길은 멸하는 곳이더라. ▣
▲독동리 반송의 단아한 모습.
Ⅰ. ( Prologue )
걸음걸음 꼭꼭 다지듯 산길을 밟아가는 행복.
폭풍을 헤쳐온 것처럼 땀에 흠뻑 젖는 즐거움.
절인 배추가 여름햇빛을 똑똑하게 기억하듯이
산꾼은 본능으로, 칼칼한 산공기를 기억합니다.
아침햇살을 정겹게 핥고 있는 산너울 앞에서
산꾼은 ‘기다리다 죽겠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산들을 향해 불같이 뜨거운 시선을 던지다가도
아기의 목욕물 온도 재듯 신중모드로 변합니다.
오늘, 영혼을 담글 곳은 낙동강·감천의 합수점.
그 위로 잔잔하게 번지는 윤슬을 스케치합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동지 여러분.
3. 어디를 : 주아현~형제봉~신산~금오고개~흰터고개~(반송)~람산~합수점.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생각보다 넓은가 봅니다.
대전에선 눈 씻고 보아도 눈구경을 할 수 없었는데...
주아현은 하얀 눈이불 속에서 부스스 깨어나고 있습니다.
▲눈은 고갯마루 老木에도 공평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온갖 풍경을 감추는 비밀처럼, 새하얀 거짓말처럼 소리없이.
▲눈은 능선의 낙엽 위에도 백설기처럼 뿌려져 있네요.
혼자만 아는 아늑한 카페처럼, 세상의 비밀도 소소했으면 좋겠네요.
▲땀 한 줌 흘렸더니 임도가 나타났습니다.
행여나 산허리를 놓칠세라 꽉 부여안은 폼새입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을 덮고있던 하얀 눈이 폴폴 날립니다.
바스락이는 박자에 맞추어 이 숨막히는 기쁨이 오래 가길 빌었지요.
▲왼쪽 멀리, 봉우리 하나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네요.
짝사랑에 빠진 헬기장봉이 형제봉에게 구애하는 포즈가 아닐까 싶고.
뭐 눈엔 뭐만 보이는 법. 이 산에 빠져있는 범산 눈엔 그리 보입니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봉우리는 형제봉입니다.
그리던 연인 앞에서 가슴이 콩콩콩 뛰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산’ 하나로 잘 통하는 공동운명체야.
앞질러간 산벗님들의 시그널이 산길에 새겨져 있습니다.
▲궁금한 건 하나입니다.
저 나무가 강한 걸까. 세월이 고약한 걸까.
▲(형제봉 고스락 풍경 1).
표지석 등은 한자로 새겨진 이름표를 달고 있고.
▲(형제봉 고스락 풍경 2).
표지석 얼굴은 한글로 새겨진 이름표를 달고 있네요.
▲(형제봉 고스락 풍경 3).
산불초소로 향하는 산길에도 눈은 하얗게 내렸습니다.
비봉산 형제봉이라, 대동여지도상의 비봉산이 여기겠네요.
▲(형제봉 고스락 풍경 4).
산불초소 감시원은 아직 출근 전인가 봅니다.
초소 안 가재도구가 주인 없이 밤을 지샌 눈치입니다.
▲아이젠과 함께하는 마루금 여행은 계속됩니다.
표지석 봉우리에서 내려섰더니 갈림길이 나타났고.
▲눈발이 날리면서 시야가 뿌옇게 변했습니다.
앞의 헬기장봉, 뒤의 神山이 줄을 서서 마중나와 있네요.
▲눈속에 낙엽을 감춘 산길이 심술을 부리고 있습니다.
난다 긴다 하는 산꾼들을 손바닥에 놓고 슬슬 기게 합니다.
▲산꾼에게 산자락은 한 권의 책과 같습니다.
그 책 이름은 절대 믿음을 심어주는 성서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을 보증하는 풍경을 선보이고 있네요.
▲산에만 들면 늘 운명적인 직감이 출렁입니다.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걸음걸음 내딛는 산길마다 첫눈에 반하고 맙니다.
