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지맥을 걸으면서 산아일체를 꿈꾸었네. ▣
▲610.5m봉에서 바라본 비슬지맥 하늘금.
Ⅰ. ( Prologue )
흰 눈 쌓인 먼산은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데
가슴속 산기슭은 방그레 복수초를 머금었습니다.
도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하늘을 둥둥둥 떠다니는 희한한 마법에 걸립니다.
산이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는 거지요.
산으로 향하면서 5W1H로 쫀득하게 무장했습니다.
산에 배고픈 사람들이, 강물 풀리는 우수 이브에,
다정도 병인 양 뜨겁게, 청도천 서쪽 울타리에서,
한뜸한뜸 발자국 찍으면서, 산아일체를 꿈꾼답니다.
6하원칙이 가슴 속 엔진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2월 18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 (가나다순, 존칭 생략).
〔관평동, 범산, 어처구니, 주산자, 진달래, 희망봉〕
3. 어디를 : 열왕(청도)지맥 첫째 마디.
(노단이마을~화왕지맥 분기봉~영취산~종암산~큰고개).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내일이면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이고,
여기는 옥수가 흘러내린다는 옥천리 노단이 마을.
청룡 한 마리가 소나무로 분한 채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청도천 서쪽의 산울타리를 마음에 품고 걸어갑니다.
청도라는 지명으로 인해 헷갈려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은 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 청도면이 헷갈리고,
고구마 줄기처럼 달려나오는 청도천이라는 하천도 헷갈립니다.
청도군 각북면 금천리에서 발원하여 밀양강과 합치는 청도천이 있고,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천왕산)에서 발원하여
창녕 학포리에서 낙동강과 합수하는 청도천이 있습니다.
산파고파가 걸어갈 산줄기는 천왕산에서 발원한 후자의 서쪽 울타리입니다.
▲온전한 열왕(청도)지맥은 천왕산에서 시작하는 게 합당하지요.
그러나 왕字들 山群의 주파 과정에서 효율성과 편의성을 고려했습니다.
천왕산~열왕산~화왕지맥 분기점 구간은 미리 걸어두었기에,
오늘 열왕지맥 시작점은 실질적으로 화왕지맥 분기점이 됩니다.
▲텅 빈 가옥 한 채에 世鐘亭이라는 문패가 걸려있었네요.
世鐘學園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고시원이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한 때 청운의 꿈을 품고 정진했을 청춘들의 땀방울이 아려옵니다.
▲산이 끌어당기는 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산이 부르는 대로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제낍니다 .
▲열왕(청도)지맥으로 향하면서 계성천 물줄기를 건넙니다.
▲이번에는 계성천 물줄기와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도 봅니다.
▲화왕(계성)지맥에 접속했습니다.
마루금에 올라서니 마음둥지가 든든해집니다.
▲일상사에 진절머리를 내다가도
산길만 생각하면 그게 뭐 대수인가 싶어지지요.
▲(분기점 풍경 1).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요란하게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 인증의 흔적마저 바람처럼 휘리릭 날아가 버릴 텐데.
▲(분기점 풍경 2).
막바지 겨울날 한때가 무상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적의 자아를 꺼낼 때 나무는 무상의 자아를 꺼내드네요.
▲열왕(청도)지맥에 들어서자마자 ‘부곡온천가는길’이 인사하네요.
이 소박한 안내판은 오늘 산길 걷는 내내 길라잡이를 자처했습니다.
▲시간은 어차피 앞으로만 흐르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점 짧아만 갈 텐데.
▲글 안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책장을 기웃거리듯이,
산 안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GPS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산길을 걸어가면 오래된 레퍼토리처럼 평온함이 내려앉지요.
잔잔한 산죽길을 걸어가면 평온함이 행복감으로 변주되곤 합니다.
▲튼실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지요.
그 옆을 스치며 눈요기하는 호사를 누림은 과분한 행운입니다.
▲책의 줄거리를 생각하며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듯이,
합수점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생각하며 마루금을 따라갑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웃음이 울음의 또다른 표현이 되지요.
산길을 걷다보면 쉼터 의자에 앉아서도 걷는 기분을 느낍니다.
▲살인적인 가풀막 오름길 뒤에 맞장구치며 내리막이 나타납니다.
북치고 장구치는 산길의 조화를 보면서 생각을 합니다.
우리네 인생사도 슬픔과 기쁨이 마치 반죽처럼 엉겨붙어 있다고 말입니다.
▲이파리를 다 떨군 나뭇가지들 사이로,
출발점인 노단이마을 풍경이 살짝 보이네요.
