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금 산행/자개지맥

자개지맥 2구간 ( 모치고개~국모봉~대마산~삽재)

범산1 2024. 1. 16. 16:55

야산 언덕바지에서 맥이라는 보물을 캐다.

 

영모암에서 바라본 옥돌봉과 문수산 방향 풍경.

 

Ⅰ. ( Prologue )

 

어느 날, 산이 마음 속 양지녘에 내려앉았습니다.

거기에 실하고 새틋한 느낌이 움트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산은 으뜸의 든든한 내 편이 되었습니다.

이러다가 내 자신 산이 되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자신을 점검합니다. 나는 산을 얼마만큼 닮았는가.

산이 전해주는 속말을 알아들을 눈썰미는 생겼는가.

추위는 밖에서 오지 않고 몸 안 공허에서 오는 법.

마루금이 하늘금 되듯 범산이 산 되는 날이 있을까.

 

자개지맥에게 내 마음을 전합니다. 넌, 내 울타리야.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3년 12월 3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

 

3. 어디를 : 자개지맥 둘째 마디 (모치고개~국모봉~대마산~마근대미~삽재).

 

.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모치고개).

산행 들머리는 초겨울의 쌀쌀하고 달콤한 공기로 가득하네요.

 

오늘도 귀를 크게 열고 산의 목소리를 들으렵니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경청하면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겠지요.

 

자개지맥은 초반부터 매운 맛을 보여줍니다.

네 발로 기어오르며 일상에서 달고온 찌꺼기를 털어내려 애를 씁니다.

 

겨울이라 다행인 야생의 산자락이네요.

기가 막힐 정도로 너무 거칠어 그저 넋을 놓고 히죽대었지요.

 

초반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잔잔한 산길이 나타나네요.

솔향과 바람소리와 잔잔한 햇살이 오감을 채워주며 반깁니다.

 

(임도사거리).

 

멋진 산길이 사람 가슴의 빈틈을 파고듭니다.

산이 겨울과 합작해 비장의 무기를 꺼내든 셈이죠.

 

▲저 소나무, 이사를 온 걸까,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말 안 해도 산자락에 있단 것만으로 힘이 됩니다.

마치 전생을 함께 가진 것처럼, 그런 결속이 있습니다.

 

맑은 하늘이 파란 색감을 자랑하며,

백두대간의 멋진 하늘금을 선보입니다.

 

오늘은 소백 연봉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는, 복받은 날.

흰 눈을 이고 있는 소백산이 일상에서 받은 상처를 쓰담쓰담.

 

산행은 어깨 비비적거리며 웃음과 눈물을 주고받는 과정입니다.

 

(구구수목원 갈림지점).

마루금에서 400m 물러나 있는 國慕峰을 사모합니다.

 

국모봉 만나러 가는 길목에 첫사랑의 풋내가 풍깁니다.

첫사랑이란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원본임이 분명합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마치 블랙홀로 들어가듯 아득합니다.

 

(국모봉 고스락 풍경).

산불초소가 덩굴에 포위된 채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었네요.

 

(국모봉 고스락 조망 1).

문수산에서 들려오는 겨울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국모봉 고스락 조망 2).

, 열린 마음으로 걸어온 길을 피드백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고 시야를 넓히려는 마음입니다.

 

산멍, 하늘멍, 솔멍에 빠져 한참을 한 자리에 붙박여 있었네요.

 

산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묶어주는 끄나풀이 됩니다.

산자락의 자유로운 공기가 숨 쉴 여백을 제공해줍니다.

 

임도가 우측으로 방향을 트는 지점에서, 산자락으로 스며듭니다.

 

맑은 햇살이 겨울 나목들을 따뜻하게 비춰줄 때면,

산은 상실의 상처들을 합친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진행방향 좌측으로 멋진 조망창문이 열려 있었네요.

잡동사니들을 머리에 이고 이리저리 산길을 헤집고 다니다가,

마지막 신분으로 분류되는 명함이 산쟁이 ‘범산’이길 소망합니다.

 

왼쪽 아래, 잘 다듬어놓은 묘지군이 있어 폭풍 검색해 보니,

순흥안씨들 묘소를 관리하는 제실, 영모암(永慕庵) 시설이네요.

 

(영모암 뒷산 조망 1). , 옥돌봉!

소백산에서 태백산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산.

 

(영모암 뒷산 조망 2).

매그럽게 연결된 대간과 문수지맥 풍경이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줍니다.

 

대차대조표의 좌우가 균형을 이루듯,

마루금의 좌우측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산경 원리를 증명합니다.

 

(대마고개).

 

평지에서 산자락으로 파고들 때마다 몸 속에는 에로틱한 전율이 출렁입니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산속에는 범산과 코드가 맞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면서 비탈을 오르면서도 때론 외로워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고독 속에 진실을 꼭꼭 숨기고 사는가 봅니다.

 

한가지 생각이 반복되어 농익게 되면 기억이 되는 것이겠지요.

산에 가야겠다고 작정을 하면 산은 늘 생각의 범주에 머물게 됩니다.

 

(대마산 고스락 풍경 1).

대마산에는 보기 드문 대삼각점과 무덤 1기가 있으며,

뻥 뚫리는 조망과 가슴 터지게 팽창하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대마산 고스락 풍경 2).

초겨울의 맑은 햇살 아래 해맑은 山情이 무르익어 갔지요.

 

(대마산 고스락 조망 1).

학가산이 문수지맥을 대표해서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내고,

 

(대마산 고스락 조망 2).

저수령~도솔봉의 굵직한 대간 앞에는 난쟁이 자구지맥이 흐르고.