산풍경과 연애하듯 걸어가다 보면 몸은 가벼워집니다.
▲헬리포트는 눈옷을 걸치고 침묵에 잠겨있고,
산꾼은 어린 시절의 들뜬 童心을 회상하면서 걸어갑니다.
▲무슨 용도일까요.
산길 옆에 도사리고 있는, 성인 키 두 길 정도 깊이의 구덩이.
▲솔향이 코끝을 스친다 했더니,
아, 지금 걷고있는 산길이 ‘솔바람길’이었네요.
▲산자락은 완벽한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나 봅니다.
순백의 눈가루를 뿌려 피가 도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갈등고개 풍경 1).
때가 되면 라디오에서 알려주는 반가운 時報처럼,
적당한 거리마다 나타나는 고갯길이 반가움을 부추깁니다.
▲(갈등고개 풍경 2). ‘아름다운 임도’에 덧대어,
우리가 걷는 마루금을 그려넣어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갈등고개 풍경 3). 혹시 압니까.
산을 연인처럼 좋아하면서 짝사랑에 푹 빠져들다 보면,
피그말리온의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은 아프로디테 여신처럼
산신령님이 산자락에 숨결을 불어넣는 기적을 만들어 주실지.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그림입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네요.
▲돌탑의 내공도 눈발로 인해 더 단단해졌겠네요.
▲정성은 운명적 호소력과 잘 어울리는 양념장 같은 것.
돌탑을 쌓은 분의 정성이 산자락에 가득 퍼지고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바위들 같아도
각각 자연의 질서 속에 자리하는 몫이 있으리니.
▲이 정돈된 아름다운 풍광을 일컬어,
사람들은 부처바위라 일컫고 있나봅니다.
▲부처바위의 내력에 관한 설명이 여러 가지가 있네요.
‘붙여진 바위’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
눈에 보이는 것처럼 범상한 풍경에 산꾼은 부르르 몸이 떨립니다.
▲오늘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 무지 반가웠네요.
산은 산으로 통하고 마음은 마음으로 통하나 봅니다.
▲저 벤치는 눈을 고스란히 맞은 채 누굴 기다리고 있을까.
▲쉼터에 평상이 놓였으니 그냥 갈 수는 없지요.
옆에 걸린 빗자루로 눈을 깨끗이 쓸어내고서,
이동식 주막을 오픈하여 생의 한 때를 꽉 채웠지요.
▲출발할 때 날리던 눈발은 점차 빗방울로 변했는데.
그래도 낙동강 건너, 도리사를 품은 냉산은 볼 수 있었네요.
▲산과 산사람은 톱니바퀴와 같은 운명적 만남이지요.
주야장천 일상과 산을 오가는 모습이 톱니바퀴를 연상시킵니다.
▲나무의 포즈가 무언의 메시지를 담은 듯한데.
넌지시 몸을 기울여 지나는 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그 메시지에 대한 응답으로 잠시 쓰담쓰담 손길을 줍니다.
▲긴긴 세월, 한 자리를 지켜왔을 나무입니다.
바람의 쏟아지는 말들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을 나무입니다.
▲(神山 고스락 풍경). 신들의 신성한 영역이어서 神山일까.
신들린 마음으로 산을 좋아하고 산을 닮으려는 우리들입니다.
▲기다렸던 신설을 밟으며 가볍게 걸어갑니다.
솟구치는 설렘을 보듬어 한올 한올 주워 담습니다.
▲(돌아보기).
지나온 발자취가 벌써 기억창고에 차곡히 쌓여 있습니다.
▲금오고개로 내려서는 길섶입니다.
잘 관리된 묘지 위로 무심한 정적이 흐르고 있습니다.
▲묘지로 통하는 길이 물 흐르듯 연결되고 있네요.
▲(금오고개 풍경 1). 명당의 개념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현대판 명당은 교통편리하고 자손들 접근이 용이한 곳 아닐까 싶네요.
▲(금오고개 풍경 2).
금오고개(59번 도로)에서 한 템포 조절하고 갑니다.
▲곧이어, 생태통로를 이고있는 33번 도로가 나타납니다.
