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용산을 오르면서 부용꽃의 생명력을 생각하다. ▣

▲사정고개 직전 능선에서 바라본 부용산 모습.
Ⅰ. 프롤로그
붉은 꽃송이
붉은 꽃송이
달빛 아래 붉은 꽃송이
누가 꺾어다가
주었으면
주었으면, 주었으면,
달빛 아래 붉은 꽃송이
꺾어다가, 주었으면,
임의 손에 주었으면.〔부용꽃(芙蓉花). 김소월〕
김소월 님의 시로 산행기의 문을 엽니다.
‘芙蓉薺月(부용산 비 개인 하늘에 뜬 달)’.
이는 笙洞八景 중 하나로 꼽는 테마지요.
부용꽃처럼 생겼다는 부용산을 생각하면서
부용지맥 산행의 주제를 물색해 보았네요.
아름답기만 하면 구미를 당기지 못하지요.
부용의 생명력·회복력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Ⅱ. 산행 얼개
◆언제 : 2026년 1월 25일 (일요일)
◆누구랑 : 어처구니 님, 주산자 님, 범산.
◆부용지맥 첫째 마디 : (약11.2km)
(분기봉-감우재-사정재-부용산-못고개).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이모저모 & 느낌표 버무리기

▲계류보전溪流保全)?
부용지맥 분기점에 대려면 일단 한남금북정맥에 접속해야겠죠.
큰곰집(음성읍 감우리 137-3)에서 오르다가 이 글 표지석과 맞닥뜨렸지요.
계류? 참 어려운 말을 쓰고 있네요. ‘계곡물’이라고 하면 될 것을.
계곡물 유속을 줄이고 토사 침식 방지를 위한 사방사업이라는데....

▲체감온도 영하10도를 상회하는 쌀쌀한 날씨.
갓 떠오른 일출의 기운이 언 몸을 자극하며 깨우고 있었네요.

▲(승주고개). 한남금북정맥에 접속합니다.
한남금북정맥에서 몸을 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부용지맥 분기봉에 접속하기 위해 좌측 능선에 붙었지요.
한금정맥의 보현산과 소속리산 사이 477m봉이 부용지맥 출발점.

▲과거의 발자국은 기억하지 않으렵니다.
과거만 붙잡고 있으면 결국 거기 나만 남는 거니까.
과거는 묻고 지금 걷고 있는 생생한 산길만 보고 오르리라.

▲찬 공기를 뚫고 눈부신 햇살이 산자락에 분사되고 있습니다.
일평생을 걸어 증명해야 하는, 산과 삶 사이의 거리 좁히기입니다.

▲(부용지맥 분기봉 풍경 1).
여기가 한남금북정맥임을 산림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네요.

▲(부용지맥 분기봉 풍경 2).
만인이 평등하듯이, 모든 산길도 평등하지요.
사람으로 쳐도 상하가 없듯이, 산길로 쳐도 윗길은 없습니다.
정맥길이든 지맥길이든 상관없이 마음 열어놓고 걸어갈 겁니다.

▲(부용지맥 분기봉 풍경 3).
감우리에 대한 피상적·행정적 설명만 있네요.
감우(甘雨), 즉 단비가 내리는 마을이 핵심 아닐까.
감우재로 내려가는 단빛 내리쬐는 산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마루금 출발선에서 확인합니다.
살을 에는 듯한 짜릿한 강추위는 현실을 말해주고,
흰 눈과 낙엽이 버무려진 산길은 진실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감우재로 향하는 발걸음에 시선을 얹어봅니다.
좌측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멀리 부용산이 마중나와 있네요.

▲공평하게, 우측으로도 시선을 던졌더니,
거기, 가섭산이 듬직한 모습으로 반겨줍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맑은 마음을 심어줍니다.
이런 날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도움 없이도
나름 마루금으로 향하는 꿈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우재 내림길 조망 1).
눈 앞에, 오늘 걸어가야 할 산길이 오붓하게 전시되어 있네요.

▲(감우재 내림길 조망 2).
가섭산이 마술을 하는지, 금새 멀어져 있구요.

▲(감우재 내림길 조망 3).
가막산 근처의 소위 갑산단맥 산줄기도 어림해 봅니다.

▲(감우재 내림길 조망 4).
풍경을 클로즈업 하면, 산이 가슴으로 확 파고들지요.

▲(감우재 내림길 조망 5).
능선에 즐비한 나무들 창 사이로 세상이 부시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감우재 내림길 조망 6). 돌아보면,
분기점에서터 걸어온 벌목능선이 알몸으로 애교를 부리네요.

