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m급 산줄기 산행/화원지맥

♠화원지맥 1구간 (첨봉~덕음산~우슬재~만대산~금강재)

범산1 2026. 3. 11. 23:19

꽃피는 춘삼월에 남녘의 花源을 거닐었네.

▲깃대봉 능선에서 돌아본 풍경.

 

Ⅰ. 프롤로그

 

대륙에서 바다 쪽으로 좁다랗게 돌출한 육지.

삼면이 바다로 싸이고 한면은 육지에 이어진 땅.

육지가 바다로 돌출해 삼면이 바다로 싸인 지형.

 

‘반도(半島,peninsula)’의 인터넷 검색 정의는

NAVER, Daum, Google이 거의 비슷합니다.

산행기 하나 때문에 ‘반도’에 집착하고 있네요.

 

한반도는 큰 반도, 화원반도는 작은 반도.

한반도 꼭지점 백두에서 시작된 산줄기 따라

산파고파는 남녘 땅 화원반도로 출타합니다.

 

Ⅱ. 산행 얼개

 

▶언제 : 2026년 3월 8일 (일요일).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

 

▶어디 : 〔화원지맥 첫째 마디〕

  (첨봉~구룡목재~덕음산~우슬재~만대산~금강재).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 느낌표 버무리기

▲동물들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만들어놓은 생태통로.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이곳은 바람재(일명 자경고개)랍니다.

 

땅끝기맥에서 갈래치는 지맥다운 아름다운 산줄기,

기분 좋은 화원지맥을 시작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화원지맥의 출발점인 첨봉으로 향하는 산길입니다.

땅끝기맥에서 분기하는 첨봉에 올랐다가 돌아올 겁니다.

 

길을 내느라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기는 한데,

역시 듣던 대로, 한 걸음 딛기가 힘들 정도로 소문값을 하네요.

 

▲사람들은 낯선 장소에 갈 때마다 자신 흔적을 찾지요.

자신과 산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때면 횡재한 기분이 듭니다.

 

▲반질거리는 일반적인 산행 코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의 지도를 펼치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마련이죠.

 

유명한 랜드마크만 찾아다니는 산행을 지양하면,

뿌리까지 다 드러낸 특이한 나무를 만나는 행운도 따라옵니다.

 

▲(첨봉 풍경 1).

10년 만에 해후한 첨봉의 모습, 기억 속에선 가물가물합니다.

 

▲(첨봉 풍경 2). 첨봉이 감투를 여럿 쓰고 있네요.

‘남도 오백년 역사숲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자락길’.

 

산사람들에게 첨봉은

땅끝기맥, 화원지맥 마루금으로 더 친하게 다가옵니다.

 

▲(첨봉 내림길 조망 1).

주작산을 필두로 땅끝기맥 마루금이 우람차게 달려나오네요.

기억 속의 산 지도가 마루금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첨봉 내림길 조망 2).

두륜산이 역사와 관광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면,

공룡능선은 우리의 관심사와 연결되어 특별한 장소가 됩니다.

 

▲(첨봉 내림길 조망 3).

잘 생긴 두륜산은 10년의 세월에도 변함이 없네요.

우리에게 산은 친구와 동료를 넘어 삶의 일부입니다.

 

▲(첨봉 내림길 조망 4).

오늘 걸어갈 산줄기가 상견례를 자청하며 명함을 내밀고 있네요.

 

▲오를 때는 몰랐는데 내려갈 때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오네요.

우리는 같은 곳에 있지만 각자 다른 지도를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산을 통해 낯선 곳이 우리와 연결됩니다.

생태통로가 가까워짐에 따라 풍경이 달라보이네요.

 

▲(생태통로 상단 풍경).

동물들이 통과하기에도 힘들 만큼 야생이 살아있습니다.

 

▲00을 좋아하세요? △△을 아세요?

젊은 시절, 이성 친구를 꼬실 때 쓰는 작업 멘트 중 하나였죠.

관심사를 들이대고 공동관심사를 만들어보자는 제스처였지요.

 

멋없게도, 제게는 그 관심사가 오롯이 산뿐이었다네요.

 

▲(388.3m봉).

이름없는 봉우리에 준희 님이 명찰을 달아주셨네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꿔야겠지요.

산길은 지독한 험로였지만 마음은 꽃길이었습니다.

 

▲가풀막 산중턱에 웬 돌들이 층층 이리 쌓여있을까.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와르르 쏟아져 발목을 잡네요.

 

▲건들재 건너,

저 봉우리(388m)가 유독 설렘을 유발하는 연유는?

 

▲사진상으로는 참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실제는 살 떨리는 내리막 경사라 신경이 곤두섰지요.

