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오보는 산꾼의 행복이었네. ▣
▲이례재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의봉산 풍경.
Ⅰ. ( Prologue )
산행은 산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이지만
궁극으론 자신의 민낯을 만나는 과정이지요.
산행은 건강과 추억을 쌓는 여정이지만
결국은 몸과 마음의 근육을 챙기게 되지요.
마른 옷을 입고 있으면 비가 두려운 법,
이놈의 장마비에 옷을 흠뻑 적셔 보렵니다.
아예, 칠봉산 진흙탕에 진탕 뒹굴면서
마음그릇에 산내음을 그득 담아오렵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7월 7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가나다순).
〔무명산님, 범산, 어처구니님, 주산자님, 진달래님〕
3. 어디를 : 칠봉(백천)지맥 2구간
〔호령고개~칠봉산~거산~추산~배티재~이례재〕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기상청에선 장마가 시작됐다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변함없이 산으로 향했습니다.
▲대전을 출발할 때는 장대비가 무섭게 휘몰아치더니,
금오산 곁을 스치면서부터 고속도로 노면은 뽀송뽀송.
칠봉산 입구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었답니다.
▲기상청이 괜히 구라청이 된 게 아닌가 봅니다.
구라청의 명성은 오늘 산꾼의 행복으로 귀결되었답니다.
칠봉산은 기상청으로 인해 헝클어졌던 마음을 토닥거려 주었지요.
▲우리는 장마철 날씨의 반전매력에 푹 빠져서 칠봉산을 탐했답니다.
▲개망초꽃이 널브러진 산길은 흰 눈가루를 뿌린 듯 그윽함이 넘쳤고.
▲등골나물도 합세하여 오름길을 퍼포먼스 경연장으로 만들어주었네요.
▲건강한 소나무 숲길은 칠봉산 산행의 쫀득한 육질에 해당합니다.
▲칠봉산은 목숨 걸고 바득바득 올라야 할 히말라야가 아니라,
등을 대고 한번쯤 어리광을 부려 보아도 좋을 정겨운 언덕입니다.
▲(칠봉산 고스락 풍경 1).
기상청의 오보를 제압하고, 웃음꽃을 피우며 올라온 칠봉산입니다.
▲(칠봉산 고스락 풍경 2). 범산은 속으로 승인했습니다.
칠봉산은 내 마음의 고향이라 말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칠봉산 고스락 풍경 3). 삶의 즐거운 한 때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희미한 視界가 조망 판세를 헝클어 놓았습니다.
염속봉산에서부터 흘러온 마루금이 미로를 헤매고 있네요.
▲갈림길이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행간이 버스락거리면서 마루금 방향을 알려주었지요.
▲하미기재로 내려서는 길목. 조망의 미덕이 빛을 발합니다.
좌측으로는 거산이, 우측으로는 까치산이 미끈한 얼굴을 들이댑니다.
▲(하미기재 풍경 1). 현재 하미기재는 목재 집하장입니다.
▲(하미기재 풍경 2). 덤프트럭이 힘자랑을 한껏 하고 있네요.
▲(하미기재 풍경 3).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지요.
어서 오십시오. 깎듯한 수륜면의 환영 멘트가 기분을 업시켜 줍니다.
▲포장길을 걸으면서 산줄기 산행의 몸풀기를 시도합니다.
▲빠르고 쉬운 길을 원하는 분들은 왼쪽 도로를 이용하겠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바르고 거친 길을 원하는, 마루금 사람들입니다.
▲거친 산자락에다 두 발로 음각하듯이,
애정을 담아 꾹꾹 찍어 누르면서 걸어갑니다.
▲거친 산길일수록 행간에서 산사랑의 파편들이 튀어나옵니다.
매끄러운 산길보다는 야생의 터프함이 산을 더 어루만지게 합니다.
▲(506.6m봉)
▲어쩔 수 없이 농장 안으로 내려서는데....
멍멍이들 밥값하는 소리가 온 산천을 찢어놓았고,
땅주인이라는 분의 불평과 거드름이 귀청을 찢어놓았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 앞의 성암산 자락은 웃고 있습니다.