▲무극전적국민관광지가 자리한 감우재를 내려다 봅니다.
지금은 무심한 역사의 관객 입장으로 바라보지만,
당시 치열했을 전쟁을 생각하면 현실의 소중함에 더 집중하게 되지요.

▲우측 배수로를 따라 고갯마루로 내려서고.

▲(감우재 풍경 1). 생음대로와 음성로.
두 도로를 횡단하기가 조금 부담으로 다가왔지요.

▲(감우재 풍경 2). 도로 우측으로 턴해서 소여교차로에서 좌틀.

▲(감우재 풍경 3). 산행에서 제일 원칙은 안전이죠.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한 자임을 산행과정에서 배웁니다.

▲(감우재 풍경 4).
자연을 소생시키는 단비가 내려야 할 감우재가
오늘은 파란하늘을 이고 달디단 햇살을 쬐고 있네요.

▲(감우재 풍경 5). 감우재전승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첫 승리를 거둔 음성지구전투를 기념하는 공간.

▲(감우재 풍경 6).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깝게 청춘을 바쳤던 이들이여,
오늘 어줍잖은 산쟁이가 랭보의 시 구절을 읊조리는 건,
역설적으로 현재가 상처 많은 님들 덕분임을 새기기 위함입니다.

▲기념관 뒤켠으로 둘레길 수준의 산길이 열려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 손바닥 위에는,
24시간 닫히지 않는 ‘디지털 窓’인 스마트폰이 놓여있지요.
심지어 산행도 GPS앱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지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앱이 아닌 육안으로 마루금을 판독하려고 기를 쓰곤 합니다.

▲감우재에서 사정고개로 향하는 마루금 곳곳에서
미끈한 부용산이 짠! 하고 나타나 눈요기를 시켜줍니다.

▲산에만 들면 힘이 솟아오릅니다.
산은 범산을 살게 하는 의욕의 근본입니다.
이 산사랑, 완전하게 통역이 가능할까요?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산을 오릅니다.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현대문학의 거장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창조적 변화의 도구로 ‘새로운 눈’을 꼽았지요.
진정한 여행이란 새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 눈을 갖는 것이라고.
늘 설렘과 해방감을 안겨주는 산행을 통해 새로운 눈을 장착하고 싶답니다.

▲(385,3m봉 고스락 풍경).

▲(385,3m봉 조망 1).
산림욕장과 용산리저수지를 품은 봉학산이 들렀다 가라고 속삭이고,

▲(385,3m봉 조망 2).
가섭산은 주변 산들과 합작하여 V자 너른 공간을 펼치고 있습니다.

▲(385,3m봉 조망 3). 시력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 너른 공간 속에 월악산 영봉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사정고개 풍경 1).
가섭지맥 시작할 때 밟았으니, 사정고개는 구면이네요.

▲(사정고개 풍경 2).
생태통로 하얀 눈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고 갑니다.
괜찮다는 어줍잖은 마음속에 모든 걸 묻어두고 갈 수밖에.

▲2년 전에도 똑같은 울타리와 경고문이 붙어있더니....
방목장 울타리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알몸을 드러낸 겨울나무들 사이를 허허롭게 걸어갑니다.
계절에 따라 산길을 걸으며 흘리는 웃음의 의미가 다른 것 같네요.

▲걸음걸음에 일상의 마음을 털어내며,
좋아하는 산길에 고단한 삶을 녹여냅니다.

▲살인적인 가풀막인데,
사진이 그 느낌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한여름 가섭지맥 시작할 때보다는 수월했네요.

▲가섭지맥을 시원섭섭하게 떨구어내고,
새로 시작하는 심정으로 산길을 밟아갑니다.

▲객쩍은 구호나 쓸데없는 자존심은 던져 버리고,
그저 산자락 풍경에 몰빵하여 자신을 잊고 걸어갑니다.

▲이정표에서 ‘정상’은 부용산을 의미할 텐데...
바로 코앞처럼 보였는데 실제는 2.2km가 되나 봅니다.

▲거짓말이 표준말처럼 되어가는 세태가 답답하지만,
자연은 푸른 하늘로 답하면서 세태를 비웃고 있습니다.

▲(496.6m봉).

▲이 청명한 겨울날,
앙상한 나뭇가지들 호위를 받으니 천지가 아득해집니다.

▲돌아보다가 언뜻 눈에 띄는 봉우리가 있어,
산자락을 읽어보았더니 출발지점인 보현산으로 확인됩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각각 독립 개체인 듯,
산자락 전체가 꽉찬 느낌으로 포만감을 줍니다.

▲가섭산도 심심할 만하면 멋진 모습을 보여주네요.

