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수점을 굽어보는 산신각이 있더라. ▣
▲용주산 산신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백천의 합수점 풍경.
Ⅰ. ( Prologue )
스멀스멀 산 그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관계는 상대 이야길 듣는 데서 시작되는 법.
산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정갈한 맛이 우러났지요.
지난 더위는 넘 가파르고 난폭한 오르막이었지만,
산은 그 시간이 잃어버린 것만은 아니라 우깁니다.
산의 탐색은 차분하고 점진적이어야 제맛이지요.
산의 중심부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는 없는 법.
사방에서 갈향기가 밀물처럼 떼거지로 밀려오면,
갓 건져낸 싱싱한 산공기는 각성의 불씨가 됩니다.
낙동강과 백천의 흘레를 엿보고 싶어 안달났답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동지 여러분.
3. 어디를 : 우성공원묘원~말티재~30번도로~합수점.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오늘은 낙동강과 백천의 합수점을 찾아가는 날,
이른 아침인지라, 출발점인 우성공원의 빗장이 아직 걸려 있습니다.
▲저 조각상을 보니, 우리 삶의 기초 처방전은 ‘같아짐’ 아닐까 싶네요.
아기를 향한 어머니의 俯心과 어머니를 향한 아기의 仰心이 같아지는 지점!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보아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俯地仰天無愧於心)!
▲자욱한 안개가 걸어놓은 빗장도 만만치 않았지만,
좌우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탄탄함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낙동강과 백천 물길을 좌우로 가르는 분수령,
그 마루금을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밟아갑니다.
▲공원묘원에 누워있는 분들은 기척이 없습니다.
포근한 안개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들어 있지 않을까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일수록 더 절실하다는 걸 압니다.
망자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산자는 더 열심히 걸어야겠습니다.
▲간절함은 사랑의 마중물입니다.
산파고파 동지들은 산사랑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공원묘원의 경계를 벗어납니다.
성지순례를 나선 순례자처럼 경건하게 마루금을 이어갑니다.
▲산을 바라보는 우리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것일까요.
눈 앞에 나타나는 산의 구성요소들이 한결같이 이뻐 보입니다.
▲저 산불초소는 아직 개점휴업상태겠지요.
안개늪만 아니라면 전망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텐데.
▲지독한 안개도 푸른 솔의 기상만은 막을 수가 없나 봅니다.
▲(207.1m봉). 산자락을 밝혀주는 고마운 산패.
특히 자욱한 안개숲 속에서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줍니다.
▲안개늪에서도 누군가의 염원은 흐르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과객은 그저 멍한 상태로 한동안 정지해 있었네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산들이 눈속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산의 정보를 게걸스럽게 포식하면서 걸어갑니다.
▲처음 만나는 산길 하나하나가 모두 행복의 씨앗입니다.
마음의 메모장에 기록하지 않고는 못 견딜 벅찬 경험입니다.
▲안개의 정령에게 홀린 것일까요.
헛돌이 발품을 팔고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골체미를 자랑하는 산길입니다.
암반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이채롭네요.
▲산꾼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즈넉한 산길이네요.
산에선 작은 것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발길에 채이는 돌부리 하나까지도,
독약이 든 성배처럼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살아서 꽤 힘을 썼던 분인 모양입니다.
돌담이 둘러처진 묘지군이 세를 과시하고 있네요.
▲아니나 다를까. 자헌대부라는 감투를 썼던 분이네요.
資憲大夫는 정이품 문무관의 품계이니 한세상 잘 살았던 분이네요.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한살이, 그저 산처럼 살 일입니다.
▲잔잔한 산길을 돌아드니 마음이 착 가라앉았네요.
애틋하다, 라고 생각하고 눈물겹다, 라고 적어봅니다.
▲송전탑도 산패나 시그널과 마찬가지로,
길잡이 역할을 잘 수행하는 메신저입니다.
▲빈 산길을 가득 메운 정적이 가슴에 평화를 선물해 줍니다.
▲산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더 나아지고 싶다, 라고 마음 먹고
더 나아질 거야, 라고 중얼거려 봅니다.
▲한숨 돌리면서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네요.
나그네가 산사랑을 덧붙이고, 지자체가 맞장구를 치는 격.
▲(말티재).
▲마음속에 산사랑이 넘쳐 담아둘 길 없을 때면,
범산은 마음을 전하기 위해 산행기를 써곤 합니다.
▲(125.8m봉)
▲가을이 되면 나무는 추위에 대비해,
엽록소를 철거하고 수분을 줄이게 되지요.
단풍물결에서 대자연의 경이로운 성숙을 느낍니다.
