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금 산행/자개지맥

자개지맥 1구간 (고치령~자개봉~천마산~부엉재~모치고개)

범산1 2024. 1. 14. 16:41

소백산신과 태백산신의 배웅을 받다.

 

▲천마산에서 바라본 자개봉.

 

Ⅰ. ( Prologue )

 

십승지를 추구했던 선조들은 제1의 안전지대로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의 땅, 양백지간을 꼽았지요.

 

양백지간 길목에 고치령이 있고, 산령각이 있고,

소백산신(금성대군))과 태백산신(단종)이 있습니다.

 

대간은 거기에서 자개지맥을 살포시 떨구고는

蓮花浮水의 땅 무섬을 향해 등을 떠밀고 있습니다.

 

부석사 배흘림기둥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라지요.

그 부석사를 바라보는 자개지맥의 조망은 어떨까요.

 

Ⅱ. 자개지맥 얼개

 

백두대간의 양백지간에서 남쪽으로 분기하는 산줄기가 있으니,

서천 동쪽 울타리인 동시에 내성천 상류의 서쪽 울타리로 매김하는,

도상거리 48.4km 산줄기를 자개지맥(서천지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고치령 근처 대간(956.2m봉)에서 분기한 산줄기는 자개봉, 천마산,

국모봉, 대마산을 지나 종릉고개에서 두 갈래로 분기하며 내달립니다.

좌측 마루금은 갓근이재를 훑어내며 무섬교 합수점으로 향하고

우측 마루금은 유릉산을 껴안고 무섬교 합수점으로 향하게 되는데.

도상거리 기준으로 볼 때 전자가 약1.2km 더 긴 것으로 나타납니다.

 

Ⅲ. 산행 얼개 

 

▶언제 : 2023년 11월 5일 (일요일).

 

▶어디 : 자개지맥 첫째 마디 (고치령~자개봉~천마산~부엉재~모치고개)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

 

Ⅳ. 산행 지도

 

Ⅴ. 산행 발자취 및 느낌표 버무리기

▲(고치령 풍경 1).

하루종일 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청의 엄포가 있었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고치령은 농익은 계절색을 아낌없이 뿜뿜.

 

▲(고치령 풍경 2).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거기 맞추어 산을 품으리라 마음 먹었는데,

하늘 위를 덮고있던 먹장구름 색깔이 점점 엷어지는 기색을 보입니다.

 

▲(고치령 풍경 3).

소백산에서 몰려오는 뭉근한 기운에 심장이 펌프질을 해댑니다.

 

▲(고치령 풍경 4).

세월 속에 잠들어있던 고치령(串峙嶺)에 대한 기억 하나.

오래 전 대간종주 때 성황당 안에서 몸을 하룻밤 의탁했었는데,

어째 그때의 기억과 퍼즐이 잘 맞추어지지 않으니 무슨 연유일까요.

 

▲(고치령 풍경 5).

문을 닫고 아늑한 실내에서 잠들었던 기억이 분명 있는데,

지금 산령각에는 그럴 만한 공간이 없으니, 귀신에 홀렸던 걸까.

안내판을 읽다가 어긋난 기억의 실마리를 겨우 잡을 수 있었네요.

아하, 화재로 인해 2004년에 새로 지으면서 내부 공간이 좁아졌네요.

 

▲(고치령 풍경 6).

소백산신과 태백산신께 소곡주 한 잔 올리고,

두 분의 배웅을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입산합니다.

 

▲출발선에다 방점을 찍고 출발하는, 이상한(?) 마루금여행이 되었네요.

 

▲오늘 산행은 백두대간을 걷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처절했던 대간 종주의 간절함을 출발점의 마음가짐으로 치환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며 말이 없고,

그때나 지금이나 산꾼은 자신을 제어할 핸들로 침묵을 택했습니다.

 

▲(자개지맥 갈림지점).