▲사람에게 자리가 있고 때가 있듯이,
자연에게도 계절이라는 변수에 따라 옷을 갈아입기도 하지요.

▲(503m봉 고스락 풍경). 무명봉에 산패를 달고
이름없음의 무관심을 떨치게 하는 분들 노력도 대단하지요.

▲(478.4m봉 고스락 풍경).
코앞에 보이는 부용산의 까마득한 높이가 기를 팍팍 죽입니다.

▲부드러운 육산 느낌이던 산이 바위산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산사랑은 짝사랑일까요?
산에 듦으로서 많은 위로를 받는 걸 생각하면 짝사랑만은 아닐 테지요

▲부용산 오름길에 터를 잡고있는 멋진 소나무.
아름다운 아우라가 풍경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부용산 오름길 조망 1).
걸어온 마루금이 물 흐르듯이 꿈틀댑니다.

▲(부용산 오름길 조망 2). 큰산이라고도 불리는 보덕산.
한 때 유명인사의 생가가 있다고 해서 꽤 유행을 탔었지요.

▲(부용산 오름길 조망 3).
두타산의 하늘금이 멋진 아우라를 풍기고 있습니다.

▲(부용산 오름길 조망 4).
소속리산 능선의 멋진 소나무 군락이 그립네요.

▲부용산 고스락 부근,
산불감시탑을 타고 올라간 덤불이 행위예술을 하고 있네요.

▲(부용산 고스락 풍경 1).
부용산 인기가 좋은 걸까요. 정상석이 3개나 세워져 있네요.

▲(부용산 고스락 풍경 2).
철제함으로 만든 방명록 보관함 속에는
서너 권의 노트가 많은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부용산 고스락 풍경 3).
부용산은 부용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혹시 김소월 시인의 ‘부용꽃(芙蓉花)’를 아시는 지요?

▲겨울은 실제적인 추위와 더불어 일종의 은유로도 작동하지요.
살을 에는 한파는 우리 속의 얼음을 깨는 도끼가 된다고 역설합니다.

▲뿌리째 뽑혀 산풍경의 일부가 된 나무가 가르쳐 줍니다.
외부의 가혹한 환경은 오히려 내밀한 보물을 발견하게 해준다고.

▲삭막한 겨울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 안에는 늘 그리운 무적의 여름이 자리잡고 있음을.

▲겨울 산풍경은 동면을 대변하는 무채색이지만, 늘 희망적이지요.
겨울과 봄은 연결되어 있음이, 봄은 모두에게 반드시 올 거라는 사실이.

▲(292.2m봉 고스락 풍경).

▲한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어낸 거목들을 보면,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님을 실감합니다.
과거의 퇴적을 선택적으로 사랑하거나 미워하진 말자 자신을 다독거립니다.

▲올라야 할 수레의산(車依山)이
반듯하고 가파르게 하늘을 찌르고 있네요.

▲말이 많다는 건 정곡을 찌르는 말이 적다는 의미이기 쉽고,
기도가 길다는 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쉽죠.
내림길에서 마음이 편치 않음은 뭔가 변명거리가 생겼단 뜻이기도 하죠.

▲10시간을 기다려도 10분을 기다린 것과 같아야 함이 기본인데,
우린 필요 이상으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답니다.

▲(못고개 풍경 1).
오늘의 계획은 수레의산 너머 숭선(능안)고개까지였지요.
아직 남은 거리가 10여km(4시간). 변명거리가 쌓여갑니다.
시간상 일몰 전에 끝내기 어렵고, 중탈할 지점이 마땅찮고...

▲(못고개 풍경 2). 입장 난처한 표정 하나 떠올려야 한다면,
못고개, 수월 버스정류장 앞에서 짓던 표정을 떠올릴 것 같네요.
우리는 살갗을 비비면서 1시간만큼이나 긴 10분을 기다려야 했지요.

▲마루금 읽기보다 더 난해한 버스정류장 시간표입니다.
Ⅴ. 산행 기록.

Ⅵ. 에필로그
산이 던져준 숙제가 새해 이정표가 됐네요.
산하 곳곳 혈관처럼 포진한 마루금 밟기.
산자락에 들면서 줄기차게 한 생각을 했지요.
부용산을 딛고 한강·달천 합수점을 밟아보자고.
산의 눈과 산의 심장으로, 이 세상 바라보기.
산속 나무, 꽃, 돌들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먼지 낀 일상을 털고 산과 함께 끄덕였지요.
마루금을 삶의 블루칩 삼고서 살아가기.
가속·번잡을 떠나 느리게 산을 오르면서,
새 풍경보다는 새로운 눈을 갖고 싶답니다.
== 읽어주신 귀한 당신, 항상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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