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는 갈 수 없는 막판, 임하호에서 산은 자신을 죽였다. ▣
▲영등지맥에서 바라본 구암지맥 약산의 모습.
Ⅰ. ( Prologue )
산길 능선은 그리움이 솟아나는 우물이죠.
산꾼은 산길에서 많은 靈感을 길어 올립니다.
낯선 산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느낌,
산들의 산꾼 마중은 기다림의 이른 이별이고
산꾼의 산들 배웅은 기다림의 이른 시작이죠.
산줄기와 물줄기의 딴딴한 엮음새에 편승해
오늘도 生滅의 웅숭한 이치를 깨치러 갑니다.
물줄기는 반변천•대곡천의 합수로 더 生하고
산줄기는 아기산 이후 점점점 滅해가는 구도.
임하호에 담긴 生滅의 비밀을 캐보려 합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5녕 2월 2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동지 여러분.
3. 어디를 : 〔영등지맥 셋째 마디〕 (약12.5km).
덕강재~아기산~527봉~합수점~날머리(박곡리 336).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발자취 및 느낌표 버무리기
▲수몰지역의 광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700년 세월을 켜켜이 살아온 용계리 은행나무!
마침 영등지맥 길목에 터 잡고 있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요.
▲지구의 ‘살아있는 화석’ DNA를 물려 받아서인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네요.
▲여러분들의 정성과 기술(上植)로 살아남기는 했으나,
원래의 몸집과 생명력은 아니라고 하니 넘넘 안타깝네요.
생명체는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한번 더 실감합니다.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1). 동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봄, 새순이 돋는 용계리 은행나무는 얼마나 새틋할까요.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2). 남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여름, 무성한 잎을 달았을 때의 모습은 얼마나 풍성할까요.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3). 서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가을, 노랗게 물든 용계리 은행나무를 상상하니 뭉클해집니다.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 4). 북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이 겨울의 용계리 은행나무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네요.
▲오늘의 들머리, 덕강재 삼거리에 닿았습니다.
용계리 은행나무에게서 전수받은 영험한 기운을 거름 삼아,
오늘도 산능선 구석구석에 유쾌한 걸음을 한번 새겨볼까 합니다.
▲자신이 읽은 책은 결국은 자신이 된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걷는 산은 결국 나 자신이 되지 않을까요.
▲낯선 산길이 아는 산길로 변하는 짜릿한 경험!
그 특별한 경험이 산행의 강력한 동력임을 깨닫습니다.
▲책의 중요 구절에 밑줄을 긋는 심정으로,
산길 한 걸음 한 걸음에 밑줄을 그으며 오릅니다.
▲본질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은 요즘 세태.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잡생각을 버리려고 오르는데, 잡생각에 포위되었네요.
▲여기까지 와서 아기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산꾼이라 자처하는 산똘뱅이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요.
오늘 산행의 핵심은 아기산임을 한번 더 명심합니다.
▲우측의 565.8m봉을 곁눈질하면서,
지름길인 사면길을 사브작사브작 더듬어갑니다.
▲아기산 고스락이 범산 레이다에 들어왔습니다.
산속에선 세상소리가 안 들리니 속도 시끄럽지 않네요.
편안한 마음으로 산만 바라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봉황사 갈림길).
절이름도 시간의 흐름처럼 돌고 도는 가 봅니다.
창건 당시(644년) 鳳凰寺였는데 黃山寺로 개명되었다가
2006년 보수공사하면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고 하네요.
▲초침 바늘이 잘게 쪼개놓은 시간을 등에 업고, 부단히 달려갑니다.
▲째깍째깍 쉼없이 흐르는 시간도 둥근 시계 속에 갇혀 있지요.
흘러가지면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세상사 아닐까 싶네요.
▲(아기산 고스락 풍경 1).
한줄기 바람처럼 슬퍼할 틈새에 인생은 가버리겠지만,
낙락장송 한 그루, 아기산을 지키며 시간을 붙잡고 있네요.
▲(아기산 고스락 풍경 2).
태백산 지맥인 일월산에서 뻗어내린 산이 아기산이라...
좀 더 정확하게 의역을 해 본다면 이렇게 되겠지요.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낙동정맥이고,
낙동정맥에서 분기한 산줄기인 영등지맥 상에 솟은 산’이라고...
▲(아기산 고스락 풍경 3). 아기산은
‘백두대간이 낳고 낙동정맥이 키운 산’이라는 말이 맞겠지요?
▲(아기산 고스락 풍경 4).
이름 없이 태어나 이름 하나 짓고 살아가는 인생이여!
문득, 소쩍새가 심금을 튕기는 봄날에 또 아기산을 오르고 싶어라.
▲(아기산 고스락 풍경 5).
세익스피어가 '리어왕'의 입을 빌려 말했지요.
태어날 때 우는 건 바보들의 무대에 나와서 슬프기 때문이라고.
아, 아기산에 나를 데려다놓은 우연의 발걸음이 범산을 아리게 합니다.
▲(아기산 고스락 풍경 6). 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듭니다.
발바닥이 오로지 산행을 위해 생겨난 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입니다.
