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수점 앞에서, 삶의 ‘다시보기’를 갈망했네. ▣
▲합수점(송진나루) 근처의 겨울 풍경.
Ⅰ. ( Prologue )
산은 산꾼들의 행성. 매일 매 순간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희망을 찾는 최전선에 산이 있습니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산이라는 희망봉을.
두 물이 만나 더 큰 물을 만드는 곳이 합수점인데,
창날마을을 화왕지맥 날머리로 치던 때가 있었지요.
라떼, 진부하나 존중해야 할 레퍼토리라 생각합니다.
산사랑, 마루금사랑, 합수점사랑으로 깔맞춤하고,
산행의 블루칩으로 도초산과 송진나루를 찍었네요.
합수점에서 산줄기와 물줄기의 합일을 새겨보렵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2월 4일 (일요일, 입춘).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과 함께.
3. 어디를 : 화왕(계성)지맥 셋째 마디.
(창령고개~성사고개~영아지고개~도초산~남송교~송진쇠나루)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창령고개).
창녕군 장마면 신구리와 유어면 광산리를 잇는 고갯마루.
‘까톡’대는 디지털 감옥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입니다.
마음 속에 크게 춘방(春榜)을 내걸고 싶어집니다. 立春大吉!
▲산으로 들기 위해 몸단장하며 마음을 추스립니다.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대지가 촉촉이 생기를 머금고 있네요.
▲봄기운의 인상적인 무늬가 만져지는 희망의 산자락입니다.
첫걸음부터 낙엽 쌓인 가풀막이 환영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 넘어섰더니
봄을 준비하고 있는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났네요.
발걸음과 땀방울, 그 아날로그 감성이 참 좋습니다.
▲뒤돌아봅니다.
지난 구간의 206.7m봉이 방가방가 미소를 흘리고 있네요.
애써 눌러두었던 지난 시간의 감성이 안개처럼 되살아납니다.
▲(큰갓실산).
장마면, 유어면, 남지읍이 이 산자락을 정점으로 경계를 짓고.
▲감나무 과수원이 자주 눈에 띄는 고장입니다.
▲낙동강이 가까워서인지 안개가 자욱합니다.
이런 맛 때문에, 일상에 있으면서도 산 주변을 서성이는가 봅니다.
▲깔끔한 임도 한 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네요.
▲산들바람이 감도는, 연풍산방 주변입니다.
사람 마음을 살살 꼬드기는 매력이 있는 곳이네요.
▲산에 들어와서 신선한 공기를 맘껏 호흡할 때면,
고마움보단 미안한 마음이 더 크게 올라오곤 합니다.
이 소중한 기회를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누지 못해서.
▲봉우리를 넘고 산길을 이어가며 걸어가는 순간순간은,
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심리적 차원을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무심결에 왼쪽으로 눈길을 주었더니 별천지가 열렸네요.
위치나 모양새로 보아 열왕지맥 옆의 병봉~영취산 라인 같은데.
▲임도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드문 일입니다.
자연을 순기능적으로 다듬어 놓으니 눈이 즐거워집니다.
주변 조건들이 변하면 세상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리는가 봅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있어,
산비탈 오르는 길을 운치있게 다듬어놓았네요.
▲소박하지만 아담한, 수목장 풍경이 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산길을 걷다보면, 알게 모르게
풍경에 새겨진 여럿의 무늬를 읽게 됩니다.
▲꺾인 채 한 세월을 견뎌야 하는 나무의 신세가 아픔입니다.
▲걸어갈 마루금이 왼쪽 방향으로 부드럽게 출렁이네요.
사람 마음을 꼬드기는 아날로그 소리가 산에서 들려옵니다.
▲(가림고개).
남지읍 고곡리와 장마면 대봉리를 이어주는 고개.
▲꿀 바른 목소리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하는 산입니다.
여기는, 우주공간을 건너가는 것처럼 특별한 마루금 길입니다.
▲쓰레기 처리시설을 시계진행방향으로 돌아갑니다.
시공을 초월해, 본능이라는 상수를 장착하고 걸어가는 중.
▲무시무시한 덤불천국, 계절 찬스를 활용해 잘 헤쳐나갑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건 봄이 아니라 겨울 속에 머무를 때지요.
아직은 겨울이지만 파릇파릇한 봄을 생각하면 벌써 생기가 감돕니다.
▲곳곳에 멧선생들 목욕탕시설이 널려 있습니다.
산자락은 산사람들의 마음을 닦는 시설이기도 합니다.
▲(137.6m봉)
▲산행, 최선을 다해 일상을 견딘 사람들이 누리는 선물이지요.
▲(성사고개). 남지읍 성사리와 아지리를 이어주는 고개.
▲삶의 한계상황 인식이 날카롭게 온몸으로 짓쳐들어 옵니다.
악착스레 산을 오르는 것도 그것을 잊기 위함이 아닐까 싶고.
▲산으로 향하는 하루를 선택한 기회비용은 뭘까요.
진정성을 담고 흘러나오는 자연의 표정을 빼닮고 싶습니다.
