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수점에서, 산은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네. ▣
▲낙동강과 회천의 합수점에서 바라봅니다. 강 건너 수도지맥 다남산 쪽을.
Ⅰ. ( Prologue )
우리네 삶이 뿌리뽑힌 듯한 느낌을 줄 때,
옹졸차게 뿌리가 박힌, 산자락을 찾아갑니다.
산이 아름다운 건, 사다리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보다 나은 단계로 이끄는 사다리 말이죠.
산행은 빈 들에서 삶의 오아시스를 찾는 과정.
산은 짖궂은 얼굴로 우리 표정을 읽고 싶어하죠.
오늘, 낙동강과 회천의 합수점을 만나러 갑니다.
합수점이 던져주는 상징으로 웃음꽃을 피워야겠죠.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9월 15일 (일요일).
2. 누구랑 : 산파고파 산행클럽 여러분과 함께.
3. 어디를 : 열미재~부례고개~청룡산~용머리산~연동고개~합수점.
Ⅲ. 산행 지도
▲(대동여지도). 대가천(회천)은 합수점까지 이어지는데,
대가천 동쪽 산줄기는 열미재 근처에서 그만 사라지고 없네요.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열미재).
열뫼재에서 칠봉지맥 마지막 걸음을 신고합니다.
산이라는 연인 앞에 서니 가슴엔 벌써 모닥불이 피어오릅니다.
▲2주 전만 하더라도 들머리가 완전 잡풀투성이였는데.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 깔끔하게 벌초가 되어있네요.
▲깔끔해진 들머리를 딛고 가뿐하게 출발합니다.
명절 덕분에 소소한 일상의 안팎이 행복으로 가득 차오릅니다.
▲벌초의 깔끔함은 금새 야생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네요.
늦여름 늦더위가 이른 아침부터 야생의 덤불을 올라타고 있구요.
▲산길 상태의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금새 험악해졌다가 금새 말끔히 좋아졌다가...
그저 웃지요. 낯익은 것 같기도 하고, 낯 선 것 같기도 하고.
▲(우곡배수지).
합수점에 도달하는 뿌듯한 느낌을 마음에다 넣고,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면서 베수지 옆길을 스쳐갑니다.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좌틀로 방향을 틉니다.
▲이름도 그렇지만 모양새도 그렇네요.
옥천 청산면의 독산(상춘정)을 많이 닮았습니다.
저 독산 너머로는 미숭산, 가야산이 진을 치고 있을 텐데....
▲산속은 바람 한 점 없이 물속 같은 고요를 유지하고 있네요.
그저 운치있는 산길이 후덥지근한 늦더위를 달래주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송전탑이 눈치없이 릴레이를 펼치고 있고.
▲아, 산신령 님이 멧돼지들에게 노천탕을 제공해 주었네요.
저들끼리 치고받으며 즐기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불쌍한 건, 등을 내주는 뿌리박힌 소나무들뿐이라니까요.
▲9월 중순까지도 기승을 부리는 폭염을 견디면서,
대자연의 큰 가르침이라도 받은 양 얌전히 침묵을 쓸어 담습니다.
▲(헬기장). 한 템포 쉬어가면서,
가을의 전령사일지도 모를 낌새를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립니다.
▲마루금의 올려치는 본새가 영락없이 가풀막을 닮았습니다.
▲(287m봉).
▲마루금 능선을 평지를 걷듯이 차분하게 걸어갑니다.
▲녹색이 만연한 계절이라 산불초소는 휴업중이네요.
산불을 감시하는 자리에 올라 휘감아도는 낙동강을 굽어봅니다.
▲바라보는 포인트가 강물뿐이겠습니까?
세상의 이 이치 저 도리를 두루 잡도리하다 보면,
산세상이 사람세상과 한통속임을 조금씩 알아채게 됩니다.
▲(산불초소 조망 1).
돌아보는 눈길에서 아쉬움이 잔뜩 배어납니다.
청명하지 못한 날씨의 뿌연함이 체념의 미덕을 가르칩니다.
▲(산불초소 조망 2).
개포나루를 휘돌아나오는 낙동강물에 평온함이 서려 있네요.
▲주먹처럼 튀어나오는 의외의 느낌이 있었네요.
아, 눈앞의 산자락 자체가 내 몸인 양 일체감이 들었네요.