고치령 출발해서 사브작사브작 1km 정도 걸었더니,

대간은 ‘이제 그만’ 하면서 매정하게 등을 떠밀고 있습니다.

 

▲산이 전해주는 침묵의 행간을 못 읽은 게 있나, 싶어

마음심지를 추스르며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며 오릅니다.

 

▲(956.2m봉), 실질적인 지맥 분기봉입니다.

관리되지 않는 헬리포트는 잡초들 은거지가 되었네요.

직진하기 십상인 지형입니다. 좌틀해야 합니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세월이 흘러갑니다.

時流에 끌려 건너온 지난 날들이 급류처럼 지나갑니다.

 

▲우측 뒷봉우리가 자개봉입니다.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마다 땀방울은 비움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혈관을 타고 돌던 분노도, 불붙은 숯조각 같던 욕심도 다 허상이었음을.

 

▲(자개봉 풍경 1).

산줄기의 이름을 꿰찬 봉우리 치고는 모양새가 좀 초라합니다.

 

▲(자개봉 풍경 2).

자개봉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겨우살이는 그림의 떡.

 

▲입산금지 팻말의 서막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후 지겹게 나타난 똑같은 팻말로 인해 짜증이 폭발했답니다.

 

▲잣나무 조림지역인가 봅니다.

 

▲잦은 출입금지 팻말로 인해 인간 난로가 됐던 시점이라,

멋진 소나무의 등장은 불쏘시개를 피할 시원한 묘수로 작용했답니다.

 

▲세월에 시달려 너덜거리는 움막이 잡생각을 키웁니다.

답은 나오지 않고 의문만 고철더미처럼 쌓여가는 세상사의 단면이겠지요.

 

▲풍경의 아름다움은 정신줄의 비타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움막은 조금 상태가 진화했네요.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습니다.

사랑의 화살을 꽂아 님에게 날려보내고 싶네요.

 

▲여틈하게 남아있던 육체적 피로감이

확 트인 공간으로 인해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좌측의 산줄기들은 乃城川의 울타리로 충실히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천마산으로 향하는 산줄기는 우측 西川의 울타리로 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빼곡한 덤불 속으로 들어섰더니,

숨구멍에 오토바이 엔진이라도 단 것처럼 숨소리가 요란해졌네요.

 

▲정신없이 덤불을 헤쳐나와 옷가지를 털면서 생각합니다.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사로서 운명이라는 검사에게 물어보았지요.

산길에 빽빽이 들어차서 산꾼의 앞길을 막는 덤불은 무죄입니까?

 

▲문장에서 행갈이를 하며 주제를 전환하는 부분이 있듯이

산행에도 룰루랄라 산길과 지옥 같은 덤불길이 교차합니다.

두 산길 사이에 놓인 여백의 힘으로 끝까지 걸어가게 됩니다.

 

▲단풍색 짙은 가을에는 세월의 기척에 신경이 쓰입니다.

 

▲산자락을 무심히 걷다 보면, 세상이 스르르 사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411.9m봉)

 

▲오늘 구간은 사과밭을 무수히 통과하게 됩니다.

다행히 대부분 수확이 끝난 상태라 부담없이 통과했네요.

 

▲(무넘어고개).

산줄기 산행에서 고갯마루는 산행 흐름을 다독이고 점검하는 쉼터.

 

▲건강한 소나무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심장은 벌렁벌렁.

 

▲누군가 무명봉에 걸어둔 해발고도를 확인할 때마다,

그 정성과 배려에 힘입어 한 번 더 자신을 점검하게 됩니다.

 

▲계절의 끝자락을 붙잡고 외롭게 피어있는 용담꽃.

 

▲희망이 미끄러운 비누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갈 때마다,

산을 오르면서 다음 희망을 기다리며 허전함을 채웁니다.

 

▲(돌아보기). 자개봉은 벌써 왼쪽 멀리로 물러나 있고.

 

▲우격다짐으로 덤불을 헤쳐나갑니다.

땀방울은 가장 간절한 고백임을 새삼 깨달아갑니다.