▲명품 산길에 흠뻑 취해 사로잡힌 채 걸어갑니다.
낮술에 벌개져서 뱉어내는 걸쭉한 촌부의 사투리인 양,
어쩌지 못하고 장사익 님의 찔레꽃이 터져나옵니다.
▲(우실등). 주변의 산세가 소의 형상을 하고 있고,
이 봉은 소의 무릎에 해당하여 牛膝峰이라고 한다네요.
▲산행은 자신을 채찍질하며 자아의 목소리를 듣는 방편입니다.
잘못이 없는데도 영조 앞에 석고대죄해야 했던 사도세자처럼,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산길에 취해 자신을 인고 걸어가노라면,
발자국을 찍을 때마다 에너지가 한 계단씩 상승곡선을 탑니다.
▲지혜는 듣는 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산길을 걸어가면서 산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들으려 귀를 쫑긋거립니다.
▲가파른 구배를 오르는 행위는 정제된 형태의 자기 확인절차입니다.
▲정성을 다 짜내 쌓아올린 돌탑을 대할 때마다,
절망과 슬픔을 밀고 올라오는 먹먹한 감동이 있습니다.
▲(영아지고개 풍경).
우측 낙동강변의 ‘개비리길’이 이곳 명물이라던데....
갈 길 멀다는 핑계거리를 만들어 아쉬움을 달랩니다.
▲임도와 마루금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자연과 인생이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우측으로 뻗은 마분산 자락을 지맥의 끝점으로 치던 때가 있었지요.
마분산 자락의 창날나루를 화왕지맥의 날머리로 설정하여,
낙동강 건너 기강나루(우봉지맥과 화개지맥의 날머리)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았던가 봅니다.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시설이 반가웠네요.
산경원리는 산줄기와 물줄기의 상호관계를 탐색하는 것이므로,
마루금을 걷고 있더라도 늘 주변 물줄기가 주요 관심사가 됩니다.
▲지맥의 옛 날머리였던 창날나루가 보이고,
낙동강 건너 화개지맥의 용화산이 호응하고 있습니다.
▲정답이 제시된 상투적인 산행은 지양합니다.
끊임없이 묻고 답을 내면서 산아일체를 지향합니다.
▲잠시 후 만날 도초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조금씩 쌓여가던 피곤함이 일거에 싹 흩어졌습니다.
▲(안개실고개).
▲나이와 지혜를 비례적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나이 들수록 뼈만 굳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나 마음까지 굳어지는 측면도 있지요.
철따라 싹이 돋는 자연의 부드러움이 무척 부럽습니다.
▲저 뻥 뚫린 공간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도초산 고스락 풍경).
막힘없이 터지는 광활한 조망으로 인해 가슴이 뻥 뚫립니다.
내 걸음이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만큼이나 투박했으면 좋겠네요.
▲(도초산 고스락 조망 1). 우실등 형상이 소의 무릎처럼 보이나요.
▲(도초산 고스락 조망 2). 燈山을 오르면 낮에도 등불이 환할까요.
▲(도초산 고스락 조망 3).
화왕산과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도초산 고스락 조망 4).
열왕(청도)지맥의 우락부락함이 피를 끊게 합니다.
▲(도초산 고스락 조망 5).
낙동강과 계성천의 합수점을 향해 90도 폴더 인사를 보냅니다.
▲(도초산 고스락 조망 6).
작대산 우측 뒤의 천주산은 지금 진달래 멍울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도초산 고스락 조망 7).
낙동강 북쪽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남쪽 산줄기도 새로운 맛입니다.
▲(도초산 고스락 조망 8).
35여km를 달려온 화개지맥이 용화산에서 옹골지게 기운을 모으는 중.
▲(도초산 고스락 조망 9).
낙동강과 남강의 합수점인 기강나루 모습은 나무에 가려 있고.
▲(도초산 고스락 조망 10).
마분산은 지맥의 날머리 지위를 빼앗겨서인지 묵언의 분위기.
▲도초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건너편 방추산 모습.
▲합수점으로 향하는 열정은 내버려둬도 활활 타오를 테지만,
시간을 절약하는 의미에서 고갯마루가 슬쩍 부채질을 해줍니다.
▲밟아온 마루금을 생각하면 뿌듯함이 밀려오고,
밟아갈 마루금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방추산 오르는 길섶을 마삭줄 이파리가 덮고 있네요.
오르고 내림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지만 늘 새로움으로 가슴을 채웁니다.
▲(방추산 고스락 풍경).
몸과 영혼이 함께 올라와서 발자국 흔적만 남겨놓고
영혼은 또 다른 산길을 향해 바람처럼 훌훌 떠나갑니다.
▲바람은 한결 부드러운 공기를 실어 날랐고,
그 바람을 등에 업고 우리는 한결 수월하게 능선을 걸어갔네요.
▲먼저 땅 속에다 집을 마련한 분들의 주거지를 스치면서,
엄습해 오는 바닥 모를 공허를 떨쳐버리려고 속도를 더 내었지요.
▲일반적으로 내부는 작지만 외부는 큰 법이죠.
