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금 산행/영등지맥

영등지맥 1구간 (대곡계곡~분기봉~벽산~영등산~동산령)

범산1 2025. 1. 7. 18:21

영등지맥 마루금에는 영등산이 없다.

영등산에서 바라본 孤山 모습.

 

Ⅰ. ( Prologue )

 

산? 물음표가 낫처럼 머리를 찍어내렸지요

눈머리를 문지르며 어긋난 초점을 맞추었고

능선 가슴께부터 배꼽 아래까지 훑어 내렸지요.

선망의 눈길 덕에 하늘금은 닳아 매끈해지고

열린 땀구멍마다 신선한 해방감이 깃들었지요.

 

산문은 바깥에서 열리고 바깥에서 잠기지만

사람의 마음은 자신만 잠그고 열 수 있는 것.

아름다운 기억은 사람 영혼을 자유롭게 하죠.

비디오를 되감듯 낙동정맥 기억을 되살렸더니

그 끈에 덕산지맥, 영등지맥이 딸려 나옵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5년 1월 5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동지 여러분.

 

3. 어디를 : 〔영등지맥 첫째 마디〕

             대곡계곡~분기봉~벽산~(영등산)~동산령.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대곡계곡은 대곡저수지를 지나서도 계속되었지요.

大谷, 이름에 걸맞게 계곡의 임도는 끝없이 이어졌지요.

임도는 左 덕산지맥, 右 영등지맥을 끼고 달려갔는데

꾸불꾸불 이어지던 임도는 분기봉 직전에서야 막판이 되었지요.

 

분기봉까지 올랐다가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겠습니다.

 

▲거칠고 비좁은 임도를 달려 끝까지 우리를 택배해준,

기사님 노고 덕분에 분기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뿐합니다.

 

▲여기는 덕산지맥이자 영등지맥 분기봉.

백두대간⇒낙동정맥⇒덕산지맥⇒영등지맥으로 이어지는,

우리 산줄기의 족보인 山經表가 뿌듯함으로 다가옵니다.

 

한반도 산줄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든든한 밑천입니다.

 

▲(좌)반변천과 (우)대곡천의 分水嶺을 걸어갑니다.

결국, 반변천과 대곡천의 합수점에서 끝이 날 산줄기입니다.

 

▲건강하고 튼실한 소나무 한 그루가

오늘의 마루금 여행을 마중나와 있습니다.

 

▲탄탄한 마루금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한걸음씩 밟아갑니다.

산길 위에서는 한없이 자유롭지요. 귀천이 없이 평등하지요.

 

▲무심하게 무채색의 산길을 걸어갑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가슴이 뛰어서’라고 답할 겁니다.

 

▲(607.4m봉). 대삼각점이 박혀 있네요.

 

오늘 하루 질릴 만큼 산과 사랑을 나누리라.

 

▲영등! 영등!  발음상 경쾌한 리듬이 연상됩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함을 더합니다.

 

▲(574.1m봉).

 

▲소나무들의 공동묘지가 착잡함을 불러냅니다.

 

▲육안으로는 멀리 학가산이 또렷이 잡혔는데...

똑딱이의 한계로 인해 사진이 흐릿하게 퍼졌네요.

 

▲세월의 끊임없는 손길로 소나무는 명품이 되었는데,

범산은 세월을 허비한 죄로 뒤틀린 고목이 된 듯하네요.

 

▲노인은 나의 미래, 어린애는 나의 과거.

그저 ‘현재’를 사랑하면서, 산에 파묻혀 하루를 만끽합니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겨울나무는 분간이 어렵네요.

뿌리가 뽑힌 채 풍장되는 나무인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무인지...

 

▲(574.6m봉).

이름 없는 무수한 봉우리들이 산줄기를 수놓고 있습니다.

‘이름 없음’의 고귀함을 느끼려거든 영등지맥을 찾을 일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새...’

용비어천가의 참의미를 새기려거든 영등지맥에 들 일입니다.

 

▲17년산 오가피를 목 안으로 흘려넣었더니,

후 불면 불이 뿜어져 나올 것처럼 근심을 다 태워줍니다.

 

▲(566.0m봉).

준희 님은 알뜰하게도 무명봉들의 설움을 챙겨주십니다.