▲사랑에 빠진 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라,
산꾼은 점차 말수가 줄어들고 자주 산을 찾게 됩니다.
▲망이 막는 걸 보니 사유지인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걸음을 멈출 수는 없지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가야 할 마루금입니다.
▲여기도 울타리가 산길을 막고 있네요.
사유지에 대해, 사유지의 독점권에 대해,
그 독점권이 만든 거리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산사랑을 앞세워 자신을 단도리하면서 현재를 살아갑니다.
▲사랑의 기억으로 삶이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유지를 넘는 변명거리를 찾습니다.
▲땅속에 누워있는 분들을 생각하니 조금 우스워집니다.
소유·무소유의 고정관념, 이분법을 따져보았자 찰나의 경계일 뿐이죠.
그 구분법은 어차피 인간세상의 한 갈래 스펙트럼일 뿐입니다.
▲(73.5m봉).
고스락에서 우틀해야 수월하게 마루금을 밟을 수 있습니다.
▲영암지맥은 막판에 난쟁이 마루금이지만,
공장지대가 헝클어놓아서 독도가 난해합니다.
▲기를 쓰고 마루금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삶을 구성하는 근본 바탕은 사람과 산에 대한 믿음이라고.
특히 산에 대한 믿음은 배신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거라고.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는 공장들 때문에,
마루금을 읽을수록 실제와 가상의 가장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아슬아슬하게 마루금을 찾아내고는 자신을 대견해 합니다.
언제 또 이곳을 찾아올 것인가, 가능성 제로라 생각하면서,
언제까지나 기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산천경개를 바라봅니다.
▲풍경의 진수는 천천히 걸어야만 느낄 수 있지요.
마루금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풍경을 붙잡았네요.
▲체험적 정서가 묻어있지 않은 산이라는 말은,
매우 건조한 일반명사에 지나지 않다는 걸 잘 압니다.
땀과 헛돌이로 얼룩진, 체험적인 산이 진정한 산이지요.
▲어라, 광영저수지가 왜 여기서 나타나지?
비로소 대형 헛돌이 중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현재위치).
빨간 실선이 원마루금. 점선이 실제 밟은 헛돌이구간.
▲헛돌이 덕분에 멋진 나무도 눈요기하게 되네요.
▲헛돌이 구간에서는 패잔병의 끄나풀만 나풀댑니다.
자신의 발에 온 존재로 부딪혀 오는 질문들만 쑥덕댑니다.
▲30번 국도를 건너는 것으로 헛돌이의 불편함을 털고,
공장지대로 인해 파괴된 마루금 탐색에 본격 돌입합니다.
▲산꾼이 공장지대를 지나가는, 효율적인 방법
....바람처럼 시원하게 나타났다가 감정없이 스쳐가기.
▲공장건물 뒤,
좌우로 보이는 절개지 연결선이 원마루금일 텐데...
▲때로는 인간이라서,
인간이란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절망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산꾼이라서,
산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서 행복하기도 하지요.
▲비록 공장지대의 콘크리트 바닥을 걷고 있어도,
이 순간만큼은 원하는 게 없으므로 두려운 게 없지요.
▲좌측 영진토목 공장을 통해 걸어왔다면
좀 더 마루금에 근접한 루트가 될 수 있겠으나,
어차피 마루금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 사실입니다.
▲간밤에 비가 뿌렸던가 봅니다.
질퍽한 공장지대를 통해 파괴된 마루금을 찾아갑니다.
어쩌면, 아마도, 산에 대한 간절함이 부른 갈망 덕분일 겁니다.
▲가지런하게 깎인 암벽에 눈을 맞춥니다.
깎아내린 절벽은 마루금 파괴의 표상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표상이 절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지맥스럽다’.
이 형용사를 오픈사전에 등재해야겠습니다.
▲조금 까칠한 지형입니다.
위험해서 더 신바람나는 우리들입니다.
▲어두운 데 있을 때는 자신의 그림자도 떠난다지요.
마루금 수난시대, 마루금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모든 게 잠깐의 바람에 불과하다고. 세월 따라 복원될 거라고.
▲생생한 구절초 덕분에 마루금의 까칠함이 완화되었습니다.
▲(106.7m봉)
▲숲 속에 있으면 숲이 잘 보이지 않지요.
터프한 마루금 속을 걷다보면 퍼프가이가 되고맙니다.
▲공장투성이, 마루금 같지 않은 마루금을 걷다보면,
무기력이 헝클어진 마루금을 숙주로 삼고 고개를 들지요.
그럴수록 마루금에 근접해 옹골차게 걸어야 할 것입니다.