지금 걷는 외부의 산길은 내 지나간 후에도 다음 발걸음을 기다리겠지요.
▲오늘 산행구간의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며 생각합니다.
세상의 기억에서 자신을 남기기보다는 자신을 없애는 걸 소원한다고.
▲걸어왔던 산길의 시간 밖으로 걸어나와,
이제는 평지와 둑방의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수 있고 마음과 다른 표정을 지을 수도 있지만,
마음과 다른 눈빛을 만들 수는 없는 법. 돌아보는 눈빛에 아쉬움이 어립니다.
▲(합수점까지의 개념도).
지형 변화로 인해 실질적 마루금은 여기서 종 친거나 마찬가지.
대부분 산꾼들은 남지대교까지 걸어가서 지맥을 마무리하지만,
산파고파는 계성천 둑방길을 따라 합수점까지 걸어보려고 합니다.
▲포장도로 위의 마음 속 불만을 잠재우고,
합수점이라는 세 글자만 생각하며 내 안의 프로펠러를 가동합니다.
▲육체의 귀를 잠시 닫고 영혼의 귀를 크게 열어서, 추진력을 충전합니다.
▲미확인 비행물체를 확인하는, 호기심 어린 심정으로 저 둑방을 올라섭니다.
▲아, 계성천이 저런 모습이었구나.
▲이 굵직한 둑방길이 마루금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1%도 안 되는 행운 따윈 단념하고, 널려있는 걷는 행복에 만족하렵니다.
▲계성천 둑방길이 점점 거칠어집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음은, 극복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져서 입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밑을 기어서 통과합니다.
▲도깨비들이 난리부루스를 칩니다.
바늘로 인정사정없이 찌르며 달라붙네요.
▲도깨비바늘의 엄청난 공세는 성격을 시험하듯 계속되었지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네요.
남송교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머리끝까지 치솟은 열기가 수그러들었네요.
▲남송교를 지나고나서 돌아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 없을 때, 유일한 일은 그저 걷는 것이었지요.
▲입춘이지만, 송진나루 풍경은 아직 겨울의 한복판입니다.
▲계성천 하류의 수변지역 풍경이 사람 마음을 녹였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한참을 멍 때렸네요.
▲남송교에서 송진쇠나루공원까지 약900m,
송진쇠나루공원에서 합수점까지도 약900m.
이쯤에서 우측으로 합수점 가는 길이 뚫려야 하는데...
눈 씻고 봐도 길은 보이지 않고 울울창창 잡풀만 무성했네요.
▲자연스러움이 무시되어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었지요.
합수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 충만했던 행복감을 삼켜버렸습니다.
▲지금, 산파고파 산우님들은 합수점 앞의 가상 ‘스웩’에 빠져있습니다.
▲계성천 수면 위에서 합수점의 환영을 떠올립니다.
합수점 가는 길은 길고 험하기만 한 게 아니라 깊고 넓기도 하네요.
어느 곳보다 쭉 뻗은 길이면서 어느 곳보다 꼬불꼬불한 길임을 알겠네요.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1). 공원 안내판.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2).
듣는 이가 있을 리 없지만 목소리를 낮춰 자신에게 말했지요.
그러니까 내 말은, 합수점에 닿지 못한 아쉬움을 여기서 달래보자.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3).
노을 감상의 명당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더니,
정자와 데크시설, 탁자와 의자까지 구색을 제대로 갖추었네요.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4).
통속적인 공식을 따른다면 이런 곳의 그네는,
그 또는 그녀가 하지 않은,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는 장치.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5). 서편 느티나무.
겨울이어서, 허공에 수놓은 가지들의 무늬가 예술작품이 되었습니다.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6).
세월의 흔적이 사람을 숙연하게 만듭니다.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7). 동편 느티나무.
숱한 세월 속에 수많은 추억이 버무려져 지금의 저 모습이 된 것이겠지.
▲(송진쇠나루공원 풍경 8).
어느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는데,
느티나무를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세월이 보입니다.
▲노을이 끝내주는 곳이라는데, 노을 대신 합수점을 바라봅니다.
정녕 화왕(계성)지맥 합수점은 마루금의 갈라파고스로 남을 것인가.
속사정은 게으름이었지만 속마음은 합수점을 향한 아쉬움 한가득입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2월은 추위의 절정이 아니라 봄기운의 시작이지요.
오늘은 입춘, 얼었던 얼음이 방울방울 녹아내렸네요.
물 떨어지는 음이 봄을 노크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찬바람과는 다른 차원의 따뜻함이 대지로 쏟아졌고
그속을 선언문 읽듯이 또박또박 끊으며 걸었습니다.
그 순간은 사라져도 움직임의 잔상은 남는 법이지요.
삶은 다시보기가 불가한, ‘지금,여기’의 일회성 연극.
자연 속에서 놀다보면 금새 흘러가는 한바탕 꿈이죠.
산을 마중물 삼아 ‘현재, 길’을 진심을 다해 걸었네요.
산행기를 읽어주신 귀한 당신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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