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금 산행/영등지맥

영등지맥 3구간 (덕강재~아기산~527.5봉~우내미골고개~합수점)

범산1 2025. 2. 4. 17:40

더는 갈 수 없는 막판, 임하호에서 산은 자신을 죽였다.

▲영등지맥에서 바라본 구암지맥 약산의 모습.

 

Ⅰ. ( Prologue )

 

산길 능선은 그리움이 솟아나는 우물이죠.

산꾼은 산길에서 많은 靈感을 길어 올립니다.

낯선 산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느낌,

산들의 산꾼 마중은 기다림의 이른 이별이고

산꾼의 산들 배웅은 기다림의 이른 시작이죠.

 

산줄기와 물줄기의 딴딴한 엮음새에 편승해

오늘도 生滅의 웅숭한 이치를 깨치러 갑니다.

물줄기는 반변천•대곡천의 합수로 더 生하고

산줄기는 아기산 이후 점점점 滅해가는 구도.

임하호에 담긴 生滅의 비밀을 캐보려 합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5녕 2월 2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동지 여러분.

 

3. 어디를 : 〔영등지맥 셋째 마디〕 (약12.5km).

    덕강재~아기산~527봉~합수점~날머리(박곡리 336).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발자취 및 느낌표 버무리기

▲수몰지역의 광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700년 세월을 켜켜이 살아온 용계리 은행나무!

 

마침 영등지맥 길목에 터 잡고 있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요.

 

▲지구의 ‘살아있는 화석’ DNA를 물려 받아서인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네요.

 

▲여러분들의 정성과 기술(上植)로 살아남기는 했으나,

원래의 몸집과 생명력은 아니라고 하니 넘넘 안타깝네요.

 

생명체는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한번 더 실감합니다.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1). 동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봄, 새순이 돋는 용계리 은행나무는 얼마나 새틋할까요.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2). 남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여름, 무성한 잎을 달았을 때의 모습은 얼마나 풍성할까요.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3). 서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가을, 노랗게 물든 용계리 은행나무를 상상하니 뭉클해집니다.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4). 북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이 겨울의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네요.

 

오늘의 들머리, 덕강재 삼거리에 닿았습니다.

 

용계리 은행나무에게서 전수받은 영험한 기운을 거름 삼아,

오늘도 산능선 구석구석에 유쾌한 걸음을 한번 새겨볼까 합니다.

 

▲자신이 읽은 책은 결국은 자신이 된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걷는 산은 결국 나 자신이 되지 않을까요.

 

▲낯선 산길이 아는 산길로 변하는 짜릿한 경험!

그 특별한 경험이 산행의 강력한 동력임을 깨닫습니다.

 

▲책의 중요 구절에 밑줄을 긋는 심정으로,

산길 한 걸음 한 걸음에 밑줄을 그으며 오릅니다.

 

▲본질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은 요즘 세태.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잡생각을 버리려고 오르는데, 잡생각에 포위되었네요.

 

여기까지 와서 아기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산꾼이라 자처하는 산똘뱅이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요.

오늘 산행의 핵심은 아기산임을 한번 더 명심합니다.

 

▲우측의 565.8m봉을 곁눈질하면서,

지름길인 사면길을 사브작사브작 더듬어갑니다.

 

▲아기산 고스락이 범산 레이다에 들어왔습니다.

 

산속에선 세상소리가 안 들리니 속도 시끄럽지 않네요.

편안한 마음으로 산만 바라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봉황사 갈림길).

절이름도 시간의 흐름처럼 돌고 도는 가 봅니다.

창건 당시(644년) 鳳凰寺였는데 黃山寺로 개명되었다가

2006년 보수공사하면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고 하네요.

 

▲초침 바늘이 잘게 쪼개놓은 시간을 등에 업고, 부단히 달려갑니다.

 

▲째깍째깍 쉼없이 흐르는 시간도 둥근 시계 속에 갇혀 있지요.

흘러가지면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세상사 아닐까 싶네요.