▲온몸의 피가 발바닥으로 몰리는 것 같은,
기이하면서도 뿌듯한 행복이 물밀듯 밀려옵니다.
▲(302.3m봉),
이름 없이도 이 세상을 의미있게 하는 존재들이 많지요.
무명봉을 오르내릴 때마다 그 이치를 늘 간직하려 애씁니다.
▲(302.3m봉 조망1).
청룡산의 표정이 마중나온 듯하여 반갑고.
▲(302.3m봉 조망2).
회천 건너 소학산은 칠봉지맥을 엄호하고 있습니다.
▲하루 동안 마루금에 묻히다 보면,
산길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험한 산길이라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지요.
▲올무에 걸려든 기분이 들 만큼 옴짝달싹 못하는 산길에서도
헤쳐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 들게 됨은 산꾼의 운명이라고 할까요.
▲(220.5m봉), 절친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답니다.
너무 울창해 빠져나가기가 힘들 때 나타나준 고마운 산불초소.
▲(부례고개 풍경 1).
합수점이라는 동심원의 가장자리를 배회하는 맥꾼들에게는,
마디마디 끊어주는 고갯마루가 고마운 쉼터 역할을 합니다.
▲(부례고개 풍경 2).
사투리를 쓰고 싶어하는 정서가 고갯마루에서 감지됩니다.
서로 산으로 통하는 산과 산꾼 사이의 친밀한 한통속 정서....
▲마루금을 따라 송전탑 행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흔히들 상처 없는 영혼은 없다고 하더니....
산의 영혼(THE SPIRITS OF THE HILLS)을 지은
FRANKS S. SMYTHE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례고개 조망).
낙동강 건너 대니산과 비슬산이 산행의 맛을 진하게 해줍니다.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산은 국면 전환의 포인트 노릇을 하지요.
특히 산줄기와 물줄기의 흐름을 쫓는 맥산행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어떤 산, 어떤 산줄기를 올라도 질리는 법이 없습니다.
산행의 참맛을 발견하는데 고스란히 40여 년을 쓴 셈입니다.
▲오르면서 땀을 흘릴 수 있는 자체만으로 그저 뿌듯합니다.
모양 나게 멋진 모습이 아니어도 산 그 자체로 구미가 당깁니다.
▲(296.4m봉).
사람에 따라서, 지도에 따라서,
이 봉을 청룡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네요.
고스락, 정점 하나만이 산을 대표할 순 없지요.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세월만큼 삶의 흔적이 잘 새겨지는 건 없겠지요.
그 시간이라는 세월에 대해 눈을 열어 준 게 산입니다.
▲오르고 내리는 모든 산이 큰 학교입니다.
숨 거둘 때까지 졸업장을 줄 것 같지 않은 학교 말입니다.
▲(청룡산 고스학 풍경).
청룡산 고스락에는 묘지 한 기가 있습니다.
후손들 손길에서 멀어진, 쓸쓸한 묘지 한 기.
▲왼쪽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가
오른쪽 회천에서 불어오는 바람보다 센 탓일까요.
나뭇가지들의 휘어진 방향이 오른쪽으로 많이 휘어졌네요.
▲분명 멧돼지들이 맛사지를 한 흔적일 겝니다.
놈들은 누워있는 나무둥치에도 마구 비벼대는 모양입니다.
▲손꼽아 헤어 보니, 山맛을 들인 햇수가 꽤 되었네요.
산에 들 때마다 새로운 시작이어서 늘 가슴이 설렙니다.
▲(207m봉).
▲한 봉우리, 한 산줄기 매 산행은,
일상에서의 기다림과 산의 유혹이 맺은 열매.
매 산행 때마다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질 때 질 값이라도, 그 꽃은 늘 흐드러집니다.
▲산속 풍경 하나하나를 만날 때마다
그 풍경을 만드느라 들인 세월의 수고를 알아야겠습니다.
▲저 나무는, 청태 옷을 곱게 걸치고 세월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세월은 때론 미움을 삭혀 살뜰한 사랑이 되게도 합니다.
▲(용머리산 고스락 풍경). 이름은 거창한데 풍경은 답답하네요.
▲산줄기 산행은 냉온탕을 무수히 반복하지요.
그 반복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무한정 유효합니다.
▲무슨 소용에 이바지하는 장치일까요?