 

▲망막을 건드리는 풍경 위로 먹구름은 표정 없이 흘러가고.

 

▲세상에는 외면해봐야 소용없는 일들이 있지요.

세상에 태어난 일, 누군가의 자식이 된 일 등등.

범산에게는 산을 사랑하는 일이 또한 그러합니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기름이 바닥났습니다.

기름도 채울 겸 부석면이 품은 산세도 눈요기할 겸

잠시 방앗간 옆을 지나가는 참새 신세가 되기로 합니다.

 

▲웅웅대는 광장에서도 단 한 번에 구분되는 목소리가 있듯이,

겹겹의 산너울 속에서도 한 눈에 콱 집히는 멋진 풍경이 있습니다.

오늘, 부석사를 품은 봉황산, 축서사를 품은 문수산이 그렇습니다.

 

▲(소천리 전망터 조망1).

대간이 마구령을 거쳐 갈곶산에서 선달산으로 좌틀하기 직전,

남쪽방향으로 옥동자 하나를 떨구었으니 그게 바로 봉황산이지요.

 

▲(소천리 전망터 조망2).

옥돌봉에서 비롯되는 문수지맥(내성지맥)이 어렴풋이 실감되고.

 

▲오늘 사과 과수원을 많이 지나왔는데,

부석농협 앞 사과 집하장 규모가 엄청나네요.

▲수화고개(그까무재).

고갯마루 오르는 계단길은 산세상으로 통하는 출입구.

 

▲(돌아보기 1).

송전탑에서 연결되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돌아보기 2).

참새가 방앗간 들렀다가 지나온 길이 발 아래에 펼쳐지네요.

 

▲저 수로가 뚫고 지나가는 산허리는 참 아프겠다 싶네요.

역치(閾値, threshold, 문턱값)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마라톤에서의 Runer’s High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이는데요.

 

▲산을 많이 오른다고 산이 무조건 좋아지는 건 아니죠.

일정 횟수 이상 올라야 비로소 산사랑이 움트는 이치라고 할까.

 

물이 끓는 점(100도)이 있듯이 그 일정 횟수가 문턱값이 되는 거죠.

우리는 과연 산사랑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산자락에 들어있는 동안은, 태어난 그대로 야생의 시간.

 

▲또 사과밭을 통과합니다. 온몸에 사과의 붉은 물이 들 듯합니다.

 

▲산길은 순해졌다가 험해졌다가 하며 밀당을 합니다. 그게 꿀맛이죠.

 

▲여유가 있어서 산행을 자주 하는 게 아닙니다.

산행을 하니 비로소 각박하던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산길에 빠져 혼이 나간 얼굴로 걸어가면

산은 말없이 등을 쓸어주며 기력을 보충해줍니다.

 

▲(천마산 풍경 1).

천마산 꼭대기에 산불초소가 돌아앉아 있습니다.

속내를 내보이며 내밀한 고백이라도 하듯 다소곳이.

 

▲(천마산 풍경 2). 비록 햇살 없는 우중충한 날씨이지만

거침없이 터지는 조망에 기분이 두어 단계 수직 상승합니다.

 

▲(천마산 풍경 3).

배터리가 나가서 암전상태였던 화면에 갑자기 불이 들어오듯

하루종일 하늘을 덮었던 구름 사이로 웃음처럼 햇살이 터졌습니다.

 

▲(천마산 풍경 4). 숨을 두어 박자 쉬고 생각해보니,

천마산에 누워 내려다보는 이 분. 참 행복해 보입니다.

이승 떠날 때 ‘당신은 웃고 모두가 우는 인생을 살라’ 했거늘

이 분은 죽어서도 늘상 웃으며 그말을 실천하고 있는 듯합니다.

 

▲(천마산 조망 1). <고치령 기준, 360°회전, 시계진행방향 순>.

구름 잔뜩 낀 하늘이지만 이 정도라도 감지덕지하며 즐깁니다.

