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대왕자태실을 밑간 삼아 영암지맥을 이어가다. ▣
▲381,2m봉에서 봉화산(각산)을 바라보다.
Ⅰ. ( Prologue )
음식에 청주ㆍ소금ㆍ후추로 밑간을 해두면
감칠맛과 부드러운 속살을 유지할 수 있지요.
맛깔나는 산행을 위해서도 밑간은 필요하죠.
선석산 태봉이 의식의 그물에 딱 걸렸답니다.
말랑말랑한 아이들 손은 가슴을 녹여주지요.
세종대왕자 태실이 던져주는 간접화법입니다.
태실은, 우리 눈을 붙들어 매는 밑간이구요,
또 영암지맥 영혼 산행의 베이스캠프입니다.
쇄빙선처럼 시공을 뚫어가며 헤집다 보면
금맥이 터지듯 산경의 맥이 빵빵 터지겠지요.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0년 10월 20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동지 여러분.
3. 어디를 : 지경재~봉화산~달음재~노석고개~우성공원묘원.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오늘 산행을 맛깔나게 할 밑간으로 간택된,
선석산 태봉의 세종대왕자태실 주차장 풍경입니다.
▲완만한 돌계단이 아장아장 아기들 걸음마를 연상케 합니다.
▲태실이 인간 생명의 귀함을 상징하듯,
산으로 향하는 우리 발걸음도 귀한 흔적이길 소망합니다.
▲(지경재). 地境. 두 지역의 경계를 일컫는 일반명사지요.
일반명사가 고유명사가 되면 느낌의 색깔이 확 달라집니다.
의미를 한 번 더 음미해보면서 진지한 시선을 던지게 되지요.
성주군 월항면과 칠곡군 기산면을 구분짓는 고갯마루입니다.
▲길목에 들른 세종대왕자태실의 기운을 충전 받아,
삼광사를 오늘 산행의 들머리로 각지게 좌우정렬합니다.
▲초록색과 파란색의 어울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하늘정원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네요.
세상은 다 그래, 뭇 영혼들을 거느리고 침묵하고 있었지요.
▲산에서 사람은 뒷모습이 멋있다고, 평소 늘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청동불의 뒷모습도 멋져 보입니다.
▲난해하기만 한 삶의 의미를 재음미하면서,
헝클어진 산길의 맥을 찾아 덤불을 헤쳐오릅니다.
▲산자락의 맑은 느낌을 온전히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불만이네요.
▲공룡알을 연상시키는 동그란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았고.
▲(381.2m봉 고스락 풍경), 각산(봉화산)의 전위봉쯤 되겠죠.
▲(381.2m봉 조망1).
성산은 성산가야의 옛 영화를 되새김하며 의연히 솟아있습니다.
▲(381.2m봉 조망2). 금오지맥의 유장함은 말해 무엇하리오.
▲(381.2m봉 조망3).
밟지 못한 비룡산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381.2m봉 조망4). 팔공산도 멀리서 근육자랑을 하고 있네요.
▲(381.2m봉 조망5).
각산(봉화산)이 오늘 구간 대장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381.2m봉에서 각산을 연결하는 마루금이 까칠합니다.
아찔함과 스릴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게 인간의 커다란 능력이죠.
▲까칠함과 순탄함의 롤러코스터는 마루금 산행의 기본이죠.
아무리 험한 산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힘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저 하늘을 찌를 듯한 멋짐이 오름의 힘겨움을 이길 겁니다.
▲의식의 수면에서 잠영하던 희망을 낚아올려서,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길에서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산행은.
▲(각산 오름길 조망 1).
이 근방 산들의 대장, 가야산이 신비한 모습을 드러냈네요.
▲(각산 오름길 조망 2).
지난 구간에 걸었던 영암산~선석산의
아름다운 라인이 휘모리 장단을 연출합니다.
▲(각산 오름길 조망 3).
비룡산은 여전히 ‘가지 않은 길’의 가능성으로 남아있고.
▲꽉 막힌 덤불이 우리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도 아니고, 감성도 아닌, 그저 산입니다.
▲각산이 봉화산이더니, 봉화대 흔적일까요.
와룡지맥 각산봉수대가 그랬던 것처럼,
각산이란 지명은 봉수대와 연관 있는 지명인가 봅니다.
▲질매봉이라, 이름이 기억을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합니다.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았던 아버지의 굽은 허리가 떠오릅니다.
▲추상적인 희망은 고문일 뿐이죠.
눈 앞의 땀방울이 바로 새틋한 희망이지요.
▲저번 영암산 자락에는 솔버섯이 주인노릇 하더니만,
각산 자락에는 꽃향유가 무시로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각산 고스락 풍경 1).
한밤중 도깨비불에서는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듯이,
전국의 수많은 봉화산에는 봉화가 피어오르지 않는 시대입니다.
▲(각산 고스락 풍경 2).
우리가 산의 일부가 될 때는 언제쯤일까요.
산에서 자신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느낄 때가 아닐까요.
▲(각산 고스락 풍경 3).
고스락 부분이 넓어서 몸을 눕히는 형국이니,
마음에 고요가 찾아들어 시간이 멈춘 듯해집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메모해 왔지요.
‘유월리 방향’으로 20여m 진행한 후 급좌틀할 것.
▲무진 세월을 삭히고 견디면서,
산을 지키고 있는 나무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쓰러져 풍장되고 있는 나무를 보며 느낍니다.
고통과 쾌락은 같지 않지만, 그 근원이 같으니,
그 근원인 육신을 중히 여기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느린골 고개).