▲산자락을 찾고 산을 느끼면서 산에서 삶을 배웁니다.
삶의 즐거움과 오르는 즐거움을 혼동하면서 산아일체를 그립니다.
▲잎을 다 떨구어도 멋짐을 잃지 않는 나무풍경 앞에서,
마치 방해를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산사람은 후각이 발달한 사람들이죠.
무심히 걸어가는 산길에서 산 향기를 흠흠거립니다.
▲봄을 알리는 노란 복수초가 외롭게 피었습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노란꽃이 술잔으로 보입니다.
▲동쪽(좌측)으로 조천지를 둘러싼 풍경이 일품입니다.
범산은 귀한 산풍경에 감읍하지 않는데 늘 실패합니다.
산풍경은 산사람의 눈코입을 통과하며 거의 백전백승을 거둡니다.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산중방담을 나누기 딱 좋은 그림이네요.
▲어디선가 톱질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쓰러진 나무를 정리하는 중.
의욕이 과해 덤블링까지 선보이는 해프닝이 벌어졌지요.
▲여기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임도파와 맥길파로.
마루금은 맥길파의 발 아래에 밟히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산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지요. 우리가 산을 배신한 적 없듯이.
끝없이 펼쳐지는 멋진 산상 평원 앞에서 그 사실을 신기해 합니다.
▲산이 말을 거는 소리를 듣다보니 금새 임도가 나타납니다.
산이 들려주는 말들 속에는 세월에 절여진 녹진한 언어가 있습니다.
▲하세월을 한 자리에 뿌리 박고 서 있던 소나무.
지나가던 산객들이 우러러 보며 그 의연함을 부러워합니다.
▲사는 게 꽃 같은 날이든 개 같은 날이든,
산길 한 걸음에 마음 한 자락을 섞으며 살아갑니다.
▲멋진 산길에 마음이 봄눈처럼 녹아서 날아갈 듯해집니다.
▲같은 걸음도 노동하는 것과 운동하는 건 다르겠지요.
일상에선 죽상이던 얼굴도 산길에선 쫙 펴지는 마법이 일어납니다.
▲해의 위치가 아까보다 많이 높아져 있습니다.
길섶에는 낙엽 틈새로 이른 봄의 꽃샘바람이 감싸고 돕니다.
▲송두리째 뽑혀버린 나무의 삶 앞에서,
산꾼의 산행은 어쩌면 길티플레저로 작용합니다.
▲맨정신인 듯 맨정신 아닌 느낌으로,
취권을 쓰듯 비틀대며 산길에 빠져 걸어갑니다.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니 멋진 조망데크가 보입니다.
▲(610.5m봉 풍경 1).
마루금 모니터에 미완성의 시 한 수가 띄워져 있는 느낌.
▲(610.5m봉 풍경 2).
보나마나 저 산우님들 대화 주제는 ‘산’일 게 뻔합니다.
▲(610.5m봉 풍경 3).
조망 삼매경에 빠진 산우님 뒷모습이 넘 아름답네요.
▲(610.5m봉 조망 1).
비슬지맥 화악산은 구름 속에서 신비감을 부추기고.
▲(610.5m봉 조망 2).
비슬지맥은 화악산과 우령산 사이에선 기듯이 흐르고.
▲(610.5m봉 조망 3).
종남산에서 바라보는 이쪽 열왕지맥 산세가 만만찮았는데.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은 잃는, 칼날 같은 선택들의 연속이죠.
탁월한 선택이었던 오늘, 째깍째깍 하루를 완성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영취산 갈림봉).
영취산까지는 200m 거리.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이 걸음은 봉따먹기 차원이 아니라 의리 차원입니다.
가까이 왔는데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건 양심이 쑤시는 일이죠.
▲(영취산 고스락 풍경).
주변에선 제일 높은 산인데, 조망은 영 꽝이네요.
멀쭘하게 키만 커서 키 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산입니다.
▲돌아와보니, 배낭들이 저들끼리 반상회를 하고 있습니다.
▲신선봉-영취산-병봉-종암산-함박산.
영산면 구계저수지가 중심인 환종주 코스가 환상적이죠.
특히 꼬깔봉인 병봉의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상이 압권입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광채가 더 발휘되듯,
일상의 고심이 있어야 산행의 기쁨이 배가되겠지요.
능선을 걷는 마음이 가벼운 걸 보니 일상이 힘들었나 봅니다.
▲튼실한 나무 두 그루가 쌍으로 춤을 추는 능선이네요.