 

▲(아기산 고스락 풍경 1).

한줄기 바람처럼 슬퍼할 틈새에 인생은 가버리겠지만,

낙락장송 한 그루, 아기산을 지키며 시간을 붙잡고 있네요.

 

▲(아기산 고스락 풍경 2).

태백산 지맥인 일월산에서 뻗어내린 산이 아기산이라...

 

좀 더 정확하게 의역을 해 본다면 이렇게 되겠지요.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낙동정맥이고,

낙동정맥에서 분기한 산줄기인 영등지맥 상에 솟은 산’이라고...

 

▲(아기산 고스락 풍경 3). 아기산은

‘백두대간이 낳고 낙동정맥이 키운 산’이라는 말이 맞겠지요?

 

▲(아기산 고스락 풍경 4).

이름 없이 태어나 이름 하나 짓고 살아가는 인생이여!

문득, 소쩍새가 심금을 튕기는 봄날에 또 아기산을 오르고 싶어라.

 

▲(아기산 고스락 풍경 5).

세익스피어가 '리어왕'의 입을 빌려 말했지요.

태어날 때 우는 건 바보들의 무대에 나와서 슬프기 때문이라고.

 

아, 아기산에 나를 데려다놓은 우연의 발걸음이 범산을 아리게 합니다.

 

▲(아기산 고스락 풍경 6). 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듭니다.

발바닥이 오로지 산행을 위해 생겨난 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입니다.

 

▲(아기산 고스락 풍경 7).

아기산 표지석이 살짝 기울었네요.

어차피 삶은 거위(鵝)처럼 뒤뚱대며 살아가는 것.

 

▲순리대로 다시 마루금으로 돌아가는데,

죽순이 올라오듯 시퍼런 질문이 삐죽삐죽 올라옵니다.

 

떠난 적이 없는 인생인데, 되돌아가는 인생이 있으려나.

 

▲다시 마루금에 발을 얹어놓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평화를 되찾고....

 

▲산에서 바라보면, 아랫 세상이 그지없이 아름답게 보이지요.

 

▲(531.7m봉).

 

▲산에서 들으면 아랫세상의 악다구니도

바람소리에 깎이고 다듬어져 그리운 소리가 됩니다.

 

▲(헛돌이 주의 지점).

 

▲가풀막진 내림막에 낙엽이 쌓여,

눈이 쌓인 것처럼 엄청 미끄러웠지요.

아이젠을 장착하고 가풀막을 즐깁니다.

 

▲새벽밥 먹고 떠났더니 뱃속에 허기가 불길처럼 번집니다.

허기는 원망으로 변해 산으로 향했지만, 산에게는 죄가 없지요.

 

▲(수곡용계로).

가풀막 내림길에 정신을 빼앗기고 집중하다 보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떡하니 포장도로가 나타났네요.

 

▲임도삼거리에는 색다른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깨금발을 하고 고갯마루 풍경을 들여다보다가,

물살에 떠밀리듯 산자락으로 붙어 오르기 시작했지요.

 

▲오르면서 돌아보았는데, 풍경은 눈길조차 주지 않네요.

자신이 세상에게 팽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울적했답니다.

 

▲434.6m봉에 올라 푸근하게 생긴 봉우리를 바라봅니다.

책장에 꽂힌 책의 등을 쓸어 보듯, 527.5m봉을 눈으로 쓰다듬었지요.

 

산자락에 파묻혀 그저 오르고 내리다 보면,

자신은 없는데 세상은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거대한 산자락에선 나 자신이 작아지지요.

무능한 잉여인간 같기도 하고, 어정쩡한 식충이 같기도 하고.

 

▲드난살이 하듯 산을 찾다보면, 산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굴곡진 생을 살아온 소나무가 울먹입니다.

명치에 얹혀 있던 소리를 토하며 울먹이는 듯합니다.

 

▲(527.5m봉).

탑돌 하나하나에 얹혀있는 간절함이 모이고 모여 산이 되고...

 

▲때마침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등을 떠밀었네요.