요란한 소리가 온산을 울리는 듯합니다.
▲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느낌표입니다.
오르고 내리면서 그것은 물음표로 바뀌곤 하지요.
▲사람의 삶은, 인연의 사슬로 엮인 한바탕 꿈일 텐데....
사후에도 인연의 끈을 연장하려고 하는 게 부질없어 보입니다.
▲(연동고개).
▲마음의 작용이 없는 존재를 무정물이라 하고,
마음의 작용이 있는 존재를 유정물이라 칭한다면,
무정물은 유정물들의 더 물러날 곳 없는 피난처가 되지요.
▲의식의 매개 없는 무정물을 궁극적인 위안처로 생각하는,
대표적인 위인을 물색하다가 五友歌의 고산 윤선도를 만났습니다.
水石松竹月,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닌 다섯 존재를 절친으로 삼았겠지요.
▲산으로 산으로 향하는 마음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나’와의 독대를 위한 두려운 준비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67번도로 아찔한 난간 위에 섰습니다.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삶은, 시간이라는 바퀴에 잠깐 실렸다가 굴러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측을 바라보니, 소학산이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네요.
▲산줄기라는 바퀴살을 잡은 지금은 기복이 심하지만,
언젠가는 굴대의 중심인 부동의 一點에 도달하겠지요.
▲도로 건너 올라야 할 계단이 덤불옷을 잔뜩 껴입고 있네요.
▲흠뻑 젖고 나면 비 맞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걸 잘 압니다.
▲고개 양쪽의 계단이 협박이라도 하듯이 으시댑니다.
산을 자꾸 오르내리다 보면, 결국 부동하는 한 점에 수렵하겠지요.
▲원점,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또 오릅니다.
여태 던졌던 무수한 질문의 해답이 거기 있지 않을까요.
▲(돌아보기). 내려왔던 길이 아찔합니다.
시간이라는 바퀴가 아무리 굴러가도,
굴대의 중심에선 부동하는 평화가 자리하지요.
거기에 다가섬으로서 한 시야를 얻게 되는 것이고요.
▲현실이 힘겨울 때는 老莊으로 도망치고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바로 힘을 얹어주는 산이었습니다.
▲시간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능선을 걷다보면,
원망의 대상이던 것들이 속죄의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107.7m봉 풍경). 이 봉에 올라서니,
벌써 합수점에 이른 듯 마음이 풀어집니다.
▲107.7m봉에서 방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좌측으로 내려서는 바람에 지금은 헛돌이중입니다.
▲(현재위치 1).
다시 마루금에 붙았더니,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푸근합니다.
▲<합수점 언저리 개념도>.
▲(현재위치 2).
객기2배수장이 회천으로 통하는 수문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네요.
▲(객기2배수장).
드디어 강둑에 올라섰습니다. 눈이 열리고 가슴이 넓어집니다.
▲산자락 육즙이 켜켜이 묻어있는 쫀득한 풍경을 끌고와서,
합수점 근처에 은근슬쩍 뿌렸더니 산행의 맛이 제대로 우려집니다.
▲아,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사이를 흐르는 강, 낙동강!
무수한 산줄기를 끌어안으며 이 땅의 생명밭을 일구는 강줄기.
▲낙동강과 회천이 몸을 섞는 현장을 바라봅니다.
좋은 상상력으로 행간을 부풀리니 영혼이 깨끗이 소독되는 듯합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부러 산자락의 정서에다 사이클을 맞추었더니,
오르는 숨결에 산내음이 한통속으로 실려왔지요.
산길 풍경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그속에 찐 동화되어 엑스터시 상태가 되었답니다.
몸속 나이테로 세월을 새기는 나무가 좋습니다.
‘오늘’은 늘 여생의 첫날, 세월이 길러낸 열매!
오늘은 추석, 이는 세월에 임의로 새긴 눈금일 뿐,
몸은 세월을 떠돌아도 마음은 주인노릇을 해야겠죠.
육즙이 켜켜이 밴 산을 자유자재로 흔드는 바람,
하늘 화폭에 멋진 그림을 그리는 구름이 부럽지요.
부쩍, 믿을 것은 자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낙동강과 회천의 합수점이 각인시켜 주었네요.
= 산행기를 읽어주신 귀한 당신, 늘 행복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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