▲생태통로로 내려서는 과정이 까칠하고 드라마틱합니다.
산사면에 미끄러운 철망이 깔려있어서 신경을 곤두서게 했지요.
▲내려설 때도 까칠하더니 오르는 가풀막도 까칠하네요.
생태통로가 생의 의미를 하나로 묶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삶과 죽음의 곡선을 은유하는 진리 아니냐고.
▲가풀막은 코 닿을 듯했고, 거칠기는 밀림을 방불케 했지요.
▲한 고비 올라서 돌아보았더니,
신산이 미소를 보내며 위로를 해줍니다.
▲마루금에서 100여m 벗어난 대현산을 만나러 가는 중.
▲대현산에서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산파고파의 기둥이신 희망봉님의 분신 때문이지요.
희망봉(258m)이 400여m 반경에서 유혹하고 있었네요.
▲멧돼지들 심장이 북처럼 울릴 곳,
노천탕에 살얼음이 살짝 깔려 있네요.
▲푹신한 솔밭길을 산책하듯이 밟아나갑니다.
진눈개비가 쏟아지는 산길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열린 산길로 산뜻한 산공기가 밀려옵니다.
짙은 흙냄새를 물씬 담고 있어서 기분이 정화되는 느낌.
▲이 산길을 언제 또 걸어볼 수 있을까.
너무 사랑해서 불안할 수도 있다는 걸, 산에서 배웁니다.
▲드디어 낙동강이 뿌연 視界를 뚫고 나타났습니다.
산줄기를 걸으면서 강줄기를 만나면 설렘이 폭발하지요.
산과 물은 음양의 구분처럼 분명하면서도 하나됨을 추구합니다.
그게 또한 산꾼이 합수점을 추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산자락이 영화 세트장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제 촬영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머지않은 시각.
마음은 둥둥 설레고 걸음은 훨훨 가벼워지는 시각입니다.
▲단역 배우로 결정적인 장면을 소화하는 중인데,
왼쪽 들판 너머, 풍경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흰터고개 풍경 1).
감독의 컷 소리 전까진 모든 걸 참아야 하지만,
배우가 촬영 중에 다른 꿈을 꾸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흰터고개 풍경 2).
눈길을 사로잡았던 풍경을 알현하고 가자고,
잠시 방향을 틀기로 다같이 마음을 모았답니다.
▲(현재위치 조감도).
▲(반송 풍경 1).
낙동강 건너편, 냉산은 도리사를 품고 비구름에 투항중인데,
낙동강 이편, 독동리반송은 꼿꼿하게 자리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반송 풍경 2).
천연기념물 제357호. 반송은 세월의 베테랑답게
의연한 자태로 현재의 시간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반송 풍경 3).
반송의 힘을 빌려 현실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네요.
흰 천을 풀어내는 몸짓으로라도, 원혼이 달래진다면 좋겠네요.
▲(반송 풍경 4). 반송의 저릿한 내공 앞에서,
떨림과 자부심과 그리움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답니다.
▲반송을 알현한 댓가로 잘라먹은 700여m 마루금.
아쉬운 눈길에 담긴 의미를 산신령님도 이해하겠지요.
▲(화조리 고개 풍경 1).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타났다고, 마루금이 흘겨보는 듯했지요.
▲고향에 돌아온 듯 맥길에 다시 붙었더니,
가슴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친근한 산공기가 밀려들었지요.
▲(화조리 고개 풍경 2).
산자락은 두려우면서도 동경의 대상입니다.
산은 발로 오르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오르는 것이죠.
▲산길 왼쪽에 자리한, 높은 담장의 독립지사 묘역.
▲(돌아보기).
독립지사 묘역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반추해봅니다.
깔끔하지 못한 날씨가 조망을 즐거움을 반감시킵니다.
▲(151.7m봉 풍경 1).
151.7m봉은 람산(藍山)의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151.7m봉 풍경 2).
大谷亭은 람산 직전의 터에서 산길의 맥을 길라잡고 있었지요.