▲땀방울은 인간보편의 경험이며, 피할 수 없는 삶의 본질이지요.
그래서 산에서 땀방울을 매개로 쌓아올린 유대감은 더없이 탄탄합니다.
▲저 호박 받침대는 아름다운 예술인가요 삶의 지혜인가요.
▲마루금 위에 터잡았던,
공장의 ‘그리스 로마 시대’는 이제 끝이 났습니다.
▲합수점이 가까워진 산자락은 모난 데 없이 풍요롭고,
산자분수령의 원리는 광대한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지요.
▲모두들 어디론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뭔가 눈에 확 띄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는가 봅니다.
영암지맥은 합수점 근처에 조망의 명당을 턱 던져놓습니다.
▲(합수점 조망 1).
칠봉지맥 의봉산은 구면이라고 웃음을 머금었고,
왼쪽 앞, 수직 절벽(용암면 동락리 채석장)도 눈길을 붙잡네요.
▲유유히 흐르는 칠봉지맥 마루금도 멋있지만,
끝없이 펼쳐진 비닐하우스 하얀 들판도 이색적입니다.
전국 생산량 70%라는 성주 참외의 저력이 느껴집니다.
▲영암지맥과 칠봉지맥을 걷는 내내,
눈길만 주면 다가오던 산이 가야산입니다.
가야산의 품새가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겠지요.
▲백천 물길이 너무 탁해 보여 속이 상합니다.
다 끝날 때쯤 만나게 된 백천물길을 아득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합수점으로 향하는 마음이 사뭇 팽팽해집니다.
▲(용주산 고스락 풍경 1).
영암지맥 마지막 봉우리 龍珠山에 올랐습니다.
▲(용주산 고스락 풍경 2).
산신각이 신선한 파격이네요.
위치(산 고스락), 형태(정자), 구조(1층 휴게시설, 2층 돌 산신령)....
▲(용주산 고스락 풍경 3).
합수점을 굽어보면서 기를 충전하고 있습니다.
산줄기와 함께 흘러온 사람들, 여유가 넘칩니다.
▲(용주산 고스락 조망 1). 대흥사와 함께,
낙동강을 굽어보면서 마음의 때를 씻어냈지요.
▲(용주산 고스락 조망 2).
아,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며 빅뱅의 오르가슴을 연출합니다.
좌측(황학지맥, 죽곡산)과 우측(칠봉지맥 여맥, 성지산) 산줄기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하늘로 통하는 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숲을 통과하면서 합수점에다 조준선을 정렬시켰더니,
산은 사라지고 일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약을 올립니다.
▲인간 문명이 그물코처럼 짜놓은 도로를 따라 가면서,
그물코보다 정치하게 흐르고 있는 山經의 과학성에 탄복합니다.
▲선원교는 백천을 건너고, 우리는 합수점으로 향합니다.
▲합수점으로 향하는 길이 여유롭습니다.
기억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래 이 길 위에 머물 것이 확실합니다.
▲(합수점 풍경 1).
흘린 땀방울의 양에 따라, 마루금의 야생 정도에 따라,
합수점에서 만나는 감동의 깊이는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합수점 풍경 2). 평소 자주 하는 생각 한 토막.
합수점에 섰을 때 일어나는 감동의 노래가 묘비명이 되면 좋겠다....
▲(합수점 풍경 3). 몸은 언젠간 사라지게 되어있지만,
산사랑의 영혼은 함께 사라지지 않고 시공에 남아있겠지요.
산줄기, 물줄기처럼, 변하지 않는 대자연을 닮고 싶습니다.
▲(합수점 풍경 4).
합수점 한가운데 항공모함처럼 떠있는 섬이 있습니다.
한강 양수리 한가운데 떠있는 뱀섬과 아주 유사하네요.
‘어떻게’는 물론 ‘왜’라고도 묻지 않고 산을 오를 것입니다.
흡사 산길에 노크를 하듯이 뚜벅뚜벅 산을 오르고 내릴 것입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산은 세상의 여러 미지수 중 유일한 상수일까.
무수히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귀에 팍 꽂혔지요.
세상 얼룩을 흡수지처럼 빨아들여 안으로 쌓고,
온갖 게 본래의 가름을 넘어 한통속으로 섞여서,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통증, 그게 바로 산이지요.
일상의 바깥에서, ‘진짜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의문문에는 중요한 주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일상이 사라진 자리를 합수점 풍경이 채웠지요.
단숨에 온몸 털을 곤두서게 만들던 합수점 풍경.
산행 전후의 삶이 강처럼 이어지길 원합니다. 저는.
= 산행기를 읽어주신 귀한 당신, 늘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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