 

요즘은 현실이 너무 극단적인 경우가 많아서

글에 현실을 반영하면 개연성이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기기도 하죠.

 

▲(건들재).

 

▲잠시 얄팍한 아우성이 있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처럼 ‘구독 취소’ 하고 딴 세상을 구독하고 싶다는.

 

기왕 쉽고 편안한 지름길(임도)이 뚫려 있으니

맥꾼 양심이 많이 찔리지만 388m봉은 접고 가자고...

 

▲(임도길 조망 1). 임도파에 합류했는데...

다행일까요. 과분하게도 멋진 조망이 선물로 주어졌네요.

 

▲(임도길 조망 2).

멀리 월출산이 다가와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 줍니다.

 

▲다시 마루금에 접속해 상처난 양심을 다독거립니다.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훔쳐내는, 마음건강의 충전재입니다.

 

▲마루금 좌우로 망자들 음택들이 즐비하네요.

요즘은 현실이 픽션(fiction)보다 더 가짜 같은 세상입니다.

 

▲병오년 해가 밝은 게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새 달력의 세 번째 장이 넘겨졌습니다.

 

▲삼월은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

미뤄두었던 일, 지금이 기지개를 켤 시간인 것 같습니다.

 

▲산자락의 신비,

그걸 몇 마디로 단정하기는 벅찬 감이 있지요.

 

마삭줄천지와 빽빽한 대나무숲을 통과하여

햇빛 아래로 나왔더니 대명천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자연 속 시간은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을 증가시켜 줍니다.

깊은 샘물처럼 목마름을 적셔주고, 축 처진 어깨를 되살려 주지요.

 

▲(구룡목재).

물좋은 가재골, 상가마을, 상가저수지.

도파민 증가 요인이 널려 있어 기분이 날개를 달게 됩니다.

 

▲하늘을 담고있는 상가저수지는

대둔산 자락을 배수의 진으로 거느리고 있고.

 

▲정월 대보름 당산제를 지낸 상가마을 담벼락에는

마을 주민들의 할짝 핀 함박웃음이 잔뜩 걸려있습니다.

 

▲마을 보호수인 300년 수령의 팽나무.

 

▲당산나무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며 세월을 채우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길 무덤 옆의 종려나무 한 그루,

프랑스 시인 고티에(Theophile Gautier, 1811~1872)의

「비둘기떼」 싯구가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저기 무덤 흩어진 언덕 위에는

푸른 깃털처럼

머리를 쳐든 종려 한 그루.

해거름이면 몰려 온 비둘기 떼

보금자릴 들고 몸을 숨기지.

 

하지만 아침이면 그들은 가지를 떠난다.

알알이 떨어지는 목걸이인가.

푸른 하늘로 하얗게 흩어지는 비둘기 떼

보다 먼 어느 지붕 위에 나랠 접는다.

 

내 영혼은 한 그루 나무.

밤마다 비둘기 떼처럼 무릴 지어

하이얀 꿈의 영상이 하늘에서 내린다.

나래를 파닥이며.

아침 햇살에 날아가는 꿈의 영상이...

 

▲(돌아보기).

띵가먹은 388m봉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범벅이 되네요.

 

▲현실에서의 지위가 의미를 잃는 곳이 산자락입니다.

오직 호흡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죠.

 

▲농사를 지었던 곳일까요 집터가 있던 곳일까요,

계단식 층계를 이룬 지형이 세월의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저 모습은 공생일까요, 일방적 갑질일까요.

 

▲(184.5m봉)

 

▲(덕음산 갈림지점). 지도상에는 덕음산(덕룡산)이 둘.

좌측(327m)봉과 우측(416m)봉. 일단 좌측봉으로 향합니다.

 

▲마루금에서 벗어난 산길은 덤이라는 선물이죠.

모든 과정에서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은 큰 복입니다.

 

덤이라는 경험은 무엇보다 강한 삶의 동기를 부여해 주지요.

 

▲(덕음산<327m> 고스락 풍경).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준희 님의 산패가 걸려 있었는데...

산패는 사라지고, 이종훈 님의 빛바랜 시그널만 흩날리고 있었네요.

 

▲갈림지점으로 돌아오면서 바라보니,

지도상의 다른 덕음산(416m)이 더 높게 솟아있네요.

 

▲갈림지점으로 돌아와 마루금을 따라 오르다 보면,

좌측 길섶의 전망바위가 공간을 넉넉하게 열어놓고 있습니다.

 

▲고산 윤선도의 집터였던 해남윤씨 녹우당(綠雨堂) 일원.

덕음산과 서당산의 비호를 받으며 터를 잡고 있는 풍경이네요.

녹우당 박물관에는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도 보관되어 있다지요.