▲(151.7m봉 풍경 3). 진격하듯이 걸음을 뗍니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주산격인 람산으로 향합니다.
▲오르는 발걸음 사이사이,
침묵을 뚫고 설렘이 파고들었지요.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람산 개념도).
▲(藍山 고스락 풍경).
▲제1전망대(람산봉수전망대)는 람산 고스락에서 100여m 거리.
▲(제1전망대 풍경 1).
藍山은 경성에 올라가는 다섯 熢火線 중 東萊線에 속하는 곳.
▲(제1전망대 풍경 2). 지금 봉수대의 제1역할은,
오롯이 낙동강과 합수점을 바라보는 전망대의 최적장소.
▲(제1전망대 풍경 3). 전망대 주변이 단풍일색입니다.
단순함과 아름다움은 서로 맥이 통하는 극단의 엣센스입니다.
▲(제1전망대 조망 1).
꾸무리한 날씨가 제1전망대 역할수행을 훼방놓고 있습니다.
도리사를 품은 冷山(태조산)의 그림자조차 어림하기가 힘드네요.
▲(제1전망대 조망 2). 가슴이 무지 답답해집니다.
안개비에 포획된 낙동강 건너편, 팔공지맥의 산들이여.
너울대는 산너울의 아름다움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네요.
▲(제1전망대 조망 3). 이 사진 한 장 건진 걸로 만족합니다.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餘次里津은 낙동강·감천의 합수점이었습니다.
강정습지를 휘돌아 우렁우렁 흘러가는 물길이 대차게 보입니다.
▲합수점으로 향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심플한 대답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날아갈 것 같다고.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도 괘념치 않지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이 아무리 거칠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돌아보기). 앞으로 피가 끓을 때마다 ,기억속에서,
마약 같은 藍山에서의 기쁨을 기꺼이 꺼내 떠올릴 것입니다.
▲삶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한계적 존재이기에,
각각의 마루금과의 헤어짐은 매번 마지막일 수밖에 없습니다.
▲합수점으로 향하는 길섶에 펼쳐진 낙엽평원은,
유행가 가사에 나올 법한 색깔 바랜 초원을 연상시킵니다.
▲날머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고무적인 사실은,
날카로운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흐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막판의 야생상황은 달콤한 불확실성을 내포한 당근이지요.
▲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합수점!
산꾼은 산을 만날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지요.
▲합수점 주변을 파크골프장이 점거하고 있네요.
산과 사람 사이에는, 산줄기와 물줄기 사이처럼,
‘영원’ 같은 이상적인 단어는 성립될 수 없는 거겠지요?
▲(합수점 주변 풍경 1).
합수점에서 강은 보이지 않고 팔공지맥의 산들만 줄 서 있네요.
왼쪽 멀리 만경산이 먼지 낀 옛추억을 끄집어내 울먹이게 합니다.
▲(합수점 주변 풍경 2).
팔공지맥 냉산은 끝까지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산꾼은 산행 대부분의 시간을 산의 이야기를 듣는데 할애합니다.
▲(합수점 주변 풍경 3).
강 건너 올록볼록한 베틀산群의 너울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선산도호부 山川’편에 나오는,
李奎報의 시 구절을 떠올리는 것으로 산행 마무리를 대신합니다.
한바탕 웃으니 만사가 떠도는 티끌 같구나(一笑萬事如浮𠤘).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송년 산행. 기쁘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하죠.
변곡점에서 떠밀리는 듯해 두렵기도 하고요.
고루하지만, 그걸 이기는 건 사랑밖에 없겠죠.
사랑 실은 걸음 덕에 세월은 탈없이 흐릅니다.
람산 봉수대의 찰진 서사가 그걸 증명했네요.
둥둥둥. 심장에서 아득한 북소리가 울립니다.
합수점에서의 황홀감이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그 경쾌한 짜릿함은 유령도 통과 못할 겁니다.
뇌리에 남은 산너울의 잔상들이 늘 아쉽지만
그건 다음을 기약하는 달콤한 가슴떨림이겠죠.
== 읽어주신 귀한 당신, 소중한 시간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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