▲아, 멋진 그림이네요.
사람과 짐승의 소음 공해만 아니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후.
▲마루금이라는 아름다운 과녁을 정조준하며 주변을 둘러봅니다.
▲얼핏 보기에,
눈 앞의 거산으로 향하는 마루금이 우측능선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루금은 좌측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내려서면서 이어집니다.
▲(현재위치).
▲마루금과 지도를 읽으면서 걸어가다 보니,
시간과 공간의 의미 무게가 저울에 올려진 느낌입니다.
▲조금 까칠해진 산길을 고물고물 잰걸음으로 오릅니다.
▲이 풍경도 생태계의 선순환일까요?
멧돼지들의 하릴없는 체력단련 제물로 변한 소나무의 운명!
▲솔향 가득한 산길을 땀방울과 동맹을 맺고 오르니,
들떴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평온함이 찾아옵니다.
▲사람은 한계치의 운명들입니다.
하루거리 산행으로 삭여낼 수 있는 서글픔이 아니죠.
그래도 땀을 쏟아내면서 잠시 잊으려고 발버둥칩니다.
▲우리는 지금 생의 어느 어름에 와 있을까요.
주산자 님이 열심히 현재 위치를 가늠하고 계십니다.
▲거산 직전, 눈을 열어주는 멋진 조망터가 나타났습니다.
▲조망 삼매경에 푹 빠져있는 산벗님은 산 자체입니다.
▲V자를 그리며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거산 고스락 풍경 1). 거산은 이 산줄기의 최고봉으로,
줄 잘못 선 죄로 마루금 이름을 꿰차지 못한 비운의 산입니다.
▲(거산 고스락 풍경 2).
산사람은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법입니다.
▲(거산 조망 1). 왼쪽 높은 봉우리는 까치산 자락.
▲(거산 조망 2).
칠봉산이 우리 심장을 향해 사랑의 화살을 당기고 있네요.
▲(거산 조망 3).
성스러운 바위가 있어서 聖巖山이라는데,
그걸 바라보는 우리 망막 속으로 성스러운 기운이 들어오는 듯.
▲(거산 조망 4).
산줄기 위로 세월도 지나가고 바람도 지나갑니다.
▲(거산 조망 5).
의봉산이 뿌연함을 뚫고 의연히 솟았네요.
산줄기가 산이라는 섬을 띄운 강줄기라면,
산꾼은 강물 위를 달리는 작은 조각배겠지요.
▲우리들은 자연에게 큰 빚을 진 존재들입니다.
산줄기라는 강 위를 지나는 아름다운 배이고 싶습니다.
▲작은 산 하나, 작은 산줄기 하나에도
이정표와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성주군이네요.
그 따뜻한 정성과 관심에 엄지척을 세워봅니다.
▲쓰러진 나무 입장에서야 생이 무너지는 일이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사람 억장도 무너집니다. 허무함이 몰려와서...
▲아름다운 청산이 때로는 무정하게 보이기도 하지요.
▲(모방골 갈림지점).
땀을 흘리며 오르다 보면 절로 깨닫게 됩니다.
만사에 저항의 상대는 자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 마음이 변하면 산을 보는 사람의 눈도 변하게 되지요.
변하지 않는 산처럼 한결 같은 사람이고 싶은 게 욕심일까요.
▲(추산 고스락 풍경).
추산 고스락, 조망은 꽝이고 말뚝형 삼각점이 박혀있습니다.
▲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산미인 헌터들이지요.
▲산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산행이 힘든 줄 모르게 되죠.
산아일체를 꿈꾸며 한 걸음씩 자신감을 마시면서 오릅니다.
▲(455.1m봉),
이름 없는 산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배티재 풍경 1).
배티재는 오늘 산행구간의 절반의 거리쯤 되겠네요.
▲(배티재 풍경 2).
두 개 불길이 만나면, 본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타오르지요.
이쪽 산자락과 저쪽 산자락이 만나는 생태통로가 그렇고,
산과 산꾼이 만나 산아일체를 꿈꾸는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배티재 풍경 3).