▲(아기산 고스락 풍경 7).
아기산 표지석이 살짝 기울었네요.
어차피 삶은 거위(鵝)처럼 뒤뚱대며 살아가는 것.
▲순리대로 다시 마루금으로 돌아가는데,
죽순이 올라오듯 시퍼런 질문이 삐죽삐죽 올라옵니다.
떠난 적이 없는 인생인데, 되돌아가는 인생이 있으려나.
▲다시 마루금에 발을 얹어놓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평화를 되찾고....
▲산에서 바라보면, 아랫 세상이 그지없이 아름답게 보이지요.
▲(531.7m봉).
▲산에서 들으면 아랫세상의 악다구니도
바람소리에 깎이고 다듬어져 그리운 소리가 됩니다.
▲(헛돌이 주의 지점).
▲가풀막진 내림막에 낙엽이 쌓여,
눈이 쌓인 것처럼 엄청 미끄러웠지요.
아이젠을 장착하고 가풀막을 즐깁니다.
▲새벽밥 먹고 떠났더니 뱃속에 허기가 불길처럼 번집니다.
허기는 원망으로 변해 산으로 향했지만, 산에게는 죄가 없지요.
▲(수곡용계로).
가풀막 내림길에 정신을 빼앗기고 집중하다 보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떡하니 포장도로가 나타났네요.
▲임도삼거리에는 색다른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깨금발을 하고 고갯마루 풍경을 들여다보다가,
물살에 떠밀리듯 산자락으로 붙어 오르기 시작했지요.
▲오르면서 돌아보았는데, 풍경은 눈길조차 주지 않네요.
자신이 세상에게 팽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울적했답니다.
▲434.6m봉에 올라 푸근하게 생긴 봉우리를 바라봅니다.
책장에 꽂힌 책의 등을 쓸어 보듯, 527.5m봉을 눈으로 쓰다듬었지요.
▲산자락에 파묻혀 그저 오르고 내리다 보면,
자신은 없는데 세상은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거대한 산자락에선 나 자신이 작아지지요.
무능한 잉여인간 같기도 하고, 어정쩡한 식충이 같기도 하고.
▲드난살이 하듯 산을 찾다보면, 산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굴곡진 생을 살아온 소나무가 울먹입니다.
명치에 얹혀 있던 소리를 토하며 울먹이는 듯합니다.
▲(527.5m봉).
탑돌 하나하나에 얹혀있는 간절함이 모이고 모여 산이 되고...
▲때마침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등을 떠밀었네요.
반변천과 대곡천의 합수점으로, 더는 갈 수 없는 막판으로.
▲구글지도에는 잘 관리된 밭뙈기로 보였는데...
산자락이 온통 태양광 발전시설로 덮여 있었네요.
▲남향받이에 앉아있는 집들이 따뜻한 볕을 받고 졸고 있습니다.
▲유순한 능선과 파란 하늘과 고고한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앙상블.
그 아름다움 앞에서, 입은 바늘로 꿰매놓은 듯 꾹 다물려 침묵하게 됩니다.
▲태양광시설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산자락이 벗어놓은 허물처럼 보여서...
▲눈을 감아도 떠오르고 눈을 뜨고 있어도 떠오르는 산.
산속에 들어있어도 그리워지는 산자락으로 또 들어갑니다.
▲옹종한 무덤에게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있어,
그 발톱으로 능선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았네요.
▲멀리서부터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재선충 방지를 위해 소나무를 토막내는 소리였네요.
▲(돌아보기).
아쉬움이 담긴 얼굴로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돌아봅니다.
왼쪽 둥글게 곡선미를 뽐내는 봉우리가 돌탑봉인 527.5m봉.
▲시선의 각도를 달리했더니 새로운 풍경이 열립니다.
반변천 건너 구암지맥의 약산이 허공을 찌르고 있었네요.
▲아침녘의 아찔하던 안개늪을 뚫고나와,
짱짱한 햇살이 산자락에 골고루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에 중독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일단 중독이 되면 거기서 해방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압니다.
▲세상 들여다보는 데에는 작은 구멍 하나면 충분하지요.
하물며 산을 들여다보는 데는 인간의 눈보다 클 필요가 없지요.
▲사람이면 사람 맛이 있어야 진국이지요.
아픈 일은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해주는....
산도 산맛이 있어야 더 애틋한 그리움이 움트지요.
거칠고 야생스러울 때 더 짜릿한 산맛이 일어납니다.
▲(356.1m봉).
▲해맑은 햇살이 산자락 사이사이로 밀고 들어옵니다.
어둠에 뭉개져 태아의 얼굴로 퇴행했던 산 속내가 하나씩 드러납니다.
▲숫돌에 간 낫의 시퍼런 날처럼,
쨍한 정적이 무덤 주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산줄기는 의구한데 사람은 세월과 함께 늙어가고 있죠.
인간의 그 한계적인 상황으로 인해 더 산에 빠져들게 됩니다.
▲포장이 된 마루금을 응시합니다.
망아의 순간, 바람이 불어와 햇살의 결을 흐트려놓네요.
