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시작하면서
계룡산에는 알토란으로 치는 테마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천단, 숫용추․암용추, 정감록, 천진보탑, 오송대(오성대)...
그 각각의 속내용에 대해서 앞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을 터인데,
오늘은 그중에 오송대(오성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 보고자 합니다.
(※ 이길구님, 추만호님, 약수님, 바우님 글을 참고했음)
Ⅱ. 五松臺의 현대적 의미
오송대는 계룡산의 맑은 氣와 血이 모이는 곳으로,
예로부터 계룡산의 단전에 해당한다고들 회자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시인 묵객들이 모여들고, 도인들 수행처가 되었으며,
무속신앙의 본거지가 되었던,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오송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옛 선인들의 청명한 정신세계를 섬섬히 흠흠해보고
일상에 지친 산벗님들의 기력을 충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Ⅲ. 오성대인가? 오송대인가?
(1)오성대(五聖臺, 悟性臺)일까요?
①鰲城府院君 이항복의 수도처였다는 ‘카더라’설이 난무하지만,
이 분과 계룡산과의 접점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잘 잡히지 않습니다.
②오성대 관련, 얼핏 떠오르는 산과 인물은 운장산과 송익필이지요.
계룡산과 직접적․간접적으로 연이 닿은 선인들 중,
이른바 鷄龍九仙 (龜峰송익필, 栗谷이이, 牛溪성혼, 南冥조식,
土亭이지함, 孤靑서기, 重峰조헌, 霽峰고경명, 騎虛堂영규)이 있는데,
산꾼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는, 그 좌장격 인물이 바로 송익필이지요.
하지만 송익필과 관련한 오성대 명칭은 운장산의 그것임이 분명합니다.
(2)오송대(五松臺)일까요?
①계룡산 대상 옛 기행문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 五松臺입니다.
....가휴 조익(1602)의 澤畔錄<登五松臺>. 오재정(1693)의 <遊鷄龍山錄>.
송담 송남수(1686년)의 <松潭集>. 송상기(1700년)의 <遊鷄龍山記>.
강재항(1810~)의 立齋遺稿<鷄龍山記>. 李命求(1884년)의 <五松臺>.
②여러 문헌들을 종합하여 고찰해 볼 때,
오송대는 조선시대에 계룡산을 오르는 필수코스 중 한 곳이었고,
거기서 술 한잔, 시 한수 정도는 읊어야 ‘계룡산 올랐다’ 자랑할 수 있었겠죠.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五松臺라는 지명이 정확한 명칭이라 생각됩니다.
Ⅳ. 오송대 위치 콕 집어 찾아보기
(1)정감록 사건(정씨 신도안 도읍설, 정감록 불태우고 입산금지)으로 인해,
오송대는 사람들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오송대 계곡’만 지명으로 남게 되었죠.
(2)계룡산 기행문이 실린 옛 문헌들을 종합해 볼 때,
옛날, 동학사에서 갑사(신원사)로 넘어가는 보편적 산행 루트가 그려집니다.
동학사→歸命菴(심우정사)→高寂臺→五松臺→雪峰(삼불봉)→갑사(신원사).
(3)옛 문헌에 등장하는 오송대 기록을 추적해 보면,
그 위치에 대한 공통분모를 추출해 볼 수 있습니다.
①설봉(삼불봉) 동쪽. ②높은 지대.
③빼어난 조망. ④암자 터. ⑤소나무 다섯 그루.
(4)삼불봉 아래에 남아있는 여러 암자터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설봉 동쪽이고, 암자 터이니, 근처에 물이 있어야 할 테고,
다섯 그루 소나무와 암자가 있던 곳이니 석축이나 臺의 흔적도 있을 테고,
시 한수 읊을 마음이 구름처럼 일어날 정도로 운치 만렙인 곳이겠지요.
Ⅴ. 대략적인 도상 위치
Ⅵ. 맺음말
오송대는 산꾼들 사이에선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조만간 오송대 계곡과 삼불봉 일대를 샅샅이 훑으면서,
그 수수께끼의 한 갈피를 풀어내 시원하게 펼쳐볼 계획입니다.
발바닥에 불이 나게 파헤칠 테니,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허접한 글을 읽어주신 귀한 당신, 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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