반변천과 대곡천의 합수점으로, 더는 갈 수 없는 막판으로.

 

▲구글지도에는 잘 관리된 밭뙈기로 보였는데...

산자락이 온통 태양광 발전시설로 덮여 있었네요.

 

▲남향받이에 앉아있는 집들이 따뜻한 볕을 받고 졸고 있습니다.

 

▲유순한 능선과 파란 하늘과 고고한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앙상블.

그 아름다움 앞에서, 입은 바늘로 꿰매놓은 듯 꾹 다물려 침묵하게 됩니다.

 

▲태양광시설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산자락이 벗어놓은 허물처럼 보여서...

 

▲눈을 감아도 떠오르고 눈을 뜨고 있어도 떠오르는 산.

산속에 들어있어도 그리워지는 산자락으로 또 들어갑니다.

 

▲옹종한 무덤에게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있어,

그 발톱으로 능선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았네요.

 

▲멀리서부터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재선충 방지를 위해 소나무를 토막내는 소리였네요.

 

▲(돌아보기).

아쉬움이 담긴 얼굴로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돌아봅니다.

왼쪽 둥글게 곡선미를 뽐내는 봉우리가 돌탑봉인 527.5m봉.

 

▲시선의 각도를 달리했더니 새로운 풍경이 열립니다.

반변천 건너 구암지맥의 약산이 허공을 찌르고 있었네요.

 

▲아침녘의 아찔하던 안개늪을 뚫고나와,

짱짱한 햇살이 산자락에 골고루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에 중독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일단 중독이 되면 거기서 해방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압니다.

 

▲세상 들여다보는 데에는 작은 구멍 하나면 충분하지요.

하물며 산을 들여다보는 데는 인간의 눈보다 클 필요가 없지요.

 

▲사람이면 사람 맛이 있어야 진국이지요.

아픈 일은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해주는....

 

산도 산맛이 있어야 더 애틋한 그리움이 움트지요.

거칠고 야생스러울 때 더 짜릿한 산맛이 일어납니다.

 

▲(356.1m봉).

 

▲해맑은 햇살이 산자락 사이사이로 밀고 들어옵니다.

어둠에 뭉개져 태아의 얼굴로 퇴행했던 산 속내가 하나씩 드러납니다.

 

▲숫돌에 간 낫의 시퍼런 날처럼,

쨍한 정적이 무덤 주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산줄기는 의구한데 사람은 세월과 함께 늙어가고 있죠.

인간의 그 한계적인 상황으로 인해 더 산에 빠져들게 됩니다.

 

포장이 된 마루금을 응시합니다.

망아의 순간, 바람이 불어와 햇살의 결을 흐트려놓네요.

 

▲내내 영등지맥을 멀리서 바라보는 봉우리가 있었네요.

진행방향 좌측, 반변천 건너편, 구암지맥의 명품봉 藥山峰.

 

▲산줄기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면서도,

흘러가지 않고 계속 산속에 머물러 있지요.

 

▲(우내미골 고개).

 

▲원래도 오지인데 임하댐으로 인해 오지 중의 오지로 변한 곳이죠.

상박실마을에서도 꼬부랑 임도로 3.5km를 들어와야 하는 곳이라네요.

 

▲산과 물이 포위하듯 둘러싼 궁벽한 산길, 룰루랄라 걸어갑니다.

 

▲잠깐 멈춤. 잠시 고민.

좌측 산줄기가 우측 산줄기보다 700여m 더 길다는 사실.

단, 반변천과 대곡천의 합수점을 지향한다면 우측 산줄기가 정답.

 

▲금슬 좋은 부부는 눈만 맞아도 애가 들어선다고 하지요.

 

산이 너무 좋으면 산생각만으로도 그리움이 넘쳐 흐르지요.

하물며 두 발로 걸으며 눈으로 마주치는 산은 말해 무엇하리오.

 

▲돌아보니,

돌탑이 있던 527.5m봉이 수려한 곡선미를 자랑합니다.