▲산길의 쓰담쓰담 침묵의 손길에,
상처받았던 일상의 마음에 새살이 돋는 눈치입니다.
▲(월암산 고스락 풍경).
월암산을 표시하는 산패가 여기저기, 중구난방이네요.
▲나무를 타고올라가는 덤불들의 생명력을 보고 있노라면,
깊이 잠복해 있던 야성이 돋을새김으로 올라오는 걸 느낍니다.
▲피부에 생채기는 턱없이 늘었는데
산에선 젊어지는 느낌이니, 참 별일입니다.
길이 확 열리듯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산속에 있다가 차소리 요란한 세상 속으로 나오면,
햇살 속으로 막 뛰쳐나온 송아지처럼 당황스러움이 덮쳐옵니다.
▲(달음재 풍경 1).
33번 국도를 건너야 하는데 차량 통행량이 만만치 않네요.
머릿속 낙관주의자의 달작지근한 말을 믿고 조심스레 무단 횡단합니다.
▲(달음재 풍경 2).
돌아보며, 저 길도 산길이라고 치자 생각하니,
걷고 있는 이 시간이 초 단위로 값지게 흐릅니다.
▲(달음재 풍경 3).
깎아지른 절벽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네요.
▲(달음재 풍경 4).
시간도 흐르고 물도 흐르고 길도 흐르고....
겉으로는 모든 게 흐르는 것 투성이지만,
속으로는 이 산길에 진실로 머물렀다고 느낍니다.
▲(달음재 풍경 5). 산자락에 들면서,
몸과 영혼으로 스며드는 해방감은 비교할 수 없는 진국입니다.
▲걸음걸음 산자락을 파고들면,
온몸의 신경들이 제각각 눈이 되어 산을 읽어들입니다.
▲(288.9m봉 고스락 풍경 1).
세월을 삭혀온 나무가 제 육체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공간을 휘저으면서 멋들어진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88.9m봉 고스락 풍경 2).
이 나무도 질세라, 5枝를 오므리고 하늘의 기운을 모으고 있네요.
▲송림 속을 걸어가니 세상 중심으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세상이 시나브로 시야 안으로 축약돼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송전탑을 따라서, 눈길로 하늘을 한번 찔러봅니다.
▲(헛돌이 주의). 153번 송전탑 직후 나타나는 급우틀 지점.
▲물처럼 흐른다는 점에서 삶은 유랑이지만,
오늘도 산길을 걸으며 시간의 강을 따라 갑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수렴되는 수많은 감정들이
‘산사랑’에는 더 진하게 통용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산뜻한 구절초가 가을산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저 자연 활대는 무엇을 겨누고 있는가.
세월을 붙잡아라. 자연처럼 항상 새롭게 살아라.
▲성황당고개를 스쳐가다 보면,
시간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날아옵니다.
▲‘콩과 보리도 구별 못하는 사람’을 숙맥이라 하지요.
우리는 산이라면 무조건 고!하는 숙맥들임을 자인합니다.
▲공원묘원 꼭대기에 요양원이 자리하고 있네요.
찬란했던 청춘의 광휘가 모두들 마음속에 산불처럼 번지면 좋겠습니다.
▲남양공원묘원을 통과하면서 돌아보았습니다.
지나간 세월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이해하는 시간이겠지요.
▲멀리 가야산이 구름 속에 숨어서,
산자와 망자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네요.
▲앞쪽은 우성공원묘원, 뒤쪽은 남양공원묘원.
자본주의의 잔인한 프로그램에서 놓여난 이들의 삶을 엿봅니다.
▲두 공원묘원을 연결하기 위해 잠시 숲속으로 잠입합니다.
▲숲속에 들어왔는데 여기도 묘지가 있네요.
어차피 현실은 일상과 산상의 협살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죠.
▲산자락에 스며드는 시간은 자연에 길들여지는 시간이지요.
덤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행운이라는 여신이 함께 하는 것이겠죠.
▲네 개의 바퀴는 어디든 우리를 데려다주고,
두 다리는 어떤 험한 산길도 뚫는 장치가 되지요.
▲(138.7m봉),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
▲머지않아 땅거미가 세상의 경계를 다 없애겠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통속으로 굴러가는 게 세상살이겠지요.
▲공원묘원의 겉모습은 화기애애하고 도담하지요.
▲풍진 세상을 걸어왔던 이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아, 미간을 모으자 산자의 갈 길이 더 뚜렷이 보입니다.
▲망자들의 자리는 나날이, 놀랄 만큼 확장되고 있네요.
공동묘원은 수많은 해석의 길을 거느린 놀라운 텍스트입니다.
▲케이크 위에는 촛불이 저 혼자 타고 있고,
눈가가 젖어오던 산꾼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Ⅴ. ( Epilogue )
산에서 믿을 건, 기적도 아니고 의지도 아닌,
오직 다음 한 발짝에 집중하는 단순성의 힘이죠.
으레 산은 머리 없는 짐승처럼 오를 일입니다.
가을을 등에 업고, 삶의 기슭으로 올라갔지요.
숨을 마실 때마다 정갈함이 목을 축여 주었고,
지구에서 완전 분리된 기분이어서 넘넘 좋았네요.
시간은 가을의 무등을 타고 속절없이 흐르고,
머릿속에선 솜씨 좋은 낚시꾼이 낚시을 합니다.
낚아올린 희망의 우상 앞에 오체투지하고 싶네요.
=== 읽어주신 귀한 당신, 더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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