 

▲(천마산 조망 2). 마음으로 다시 걸어보는 대간길입니다.

 

▲(천마산 조망 3). 갈곶산 뒤의 선달산은 구름 속에 숨어있을 테고.

 

▲(천마산 조망 4).

아, 옥돌봉. 얇은 텐트를 사이에 두고 짐승과 대치했던 아찔한 기억이여.

 

▲(천마산 조망 5). 매봉산 일원이 해맞이 명소라 하던데.

 

▲(천마산 조망 6). 매봉산과 학가산 사이,

원없이 펼쳐진 낮은 산들이 가슴을 뻥 뚫어줍니다.

 

▲(천마산 조망 7).

육안으로는 학가산의 윤곽이 잡혔었는데, 카메라엔 잡히지 않았네요.

 

▲(천마산 조망 8). 도솔봉, 죽령은 오리무중이라,

뛰어들어 헤엄이라도 칠 수 있을 것처럼 안개가 짙네요.

 

▲(천마산 조망 9). 오늘 가장 아쉬운 점은 소백산 하늘금을 볼 수 없다는 것.

 

▲날씨 때문에 아쉬워도, 두 팔 벌려 만세를 불러봅니다.

 

▲세월이 가도, 공간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게 산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부엉재 500여m 전 지점 (헛돌이 주의지점).

 

▲뿔을 세우고 돌진하는 염소처럼, 공격적으로 산길을 밟아갑니다.

 

▲부엉재(보계실고개).

이 시간, 고갯마루는 심장에 노을 같은 온기를 불어넣는 공간이지요.

 

▲산은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끄나풀과 같은 존재입니다.

 

▲가랑비나 장대비나 몸이 젖는다는 점은 매한가지이듯,

임도나 거친 산길이나 두 발로 걷는다는 건 매한가지이지요.

 

비록 희망을 가진다고 절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곤이 엄습하는 시간에는 임도가 훨 쉬운 길이지요.

 

▲임도를 따라 2.5km 정도를 내내 걸어야 하는 여정입니다.

임도를 걷다보면,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는 느낌이 들어 불편해집니다.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물은 현재. 두 번의 인생은 없지요.

그래서, 걷는 동안 줄창 인생을 피드백 해주는 산은 비교 불가한 큰 선물입니다.

 

▲연을 높은 하늘에 두둥실 띄워 올리듯,

오늘 걸었던 산행의 좋은 기억을 마음에 띄워 올립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띄우며 걷다보니 임도와 헤어져야 할 시간.

앞으로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사람 말고 산이라는 우주를요.

 

▲이 세상 살면서 저 세상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는 게 인간의 숙명.

몸은 여기에 있지만 정신은 여기에 없는, 유체이탈 현상을 지양합니다.

특히 산행하면서는 산에 집중하여 山我一體가 되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산을 알기 위해, 거기 빠져드는 자신을 알기 위해,

산과 함께 사계절을 보내며 그 시간들을 통과하고 싶습니다.

 

▲(모치고개).

날머리에 이르니,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Ⅵ. 산행 기록

 

Ⅶ. ( Epilogue )

 

하루간 훑고다닌 산줄기를 하나씩 복기해 보면,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듯 풍경들이 지나갑니다.

산의 유혹은 저항 불가한 무지막지한 장력이지요.

그 장력의 마법 속에 나를 맘껏 풀어놓고 싶었고,

발끝을 지팡이 삼아 걸어다니는 산이고 싶었습니다.

 

아둔해 바람의 행간을 다 읽어낼 재간은 없지만,

잽을 날리듯 훅훅 달려드는 바람이 넘넘 좋았지요.

산빛이 눈을 교란하고, 계절빛이 후광을 입힌 건지,

마음호수에 추풍낙엽이 부레옥잠처럼 떠다니더니,

종래는 고운 단풍이 정신줄의 비타민이 되었답니다.

 

허접한 글을 읽어주신 귀한 당신께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