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금 산행/가섭지맥

가섭지맥 1구간 (사정고개~분기봉~숯고개~선지봉~봉학산~가섭산)

범산1 2024. 8. 6. 23:02

산은 늘 거기 있을 테니까, 느긋하게 걸어보자.

 

▲봉학산에서 바라본 가섭산 모습.

 

Ⅰ. ( Prologue )

 

산경표가 산줄기들의 과학적인 족보이다 보니

대간⇒정맥⇒지맥 순으로 가지를 뻗는 게 순리.

그러나 급이 같은 동항렬의 산줄기들 간에는

각자의 입맛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도 있겠지요.

 

대간의 속리산에서 가지를 친 한남금북정맥.

거기서 한강 수계를 향해 가지 몇이 뻗어가지요.

그중 부용산, 가섭산, 오갑산이 이름을 꿰찬,

한 뭉텅이의 산줄기들이 가슴을 치며 다가왔네요.

 

인생이 마음 먹은 대로만 흐르면 무슨 재미?

마루금산행도 순서대로만 흐르면 무슨 재미?

범산의 자유의지는 오늘 가섭지맥을 픽했지요.

산들이 상호 공명하면서 산향을 내뿜었습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8월 4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과 함께.

 

3. 어디를 : 사정고개~분기봉~숯고개~선지봉~봉학산~가섭산~가섭사.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가섭지맥 들머리로 대부분 음성궁도장(가섭정)을 택하지만,

산파고파는 부용지맥 마루금 상의 사정고개를 선택했습니다.

 

▲한 무리의 동물이 되어 동물이동통로 위를 지나갑니다.

 

▲출발부터 심상치 않은 한여름 날씨였네요.

시작도 안 했는데, 땀이 촉촉이 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덤불군락이 기를 질리게 하였지요.

그래도 그 미세한 틈새로 산사랑의 카드를 꽂아넣고 출발합니다.

 

▲흑염소 목장 울타리를 따라 한걸음씩 고도를 높여 갔네요.

바람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한증막은 저리 가라 였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낮기온이 엄청 뜨거울 텐데.

그저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뜨거운 산사랑을 믿을 수밖에.

 

▲땀 한 바가지 헌납한 후에야 가섭지맥에 닿았습니다.

숨을 돌리면서 막걸리 한 잔으로 출발을 자축했습니다.

 

▲사람은 밥과 술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지요.

자유의지로 몸을 부릴 경우 그 힘은 무한대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헛돌이 주의지점).

숯고개를 향해 내려서는 산길이 조금 거칠고 난해합니다.

 

▲완전한 복종은 완벽한 저항의 한 방법일 수도 있지요.

까칠한 마루금에 완전히 복종하니 휘파람이 절로 새어나옵니다.

 

▲풍경을 자꾸 신비감에다 묶어두려고 하는 듯,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뿌연함이 산을 가두고 있습니다.

 

▲우측에 있는 전원주택은 峰住寺라는 절이었네요.

 

▲왼쪽의 과수원에 마루금을 풀어놓고, 우리는 마을길로 진행합니다.

 

▲炭峴亭이라는 팔각정으로 기어들었습니다.

불볕더위와 타협을 하며, 막걸리 타임으로 에너지를 보충하였지요.

 

▲거리명주소 명칭도 현재 상황과 보조를 맞추는 듯,

용광로? 뜨거운 느낌이 확 몰려와 더 더워지는 느낌이었네요.

 

▲숯고개 마루금을 향해 따끈한 포장도로를 걸어갑니다.

(좌)봉주사 - (우)쿠팡 물류센터. 묘한 대조를 연출하는 풍경이네요.

 

▲숯과 관련이 많은 고장인가 봅니다. 숯고개, 炭峴, 炭峴亭...

 

▲숯불의 뜨거운 사슬에서 우리를 풀어 준 건,

‘마루금’이라는 표현 속에 흐르고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마루금 여행은 늘 나에게 아름다운 것을 연상시킵니다.

차분하게 산길을 걷다보면, 고산자의 편지를 받는 기분이 됩니다.

 

▲산길은, 특히 마루금은,

현실에서의 인간적인 아픔을 녹여내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지나온 흔적이 혈관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길도 없는 산자락을 오를 때는 소인국에서의 악몽 같지만,

결국은 소인국을 다녀온 걸리버처럼 행복해지는 마법에 걸립니다.

 

▲결국 길도 없는 산자락은,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치장하는 사적인 신화에 지나지 않지요.

 

▲산줄기는 바다의 파도와 같은 山波(산물결)입니다.

파도에 흔들리면서 또 하나의 바다를 향해 닻을 올리는 것이죠.