 

▲좋은 기억의 실마리를 가슴에 안은 채,

낙엽 평원의 거대한 미로로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바스락이는 낙엽소리에 한껏 취했습니다.

귀 기울이면 나무들과 함께 했던 날들의 좋은 추억이 들릴 듯.

 

▲아, 낙엽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나무의 風葬의식이여.

 

▲(578.0m봉).

 

▲(구통재).

인생의 고비를 넘기듯 산줄기의 한 고개를 넘어갑니다.

 

▲바람에 말라가고 있는 쓰러진 나무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늘 사랑에 조갈이 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건 지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바뀔 수 없는 사실이죠.

 

▲(560.6m봉). 무명봉들의 향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돌무더기를 만나면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성황당의 흔적일 거라고도 하고, 애葬의 애잔함이라고도 하고.

 

▲하늘이 전시처럼 암울한 가운데에서도,

가끔씩 나타나는 바위들로 인해 위로를 받습니다.

 

▲점심 반찬감으로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하네요.

반찬이 좋으니 단박에 포만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네요.

 

▲(557.2m봉). 싸락싸락,

싸라기가 낙엽과 장난치는 소리를 생음악으로 듣습니다.

 

▲멥쌀가루를 얇게 켜서 낙엽 위에 흩뿌린 듯,

산자락이 온통 백설기를 쪄내는 시루가 된 듯합니다.

 

▲(벽산 고스락 풍경).

오랜만에 번듯한 이름을 가진 봉을 만났네요.

특이하게도, 삼각점을 둘씩이나 가진 산입니다.

 

▲능선이 기운차게 꿈틀대고 있습니다.

크기가 줄어든다고 마음이 줄어드는 건 아니죠.

 

▲눈가루를 하얗게 묻힌 옹종한 바위들이

시야를 채우며 눈꺼풀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551.9m봉). 시공이 뒤틀린 느낌입니다.

낯선 장소에서, 숫자로만 자신을 알리는 봉봉들.

 

▲떡메질하기 딱 좋게 싸라기가 곱게 내렸네요.

 

▲김녕김씨 묘소 가는 길.

우리는 합수점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하다만 눈(雪)화장 아래로 겨울이 드러나 있네요.

우리는 눈을 감고 오늘의 남은 산행을 시뮬레이션 했지요.

 

▲(557.9m봉).

 

▲고매한 자유정신으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뭐가 우리를 이렇게 산자락에 몰입하게 만드는 걸까.

 

답을 찾는 길은 하나밖에 없지요. 처음으로 돌아가자.

가슴을 뛰게 했던 산의 매력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말이죠.

 

▲(506.5m봉).

 

▲간간이 나타나는 바위들은 산행의 양념 같은 것.

눈앞의 오감은 산사랑의 믿음보다도 강렬한 것이지요.

 

▲지맥 정중앙에 자리잡은 묏자리를 보며 생각합니다.

과일나무도 큰 줄기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법. 碩果不食이라.

묏자리도 지맥이 강한 곳은 피해야 옳지 않을까. 쫌 걱정스러워서.

 

▲누구 가슴에나 따뜻한 별이 필요하고,

꺾지 못하고 지켜볼 절벽 위의 꽃이 필요하지요.

 

범산에게는 저 탄탄한 마루금이 그런 존재입니다.

 

▲(511.1m봉).

 

▲산자락 전체가 바람 따라 흔들리는 거대한 춤판이 된 듯.

 

▲시계 진행 반대방향으로 반원을 그리고 있는 마루금.

마루금 거울에 우리들 모습을 이 각도 저 각도로 비춰봅니다.

 

▲마루금은 467.2m봉 직전에서 우틀하고.

영등산은 마루금에서 900여m 벗어나있는 구조.

 

▲(402.6m봉).

 

▲467.2m봉으로 향하는 가풀막은 가히 살인적입니다.

 

깔딱깔딱 가풀막을 오르면서 절실함으로 다가왔네요.

인간은 한번은 죽는다는 사실이 전율로 다가왔답니다.

 

▲지금은 가풀막으로 인해 도파민이 폭발한 상태.

 

영등이 어부지리로 지맥 이름을 꿰차는 바람에,

이 산길은 마루금이 아님에도 산꾼들 주코스가 되었지요.