니체가 고매하게 말하길,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거라지만,
고양이는 몰라도 쥐새끼에게 방심은 곧 죽음이 아닐까 싶네요.
이 아름다운 세상, 우리는 왜 유한한 존재여야 하는 걸까요.
▲산길이 산파고파를 또 두 갈래로 갈라놓고 마네요.
꿋꿋이 임도파의 유혹에 귀를 막고 마루금을 고집합니다.
▲인생은 누가 설계했기에 이리 거지 같은 건지.
웃자고 하는 소리인데 왜 다큐로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642.2m봉)
▲임도파들의 의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먼저 도착해서 맥길파를 기다려 주고 계셨습니다.
▲(병봉 갈림봉). 屛峰이 변봉으로도 불리는 걸까요.
▲오후 늦게 내린다는 비예보를 적중시키려는지,
뿌연 하늘이 부끄러워하는 서쪽 해의 얼굴을 가려주네요.
▲雨水라고 기별을 하는 걸까, 봄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아직도 오늘의 하이라이트격인 종암산은 밟지도 못했는데.
▲함박산의 함박웃음은 언제 볼 수 있으려나.
▲(보름고개). 지도마다 고개 위치가 아리송.
▲산을 향해 날아가는 총알이고 싶습니다.
총알은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날아갈 뿐이지요.
그저 산자락에 스며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총알이고 싶습니다.
▲비가 더 내리기 전에 빨리 오라고, 종암산이 귀띔하네요.
▲건장한 나무들이 일렬로 도열해있는 산길을,
목에 힘 빡 주고 거들먹거리며 열심히 올라갑니다.
▲이정표가 우회길을 안내하는데도 고집을 부렸지요.
두 손으로 마구잡이 헤엄치며 직선으로 올랐더니,
길은 험하고, 예상했던 고스락은 저만치 더 내앉아 있네요.
▲붉은색은 뜨겁고 푸른색은 찬데, 회색은 온도를 알기 어렵지요.
그 모호한 회색이 하루종일 산과 하늘을 뒤덮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종암산 고스락 풍경 1)
고스락에 서면 누구라도 조금쯤은 솔직해지는 법이지요.
마법에 걸린 것처럼, 볼 게 없더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죠.
▲(종암산 고스락 풍경 2).
더 오를 곳이 보이지 않았지만, 더 돌아볼 조망도 없었지요.
▲(종암산 고스락 풍경 3).
가끔 쓸데없이, 사소한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고스락은 조망이 좋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 그게 사람을 약하게 합니다.
▲(종암산 고스락 풍경 4). 오늘 종암산은,
조망은 없었지만 옹종한 표지석으로 인해 유독 돋보였습니다.
▲구름바다 속에 침몰한 함박산이 안타까웠습니다.
▲(함박산 갈림지점).
▲범산은 눈치가 더럽게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조망이 없다고 속상해하며 풀이 죽어있는 걸 보니.
싫어서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흐르는 것일 뿐인데...
▲뿌연함 속에서도 골프장은 건재하네요.
속을 만큼 속고도 또 날씨를 믿으면서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429.1m봉)
▲구름을 뚫고 솟은 덕암산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헛돌이 주의지점).
직진해도 하산에는 지장이 없겠으나,
다음에 마루금을 잇기가 난감하겠네요.
▲하산길은 아쉬움과 뿌듯함이 병존하는 과정입니다.
▲(큰고개). 마루금 산행은 여기까지.
철옹성 같은 어스름의 무표정을 깨트리고 싶은 시간입니다.
▲아랫동네로 향하는 길이 산길의 동선을 따라 휘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산길을 걷던 두 발이 나를 놔줘야 할 타이밍입니다.
산길에서의 발걸의 여운으로 일상에서 살아갈 여유를 충전합니다.
▲(청룡암 입구). 산자락을 벗어나면서 독백을 해봅니다.
나는 산의 추적자다. 나는 산의 일부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산이 공처럼 통통 튀며 가슴을 밀고 들어왔지요.
세이렌의 노래에 홀려서 뛰어드는 항해자인 양
희망으로 다가온 산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긴 인생, 하루쯤 마법세상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오늘이 그 날이라고 생각하니 광채가 일렁입니다.
청도천 서쪽 울타리는 우리만 걷기 넘 아까웠고,
호기심, 동질감, 죄책감이 섞인 마음으로 걸었지요
하루간 용처로 산을 결정한 선택이 자랑스러웠네요.
추억은 과거에 머물고, 시간은 미래로 흘러가는 것.
마음 뜨락엔 햇볕이 장맛비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허접한 산행기를 읽어주신 귀한 당신,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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