 

▲합수점을 알현하고 되돌아 나와,

여기 안부에서 우측으로 날머리를 잡아도 될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다음 안부에서 우측 날머리를 찾는 게 현명한 방법입니다.

 

▲소나무들의 공동묘지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끝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산줄기의 기세는 줄어들 줄을 모릅니다.

 

▲마지막 봉인 260m봉이 의연하게 솟아있습니다.

산줄기 산행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님을 절감합니다.

 

▲(날머리 갈림지점).

합수점을 왕복 약2.4km 걷고 돌아와, 우측 우내미골로 빠지는 구도.

 

▲막판에 탄탄한 임도를 서비스로 제공해 주네요.

 

농사일은 4계절 24절기 자연의 지배를 받지만,

산행은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는 걸 한번 더 깨우칩니다.

 

▲햇살과 어울린 솔향! 무덤과 어울린 세월 냄새!

둘이 바람에 섞이면서 마루금을 아득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260m봉). 산공기를 보약처럼 흡입하며 마지막 봉까지 왔네요.

 

▲(260m봉 조망 1). 갓난애 엉덩이 만지듯,

아슴아슴한 눈빛으로 아기산을 쓰다듬어 봅니다.

 

▲(260m봉 조망 2). 527.5m 돌탑봉이

만삭의 배처럼 부풀어 올라 지고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산줄기가 호수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설수록,

세상의 다른 소리는 물소리 뒤로 밀려나 들려오지 않네요.

 

▲(합수점 풍경 1). 때 되면 만날 걸, 뭐가 그리 중한지....

똥줄 타게 바쁘게 걸어서, 더는 갈 수 없는 막판에 이르렀네요.

 

▲(합수점 풍경 2).

저수구역, 수준점 시설이 막다른 곳임을 표시하고.

 

▲(합수점 풍경 3).

하늘 아래 산과 물은 동떨어져 있지 않고

경계를 허물며 서로 가까이 껴안고 있습니다.

 

▲(합수점 풍경 4).

오늘의 걸음에 담긴 작은 수고가 옹골차게 모여,

내일을 벅차게 하는 소중한 씨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산자분수령을 기본으로 하는 산경표,

안동댐과 임하댐 주변이 중요한 지점임을 확인합니다.

 

산줄기가 소멸하고 물줄기가 합수로 흥하는 순리,

네 곳의 합수점이 모여드는 형국으로 중요성이 매듭지어집니다.

 

▲(합수점 조망 1).

끝까지 따뜻한 눈길로 영등지맥을 바라보는,

구암지맥 약산의 돈독한 우정이 참 눈물겹네요.

 

▲(합수점 조망 2).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산줄기가

잔잔한 물결을 타고 소실점 너머로 부활하기를 소망합니다.

 

▲(합수점 조망 3).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대자연의 데칼코마니 작품이 합수점에 전시되어 있네요.

 

▲(날머리 갈림지점 조감도).

안전성,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②지점보다는 ①지점을 적극 추천합니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일상의 고민은 일단 저 호수에 던져 둡니다.

 

▲이 걸음이 끝나면 또 득달같이 달려들겠지요.

산자락에 거미줄처럼 널려 있는 건강한 그리움이....

 

Ⅴ. ( Epilogue )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막판의 경계, 임하호.

스스로에게 물었었지. 대체 여기가 어디지?

말없는 하늘과 햇살 아래 눈동자가 텅 빈다.

대답 대신 주어 목적어를 뺀 독백이 돌아왔다.

“어떤 아름다움은 세상과 현실을 초월하지.

깃털처럼 숱한 하루지만, 오늘을 꼭 기억해.”

 

산자락 모퉁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그리움.

그리움의 크기는 삶의 등짐 무게와 비례하지.

현실에서 두들겨 맞은 맘을 산길에 기대면,

허방처럼 기우뚱하던 삶의 추는 균형을 잡지.

힘들 때 오늘 풍경을 꺼내어 위로 받고 싶다.

 

== 읽어주신 소중한 당신, 늘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