 

(대마산 고스락 조망 3).

대간 마루금은 자신의 운명을 안고 느릿느릿 흘러갑니다.

 

대마산에서 100m 진행지점에서 좌틀해야 하거늘,

계속 직진해서 500m를 헛돌이하고 돌아와야 했네요.

헛돌이길에서 만난 영주 숲정이길시그널이 유독 아름다웠습니다.

 

(대마산목장 풍경 1). 수확하지 않은 무우가 밭뙈기채 버려져 있네요.

 

(대마산목장 풍경 2).

희망과 상실의 영원한 순환이라는 주제에 사로잡혔습니다.

열정이나 원망 모두 폭발 직전의 아슬아슬함이 엿보입니다.

 

(대마산목장 풍경 3).

멍멍이들이 청량한 겨울공기를 쩌렁쩌렁 찢어놓고 있는 가운데,

젊은 친구가 퉁퉁 부은 표정으로 못마땅해 합니다. 낮잠 깨웠다고 그러시나?

 

(대마산목장 풍경 4).

흘러간다는 점에서 사람 사는 세상과 사람 사는 자연이 닮아 있지요.

 

(삼거리현). 다시 산으로 파고 들면서 생각합니다.

산은 공감의 대상이지 결코 코스프레의 수단이 아님을 자각합니다.

 

(돌아보기). 산 위에서 지나온 대마산목장을 돌아봅니다.

 

(312.4m)

 

고갯마루 틈새로 신음 같은 바람이 파고 듭니다.

사람과 사람, 산과 산을 잇는 고갯마루에 정적이 흐릅니다.

 

은하수 별빛으로 길을 찾아간다는 쇠똥구리처럼,

자신의 본능과 눈어림을 신뢰하면서 마루금을 찾아갑니다.

 

(335.9m)

 

멀리 희미하게 둥싯 떠있는 봉우리는 학가산 실루엣.

머릿속에서 음악이 반음 내림으로 나직하게 연주되는 느낌이네요.

 

자신이 걸친 코트를 자신 눈이 아니라 타인 눈으로 살펴보듯이,

백치 같은 마음으로 무채색 산마루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걸어갑니다.

 

(281m).

 

석곽묘의 흔적인가.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웅변하고 있는 듯.

 

무심히 산길을 걸어가노라면 머릿속을 가격하고 스쳐가는 게 있지요.

산길의 구도가 극단적인 추상화로 그려져 화가가 된 느낌이 되곤 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이 객쩍어 무료할 때면,

실없이 자신을 웃겨 자신의 젖은 마음을 말려주고 싶습니다.

 

산과 동화되기 위해, 기꺼이 허리를 굽혀 자세를 낮추곤 합니다.

 

(296.6m).

 

(296.6m봉 조망 1).

죽령을 중심으로 도솔봉과 연화봉이 그려내는 V자 하늘금이

하늘벽에 비친 추상적인 그림자처럼 스마트하게 팍팍 각인됩니다.

 

(296.6m봉 조망 2).

연화봉~비로봉~국망봉으로 이어진 소백산 하늘금이 환상적이네요.

이 세상의 예외적인 곳에서 환상이 빚어낸 신기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책으로 이어진 능선마루금은 무엇을 경계짓기 위함일까.

 

보이는 것은 헤쳐나갈 수 없는 빽빽한 가시덤불이요,

들리는 것은 두 귀가 멍할 정도로 시끄러운 멍멍이 소음뿐.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우회로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마근대미).

 

마루금을 읽으면서 정신없이 걸음을 옮겨 놓다보면

피곤은 무뎌지고 그 자리에 무의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오늘 구간은 축사들을 수없이 통과하는 여정이고

그때마다 멍멍이들의 합창이 산자락을 들썩이게 합니다.

 

주인장의 양해 하에 축사를 조용히 통과하려 하는데,

멍멍이들이 주인 말을 듣지 않고 맹렬한 액션을 취하고 있었네요.

 

검은 새들이 소리없이 낙하하는 것 같은 석양 무렵.

빛의 세계는 노을의 정적 속으로 무디게 삼켜지고 있었구요.

 

영동선 철로가 앞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고 있었는데....

선답자들 산행기에는 철로의 철책을 여닫는 곳이 있던데,

철책을 최근에 새로 보수하면서 모두 틀어막은 모양입니다.

 

(영동선 철로 이후의 마루금 개념도).

빨간선은 원마루금, 파란 점선은 실제 진행한 루트.

 

마루금을 눈으로 번연히 쫓다가 아쉬움에 휩싸입니다.

철로 굴다리와 국도의 굴다리를 거듭 통과하는 차선책을 선택합니다.

 

영동선 철로 굴다리를 통과하고.

 

36번 국도 굴다리까지 통과하고 나니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행히도 랜턴을 사용하지 않고 날머리에 도착했네요.

 

하루 동안의 걸음이 서서히, 너무나 인간적으로,

노을빛과 합심하여 감동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산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네요.

일상에 시달려 white out 상태로 무방비로 뒹굴 때,

겨울의 소리는 뺨을 후려치는 듯한 질책이었습니다.

산이 개떡같이 말해도 범산은 찰떡같이 알아 듣지요.

산과 산꾼은 서로의 고통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사랑인, 연인들의 맹목과 같은,

눈곱만큼의 때도 묻지 않은 무구한 산사랑을 그립니다.

멋진 산보다 그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산이 더 좋지요.

산을 바라보며 넋 잃고 멍때리는 시간이 넘 좋습니다.

그 와중에 몸을 얻고 마음을 얻어 영혼도 맑아지겠지요.

 

허접한 산행기를 읽어주신 귀한 당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