 

▲힘을 툭툭 빼서 가볍게 오르다 보면,

산은 걷는 사람에게 숨 쉴 구멍을 더 크게 열어줍니다.

 

▲겨울을 배웅하고 봄을 마중하러 나선 길입니다.

산을 오르면 일상에서 뭉쳤던 응어리가 산산이 풀어지지요.

 

▲(416m봉 풍경).

잎들을 떨구어내고 비워냈던 겨울산이 한발짝 물러나고

시나브로 생명의 물을 길어올리는 봄이 다가서고 있습니다.

 

오늘 구간 최고의 조망처에 올라서

푸른 하늘을 이고 봄기운을 남부럽지 않게 만끽합니다.

 

▲(416m봉 고스락 조망 1).

오늘은 다음 구간의 금강산이 우리들 희망봉입니다.

 

▲(416m봉 고스락 조망 2).

화원지맥의 최고봉인 만대산은 겸손을 가르쳐 주고.

 

▲(416m봉 고스락 조망 3).

월출산과 서기산은 땅끝기맥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416m봉 고스락 조망 4).

다산초당을 품고있는 만덕산은 곡선미를 자랑하고,

 

▲(416m봉 고스락 조망 5).

천관산의 아우라까지 확인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네요.

 

▲(416m봉 고스락 조망 6).

설악산 공룡능선이 부럽지 않다고 뻐기는 주작덕룡 공룡능선입니다.

 

▲(416m봉 고스락 조망 7).

해남지방의 터줏대감은 누가 뭐라 해도 두륜산이죠.

 

▲(416m봉 고스락 조망 8).

서당산과 병풍산 사이로는 삼산천이 들녘을 적시고 있겠지요.

 

▲(416m봉 고스락 조망 9).

녹우당 터가 명당이라는 설은 거의 정설에 가깝지요.

 

▲(416m봉 고스락 조망 10).

작지만 오똑한 호산은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416m봉 고스락 조망 11).

금강산 뒤에서 고개를 내민 역마산은 새침떼기로 컨셉을 잡았군요.

 

▲조망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

내려놓았던 정신을 다시 붙잡고 가벼워진 몸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깃대봉 오르는 산자락에는 길이 3단으로 뚫려 있네요.

제일 하단이 해남터널, 중간이 우슬재 도로, 6~7부 능선이 임도.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있는 나무는,

간혹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기 십상이죠.

 

그래서 중용(中庸)의 경지가 어렵다는 거겠지요.

중간 도로인 우슬재로 내려서며 문득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우슬재 풍경 1).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서 우슬재라는데,

무릎 관절에 좋다는 우슬은 보이지 않고 동백나무만 무성하네요.

 

▲(우슬재 풍경 2).

마루금 산행을 하다보면 고갯마루는 한숨 돌리는 쉼터지요.

 

매일 치는 파도도 모양이나 크기가 매번 다르듯이,

운명처럼 만나는 고갯마루도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게 없지요.

 

▲(우슬재 풍경 3).

고갯마루마다 역사의 흔적이 많이 깃들어 있지요.

우슬재가 품고있는 아픈 역사는 5.18민주화운동이었구요.

 

어쩌면 내 삶과 내가 보는 풍경의

증인이 되기 위해 산행기를 쓰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라고 했지요.

고갯마루에서 충전된 몸뚱이를 끌고 속없이 웃으며 다시 출발합니다.

 

▲꼿꼿하게 일어서는 오름길을 따라서 마루금여행은 계속 됩니다.

 

▲산자락이 임도를 제공하며 또 한 번의 숨쉴 틈을 만들어 주었고.

 

▲마틴 킹 목사가 그랬지요.

시작과 끝을 다 보려 하지 말고 일단 한 걸음 내딛어라고.

 

계절의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이 시절에 더 열심히 올라야겠죠.

 

▲걸음걸음마다 마음을 쏟으며 오릅니다.

추억이란 결국 그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겠지요.

 

▲눈 가늘게 뜨고 왔던 길을 자세히 돌아보면,

거기 내가 남긴 발자국 흔적이 바람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덕음산과 두륜산의 겹친 풍경 속에

힘들었던던 기억과 설레었던 기억이 반반 섞여 있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반반이라도 실제로 얼굴 보면 일단 반갑지요.

 

▲산자락 곳곳에 부처손(바위손)이 포진해 있습니다.

 

▲항암작용에 특출한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부처손입니다.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 노루귀, 산자고를 다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은 산자고만 단촐하게 꽃을 피워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였네요.

 

▲겨울잠에서 깨어난 초록뱀이 꿈틀대는 줄 알았습니다.

 

▲능선에 철난간이 설치되었다는 사실은,

조금 위험한 지형이니 조심하라는 얘기겠지요.