생태통로 위, 지천으로 널려있는 야관문 군락이 이색적이었네요.
▲동물이동통로는 결국 생태계의 혈을 뚫어주는 길입니다.
▲소나무 재선충 훈제작업을 한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인간은 코로나에 시달렸고 소나무는 재선충에 시달렸던 것.
▲용케도 살아남은 저 소나무는 허공을 기운차게 채우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 한 덩어리인 이 세상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우리는 조망선물을 즐기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347.3m봉)
▲비를 머금은 바람은 적당하게 시원했고,
칠월의 기온은 적당하게 나른함을 동반했습니다.
▲교미 중인 포유동물의 표정만큼 평화스러운 건 없다고들 하지요.
범산은 말합니다. 산을 즐기는 사람의 표정만큼 평화스러운 건 없다고.
▲사람이나 산이나, 현재는 과거의 퇴적이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사랑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까지도 사랑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산을 사랑하는 건 산에 배어있는 역사까지 사랑하는 것이고.
▲긴긴 세월을 쌓아온 나무의 직립 앞에 서니, 숙연해집니다.
▲刻舟求劍이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강물에 칼을 빠뜨렸고, 후에 칼을 찾기 위해 뱃전에다 표를 했다지요.
그 순간에도 배는 달리고 강물은 흐른다는 걸 몰랐다고 책해야 할까요.
저 나무는 한 곳에 뿌리박고 있고,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무사는 뱃전에다 표를 했지만, 아, 흐르는 강물에다 표를 했던 건 아닐까.
▲햇빛이 잘 닿지 않아 사각지대였던 마루금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액정 화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신호음이 울리는 것처럼.
▲오늘 구간은 업다운의 웨이브가 엄청 심하게 출렁댑니다.
막판에 연속해서 기를 죽이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등장하네요.
▲112번 송전탑 부근.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네요.
▲멧돼지 천연목욕탕은 오랜 뒤 회상 속에서,
다시 떠오르기 위해 보름달 모양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저 소나무가 말하는 듯합니다.
험한 세월을 속수무책으로 살았다고, 더는 묻지 말라고.
잠시 손을 얹고서, 용기를 내어보자고 범산 마음을 전했지요.
▲아직 갈 길은 멀고, 체력은 바닥을 보이고...
‘고난 없는 영광 없다’는 말이 실질적인 위로가 되지는 못했네요.
▲대책 없을 때는 그저 하늘을 올려다 보지요.
그게 마음을 진정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희한하게도, 옹종한 영지버섯이 큰 힘이 되었답니다.
▲(296.4m봉)
▲의봉산의 멋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의봉산이 다음 구간의 산이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날머리 직전, 잘 관리된 무덤군이 여유를 되찾게 해주었고,
이례재를 넘나드는 차량소리가 든든한 응원가로 들렸답니다.
▲어머니가 소년을 남자로 만드는데 20년 필요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바보 만드는 데는 20분이면 충분하다고.
’The Road not Taken’의 Robert Frost가 한 얘기랍니다.
오늘, 칠봉지맥이 비슷한 지혜를 가르쳐 주었네요.
20km를 걷는 데는 장장 9시간이 필요했지만,
기운을 회복하는 데는 단 9초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허느적거리던 체력이 날머리에 닿자마자 바로 회복되었지요.
▲기상청을 배신한 날씨였네요.
장마철 날씨가 소매를 걷어붙이고서,
산파고파를 적극 도와주었던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산자락에 붙을 땐 두억시니처럼 악착같이,
산에 흠뻑 취해 떠날 땐 바람같이 허허롭게.
걸판지게 차려진 마루금 마당을 걸으면서,
걸음걸음 행간에다 삶의 참의미를 쟁였네요.
짝사랑의 보물찾기 하는 게 산행이라지만,
목마른 산꾼에게 산길은 에덴의 동산이지요.
일상의 진저리를 온전히 감당하게 해주고,
반듯이, 걸어가게 해 준 건 늘 산이었습니다.
허접한 글을 읽어주신 귀한 당신,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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