 

▲땀방울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우리를 위하여,

산자락은 곳곳에 시원한 풍경을 마련해놓고 등을 토닥거립니다.

 

▲기온이 너무 오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땀을 너무 쏟으면 몸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저 쉬엄쉬엄 오르며 산사랑으로 달랠 수밖에.

각론에 무지하니까 총론으로 무찔러 나갈 수밖에.

 

▲더워 미치겠네. 아이 씨, 이러다가 일 나는 거 아냐?

山사투리가 아닌 세속의 언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능선에 늘려있는 잘 자란 건강한 소나무들이,

더위에 맞서고 있는 우리에게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선지봉 고스락 풍경 1). 仙枝峰.

신선仙자가 들어간 지명은 일단 기분이 좋아집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살을 붙인다면,

마눌 이름에 仙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ㅋㅋ.

 

▲(선지봉 고스락 풍경 2).

선지봉은 두호2봉이라고도 칭하는가 봅니다.

산림욕장에서 올라오는 중간의 덕우봉이 두호1봉이고.

 

▲선지봉에서 한숨 돌리고 내려서다가,

나무창틀을 통해 가섭산을 바라보았습니다.

 

더워서 정신 없을 땐 딴생각 말고 산만 바라봅니다.

 

▲멋진 소나무 곁을 지나가는 이 순간, 산은 곧 우주입니다.

 

▲벌목현장과 봉학산과 가섭산이 눈 앞에 진열되어 있네요.

불볕더위에 저항하려는 노력, 그게 산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원추리꽃은 저렇게 웃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어찌 견디지 못할까.

 

▲(봉학산 오름길 조망 1).

지나온 선지봉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있구요.

 

▲(봉학산 오름길 조망 2).

수레의산 지나면 부용지맥과 오갑지맥이 딴 살림을 차릴 테고.

 

▲(봉학산 오름길 조망 3).

수레의산~매방채산의 부용지맥과 겹쳐 보이는,

승대산~국망산~보련산 산너울이 사람 혼을 쏙 빼놓네요.

 

▲숨이 턱턱 막힐 듯 더워 마음가짐을 달리해 보았습니다.

 

산이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산을 위해 있는 거라고...

그랬더니, 산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기적이 일어났네요.

 

▲능선 곳곳에 나이테가 묵직한 소나무들이 즐비합니다.

 

비록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전쟁터 같은 산길이지만,

건강한 송림이 전해주는 세월의 메시지에 기분이 업되었답니다.

 

▲(봉학산 고스락 풍경 1). 선답한 분들 산행기를 보니까,

몇 걸음만 더하면 봉학산 표지석이 있는데, 종종 놓치더군요.

 

▲(봉학산 고스락 풍경 2). 인터넷의 통역에 의하면,

오늘 음성지방 낮기온이 37도를 훌쩍 넘어섰다고 합니다.

 

▲(봉학산 고스락 풍경 3).

소문에 의하면, 봉학골 삼림욕장이 평판이 좋습니다.

주차시설도 꽤 넉넉하고 또 주차비도 무료라고 하고...

 

▲(봉학산 고스락 풍경 4).

비록 조망도 열리지 않고 바람 한 점 없었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새가 울어 더운 가슴을 쳤고,

해서, 그 소리와 소리 사이에 느낌표 하나를 찍었다네요.

 

▲봉학산에서 가섭산 쪽으로 100여m 내려섰더니,

가섭산을 바라볼 수 있는 멋진 조망바위가 있었네요.

 

▲가섭산 앞에서 가섭산에 빠져있는,

산벗님의 뒷모습이 산처럼 크게 보입니다.

 

▲산은 등을 대고 비벼 보고픈, 어머니 같은 곳입니다.

 

▲봉학산에서 가섭산을 연결하는 등로는,

지도를 보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지루하고 길었네요.

 

▲(봉학골 산림욕장 갈림길).

잠깐 열린 틈새로 들어온 햇빛을 어두운 방이 가두지 못하듯이,

잠깐 봉학골로 통하는 길을 지나치니 금새 봉학골 관심은 잊혀졌네요.

 

▲산꾼들 어깨 위로 땡볕은 공평하게 부서지고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챙겨 갔지요.

 

▲한증막을 걷다보니 시간 개념이 느려짐을 느낍니다.

 

시간이 초 단위로 흐르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겠지만,

초 단위로 의식되는 시간은 무섭도록 더디 흐름도 느끼게 됩니다.

 

▲가섭산 고스락이 가까워지면서,

산길 상태는 점점 힘들어지는 상태로 변했습니다.

 

▲(가섭산 고스락 개념도).