 

▲화원지맥의 최고봉 만대산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산행을 생각할 때마다 생각이 반반입니다.

오를 때의 힘겨움에 걱정이 앞서면서도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죠.

 

눈앞의 파도가 부서졌어도 괜찮습니다.

다음의 파도가 벌써 또 일고 있을 테니까.

 

▲산중턱의 헬기장이 터닝포인트를 제공합니다.

별 의미 없는 풍경이 숨 쉬듯이 우리에게로 들어왔습니다.

 

▲산길에서의 터닝포인트는

여백과 휴지(休止)로 숨구멍을 만들어줍니다.

 

▲길섶의 소나무 한 그루,

고난도 아사나 동작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소나무의 새롭고 다른, 체념과 빈칸의 호흡법일까요?

 

▲산신령 님이 여기 퀼리티 높은 예술작품을 남겼네요.

곳곳에 작품 배치하는 산신령 님의 능갈맞음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방향을 바꾸어 바라보니, 작품 완성도가 더욱 경외롭네요.

 

▲별 것 아닌 일들이 모여 바로 삶이 되지요.

탄탄한 산길을 앞마당 거닐 듯 걸어가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걸음을 통해 산과 만나지만,

걷는 동안 잠시 산의 일부가 되어 같이 호흡합니다.

 

▲(깃대봉 고스락 풍경).

 

▲조망 공간이 확 열릴 때마다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 모두가 아름답게 보입니다.

 

▲'나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지?'

 

금강산 방향으로 펼쳐진 대자연 앞에서

철없는 산돌이는 무심결에 철학자 모드로 젖어듭니다.

 

▲오늘의 산자락은, 

소나무가 도처에서 행위예술을 시현하는 공연장입니다.

 

▲(만대산 고스락 풍경 1).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삶이 되듯이,

걸음걸음이 모여 결국은 만대산 고스락까지 이어졌네요

 

▲(만대산 고스락 풍경 2).

산 고스락의 면상을 보는 일이 산꾼으로서는 더없는 즐거움이죠.

 

▲(만대산 고스락 풍경 3).

‘만대산이 화원지맥 최고봉이니 사방팔방 조망이 터지겠지’

 

혼자서 김칫국을 야무지게도 들이켰는데,

아쉽게도 조망은 해남읍내 한 방향으로만 터지네요.

 

▲(만대산 고스락 조망 1).

미세먼지와 설풋한 저녁어스름에 그을린 채로

진도 방향 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을 상실했네요.

 

▲(만대산 고스락 조망 2).

오늘의 마지막 조망 풍경은 금강산이 차지했습니다.

 

▲소나무는 살아있는 새총이 되어

화원지맥의 끝 목포구등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396.1m봉)

 

▲초미세먼지와 황사현상, 지구온난화 등

인류의 앞날을 걱정하는 오지랖도 부려보면서 천천히 걸어갑니다.

 

▲(금강재).

가속도를 제어하지 않고 직진하면 금강산 행일 텐데.

끼이익, 브레이크를 밟고 좌틀하여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이젠 귀차니즘 따위 상관없이

쭈욱 내려가기만 하면 종착역이겠네요.

 

▲우측을 가리키는 이정표 문구는 쉼터.

하산하는 내내 쉼터가 어떤 곳일까 궁금했었지요.

 

▲돌다리가 징검다리로 치장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했네요.

 

▲한 줄보다는 두 줄이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건,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징검다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지요.

 

▲거칠기로 치면 악명이 하늘을 찌르는 화원지맥인데

이리 좋은 하산길이 너무 무렴해서인지 걸음이 휘청입니다.

 

▲멋진 산행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데는

아치형 목책교가 안성맞춤임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금강골 공중화장실).

금강산, 금강재, 금강골, 금강저수지...

이 지역은 ‘금강’이라는 지명이면 만사형통입니다.

 

Ⅴ. 산행 기록

 

Ⅵ. 에필로그

 

삶은 계획표대로 순탄하게만 흐르지는 않고,

때론 순위를 뒤바꾸며 소소한 일상을 쌓아가죠.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인생도 근사해 보이지만

때론 뒤돌아보고, 옆 흘깃대며 걸을 필요가 있죠.

종일 걸어 맞이하는 낮과 밤 틈의 아름다움은,

오래 가려고 속도를 유지한 데 대한 선물이겠죠.

 

山공부는 제도권이 요구하는 지식이 아니라,

내가 궁금하고 내게 기쁨 주는 참된 공부지요.

책 속 생경한 언어보다 내 속 본능을 동원해

산을 연결고리로 삼아 새로움을 열어가렵니다.

뱃사람 본능이 로렐라이로부터 자신을 지켰듯이.

덕음·만대산이 참된 공부의 숙제를 내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