 

▲(467.2m봉). 이 산줄기에는 영등산보다 높은 ‘고산’이 있지만,

줄을 빨리 선 금북정맥의 고산지맥에게 이름을 빼앗겼다는 후문.

 

▲산행 막판에 이르면 팔다리가 쑤시지만 그건 육체 영역일 뿐,

정신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말끔하기 이를 데 없는 상태가 됩니다.

 

▲어서 오라는, 영등산의 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산길에만 들어서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단번에 비워지는 마법이 일어납니다.

 

▲잿빛 구름이 걷힌 하늘이 처음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네요.

그 하늘 아래를 걸으면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받는 기분이 됩니다.

 

▲연극적인 발걸음으로 영등산 고스락으로 다가갑니다.

겨울날 오후의 차가운 바람이 공간과 육신을 꿰뚫었네요.

 

▲(영등산 고스락 풍경 1).

어차피 썩어 없어질 몸뚱이들이고,

덩치값도 못하고 숨만 쉬다 가는 생입니다.

그래도 산길에선 그 생각을 잠시 잊을 수가 있지요.

 

▲(영등산 고스락 풍경 2). 귀하디 귀한 1등 삼각점.

그 사실만으로도 영등산은 오를 값어치가 충분합니다.

 

▲(영등산 고스락 풍경 3). 산지기처럼 우뚝,

아랫세상을 굽어보는 소나무가 무척 부러웠네요.

 

▲(영등산 조망 1). 고산이 항변합니다.

“이 산줄기의 진정한 대장은 바로 나야 나!

 

▲(영등산 조망 2). 이 사진 한 컷이 주장합니다.

“영등지맥의 하이라이트 구간은 고산~아기산이야.”

 

▲(영등산 조망 3).

아기산과 약산이 겹치면서 한 덩이로 착각하게 하네요.

 

▲(영등산 조망 4).

돌아가야 할 467.2m봉은 나뭇가지들 뒤에 숨어있고.

 

▲광산김씨 추모공원으로 돌아와서 좌측길로 질러갑니다.

 

산길을 걸으면 외롭지만 동시에 강해지는 기분이 들지요.

전방 공동묘지 초소에서 실탄이 든 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 때와 같이.

 

▲추울 때는, 라면, 그 두 음절만으로도 위로가 되지요.

피곤할 때는, 지름길, 그 세 음절만으로도 마음이 밝아집니다.

 

마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는 영원한 미스터리죠.

 

▲날머리에서의 성취감을 연료 삼아 즐겁게 걸어갑니다.

 

▲씩씩하게 불평없이 산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산이 마음속에 키워준 넓은 세계에 대한 경의의 표현입니다.

 

▲(돌아보기).

영등산이 벌써 기억의 둑으로 메워지고 있었네요.

돌아보기 전까지는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인 것처럼.

 

▲산길 속에 파묻혀 자기 삶을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

말하자면 산길은 일상을 피드백하는 거울로서 존재합니다.

 

▲(380.5m봉). 끝봉에 이를 때까지

낙엽은 무성했고, 바람도 매섭게 몰아쳤네요.

 

▲날머리가 가까워지면 너덜해진 육체와 고양된 영혼은

내부에서 상반된 모습으로 충돌하기 마련입니다.

자기가 평창동 사모님이라는 환상에 빠진 달동네 여인처럼.

 

▲(동산령).

죽음을 똑바로 볼수록 삶이 더 선명해지는 것처럼,

산에 빠져들수록 일상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산행은 동산령과 어깨동무하는 것으로 끝을 냈지요.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임하호의 물안개 속에

장갈령은 산세를 조망하듯 높이 서 있었네요.

그곳엔 山사람을 압도하는 매력이 있었으니,

겨울 냄새를 뚫어내는 솔향에 군침이 돌았고,

수더분한 산길은 행복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지요.

첫눈에 반해 영등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네요.

 

‘산줄기’와 ‘오지’, 두 타이틀을 꿰찬 맥길!

오지라는 핸디캡은 되레 맥길에 얹힌 덤이지요.

능선에 뿌려진 진한 땀방울을 노잣돈 삼아,

맥길 끝에서 맞을 유토피아의 멋을 그립니다.

산길이 토해내는 이야기는 정적을 채워주고,

일상의 엉긴 매듭을 푸는 단서로 작용했답니다.

 

== 읽어주신 귀한 당신, 더 행복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