가섭산 고스락은 전체적으로 쌍봉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가칭, 북봉(KBS중계소)과 남봉(MBC중계소)으로 구분해 봅니다.

 

▲(북봉 고스락 풍경 1).

산은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절친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바람 한 점 없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 절친을 마중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상태입니다.

 

▲(북봉 고스락 풍경 2).

한자로는 迦葉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가섭' 또는 '가엽'으로도 읽힐 수 있지요.

 

▲(북봉 고스락 풍경 3). 설이 있습니다.

충주 지방에서는 '가엽산'으로 불러야 한다고 하고,

음성 지방에서는 '가섭산'이 맞다고, 서로 우긴다는.

 

▲(북봉 고스락 풍경 4). 가섭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죠.

혹자는 음성8경의 하나로 迦葉暮鐘(가섭산 저녁 종소리)을 꼽는다지요.

 

▲(북봉 고스락 조망).

멀리서 국망산~보련산 하늘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방송국 중계소 울타리를 따라서

북봉에서 남봉으로 이동 중에 만난 풍경입니다.

 

▲(남봉 고스락 풍경 1).

방송국 중계소 안내판에는 ‘가엽산’으로 새겨져 있군요.

 

▲(남봉 고스락 풍경 2).

내실보다는 체면이 더 성장해버린 세태를 살고 있지만,

내실을 기하기 위해 삐질삐질 땀을 쏟으며 계단을 오릅니다.

 

▲(남봉 고스락 풍경 3).

여기 오르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동도 하지 않는 바람을 원망하기 전에,

쉼터를 마련해놓은 누군가의 정성에 감동 받았네요.

 

▲(남봉 고스락 풍경 4).

수풀이 우거진 한여름인지라, 고스락 풍경이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남봉 고스락 풍경 5).

봉수대가 있던 곳에 방송국 중계소가 들어선 걸 보니,

옛사람이나 현대인이나 생각의 맥락은 비슷했나 봅니다.

 

▲(남봉 고스락 조망 1).

시계가 짧네요. 주덕읍 저 뒤에 천등산이 우뚝할 텐데.

 

▲(남봉 고스락 조망 2).

방향으로 가늠할 때, 빨간 원 쯤에 월악산이 솟아 있을 텐데.

 

▲이런 날씨에 계속 산행하다간 일 나겠다 싶었지요.

 

산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음에 한 번 더 오면 되지 뭐, 서로 마음을 맞췄답니다.

 

▲(가섭사 풍경 1). 가섭산에서의 멈춤,

그것은 신의 한 수였음을 뒤늦게 깨달았지요.

 

▲(가섭사 풍경 2). 가섭사의 저녁 종소리가 끝내준다고 하더니,

과연 가섭산의 진정한 보물은 가섭사가 틀고 앉아있는 자리였네요.

 

▲(가섭사 풍경 3).

가섭정에 앉아 시공과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게 짖궂게 굴던 무더위도 싹 달아날 것 같습니다.

 

▲(가섭사 조망 1).

설우산 왼쪽 멀리, 속리산이 숨어 있을 텐데.

 

▲(가섭사 조망 2). 여기서 큰산(보덕산)을 조우할 줄은 미처 몰랐네요.

 

▲(가섭사 조망 3). 조망에 홀딱 빠져서 가섭사를 잠시 잊어버렸네요.

 

▲(가섭사 조망 4).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니,

눈도 맑아지고, 가슴도 시원해지고고, 더위도 사라지고...

 

▲(가섭사 조망 5).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가 역 주위를 서성거리듯이,

가섭사 절마당에 서서 부용산 주변을 서성거립니다.

 

▲(가섭사 조망 6).

우리는 지맥 종주를 위해 산행하는 것이 아니고,

행복해지는 방편으로 지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입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산이 좋지만, 그것만 사랑하기엔 세상은 넓고

명산이 좋지만 ‘산경’ 숲의 나무에 불과하지요.

산사랑의 맘을 이성의 얼음장 위에 올려놓고,

해바라기하면서 뽀송뽀송 말릴 필요가 있지요.

산이 선사하는 희망을 다 따 담을 순 없을까요.

 

솔은 상처에서 송진을 흘려 자신을 치유하고,

산꾼은 산길에서 땀을 흘려 마음을 치유합니다.

능선에 서면 가슴이 펑 뚫리며 신바람이 일고,

지난 길의 감동을 곱씹고 가쁜 숨을 가다듬지요.

산이라는 원의 引力圈 안에 점점 함몰돼 갑니다.

 

산을 오르는 즐거움 가운데 살다 죽고 싶습니다.

 

---읽어주신 귀한 당신, 더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