▲내내 영등지맥을 멀리서 바라보는 봉우리가 있었네요.
진행방향 좌측, 반변천 건너편, 구암지맥의 명품봉 藥山峰.
▲산줄기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면서도,
흘러가지 않고 계속 산속에 머물러 있지요.
▲(우내미골 고개).
▲원래도 오지인데 임하댐으로 인해 오지 중의 오지로 변한 곳이죠.
상박실마을에서도 꼬부랑 임도로 3.5km를 들어와야 하는 곳이라네요.
▲산과 물이 포위하듯 둘러싼 궁벽한 산길, 룰루랄라 걸어갑니다.
▲잠깐 멈춤. 잠시 고민.
좌측 산줄기가 우측 산줄기보다 700여m 더 길다는 사실.
단, 반변천과 대곡천의 합수점을 지향한다면 우측 산줄기가 정답.
▲금슬 좋은 부부는 눈만 맞아도 애가 들어선다고 하지요.
산이 너무 좋으면 산생각만으로도 그리움이 넘쳐 흐르지요.
하물며 두 발로 걸으며 눈으로 마주치는 산은 말해 무엇하리오.
▲돌아보니,
돌탑이 있던 527.5m봉이 수려한 곡선미를 자랑합니다.
▲합수점을 알현하고 되돌아 나와,
여기 안부에서 우측으로 날머리를 잡아도 될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다음 안부에서 우측 날머리를 찾는 게 현명한 방법입니다.
▲소나무들의 공동묘지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끝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산줄기의 기세는 줄어들 줄을 모릅니다.
▲마지막 봉인 260m봉이 의연하게 솟아있습니다.
산줄기 산행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님을 절감합니다.
▲(날머리 갈림지점).
합수점을 왕복 약2.4km 걷고 돌아와, 우측 우내미골로 빠지는 구도.
▲막판에 탄탄한 임도를 서비스로 제공해 주네요.
농사일은 4계절 24절기 자연의 지배를 받지만,
산행은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는 걸 한번 더 깨우칩니다.
▲햇살과 어울린 솔향! 무덤과 어울린 세월 냄새!
둘이 바람에 섞이면서 마루금을 아득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260m봉). 산공기를 보약처럼 흡입하며 마지막 봉까지 왔네요.
▲(260m봉 조망 1). 갓난애 엉덩이 만지듯,
아슴아슴한 눈빛으로 아기산을 쓰다듬어 봅니다.
▲(260m봉 조망 2). 527.5m 돌탑봉이
만삭의 배처럼 부풀어 올라 지고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산줄기가 호수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설수록,
세상의 다른 소리는 물소리 뒤로 밀려나 들려오지 않네요.
▲(합수점 풍경 1). 때 되면 만날 걸, 뭐가 그리 중한지....
똥줄 타게 바쁘게 걸어서, 더는 갈 수 없는 막판에 이르렀네요.
▲(합수점 풍경 2).
저수구역, 수준점 시설이 막다른 곳임을 표시하고.
▲(합수점 풍경 3).
하늘 아래 산과 물은 동떨어져 있지 않고
경계를 허물며 서로 가까이 껴안고 있습니다.
▲(합수점 풍경 4).
오늘의 걸음에 담긴 작은 수고가 옹골차게 모여,
내일을 벅차게 하는 소중한 씨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산자분수령을 기본으로 하는 산경표,
안동댐과 임하댐 주변이 중요한 지점임을 확인합니다.
산줄기가 소멸하고 물줄기가 합수로 흥하는 순리,
네 곳의 합수점이 모여드는 형국으로 중요성이 매듭지어집니다.
▲(합수점 조망 1).
끝까지 따뜻한 눈길로 영등지맥을 바라보는,
구암지맥 약산의 돈독한 우정이 참 눈물겹네요.
▲(합수점 조망 2).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산줄기가
잔잔한 물결을 타고 소실점 너머로 부활하기를 소망합니다.
▲(합수점 조망 3).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대자연의 데칼코마니 작품이 합수점에 전시되어 있네요.
▲(날머리 갈림지점 조감도).
안전성,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②지점보다는 ①지점을 적극 추천합니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일상의 고민은 일단 저 호수에 던져 둡니다.
▲이 걸음이 끝나면 또 득달같이 달려들겠지요.
산자락에 거미줄처럼 널려 있는 건강한 그리움이....
Ⅴ. ( Epilogue )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막판의 경계, 임하호.
스스로에게 물었었지. 대체 여기가 어디지?
말없는 하늘과 햇살 아래 눈동자가 텅 빈다.
대답 대신 주어 목적어를 뺀 독백이 돌아왔다.
“어떤 아름다움은 세상과 현실을 초월하지.
깃털처럼 숱한 하루지만, 오늘을 꼭 기억해.”
산자락 모퉁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그리움.
그리움의 크기는 삶의 등짐 무게와 비례하지.
현실에서 두들겨 맞은 맘을 산길에 기대면,
허방처럼 기우뚱하던 삶의 추는 균형을 잡지.
힘들 때 오늘 풍경을 꺼내어 위로 받고 싶다.
== 읽어주신 소중한 당신, 늘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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