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산행/계룡산

계룡산 시리즈 3 (갑사~천진보탑~금잔디고개~남매탑~큰배재~천정교)

범산1 2024. 4. 27. 14:55

천진보탑이 있어서 계룡산은 더 빛난다.

 

계룡산 수정봉 아래에 있는 천진보탑 모습.

 

Ⅰ. ( Prologue )

 

싱그러운 햇살 아래 봄빛은 눈부시게 퍼지고,

간질거리던 설렘은 포자처럼 산을 향해 퍼져갑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자연의 섭리는 변함이 없으니

산과 물의 끈적한 어울림은 한결 같은 순리지요.

 

산경표에선 山自分水嶺으로 관계를 설파했고

풍수지리에선 山太極 水太極으로 풀어주었지요.

 

산과 물이 태극 모양으로 어우러지는 형국.

오늘, 그 대표적 표본인 계룡산을 찾아갑니다.

 

금남정맥 마루금을 분수령으로 경계 지어

갑사계곡(남)과 동학사계곡(북)을 훑어보렵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4월 10일.

 

2. 누구랑 : 범산 홀로 오붓하게.

 

3. 어디를 : 갑사천진보탑~금잔디고개~남매탑~큰배재~동학사주차장.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여기는 계룡산 갑사 주차장.

범산을 택배해준 공주시 340번 시내버스가 떠나려 하네요.

일찌감치 한 표 행사하고 느긋하게 찾아온 계룡산입니다.

 

대전 유성구 충남대 정문에서 09시 35분에 출발한 버스는

현충원역을 09시 45분 경유해 갑사주차장에 10시 25분 도착했지요.

 

▲갑사보다 먼저 계룡산 자연성릉이 눈에 들어옵니다.

삼불봉과 관음봉 사이, 오돌토돌한 하늘금이 가슴판에 새겨집니다.

 

▲매사에는 순서가 있지요.

용천교를 건너 槐木大神을 찾아갑니다.

산에 들기 전, 괴목대신에게 인사를 차리는 게 도리인 듯하여.

 

▲천년 세월의 묵직함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전설의 고향’을 찾아온 듯한 묘한 기분에 젖어들더니,

뭔가에 취한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지요.

 

▲(갑사 불교문화유산 안내소).

‘안내소’가 ‘매표소’라는 말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다가옵니다.

 

▲(갑사 안내도).

갑사게곡에는 역사와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봄빛이 가득한 오늘은 문화재 위주로 둘러보려 합니다.

 

갑사는 국보 1점과 보물 6점을 품고 있는데,

갑사삼신불괘불탱(국보 298호)와 석가여래삼세불도(보물1651호),

월인석보목판(보물582호)는 특별한 날에만 공개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확인 가능한 보물들만 눈과 가슴에 새겨보려 합니다.

 

▲우측 ‘자연관찰로’를 따라 갑사 철당간 지주를 만나러 가려구요.

 

▲(갑사 자연관찰로 안내도).

 

▲自然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요.

자연관찰로라는 명목으로 다듬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죠.

그러므로 모든 건 그냥 두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다음 주에 갑사황매화축제를 한다고 하더니,

발길 닿는 길섶마다 노란 황매화가 흐드러져 있었습니다.

 

▲(갑사 철당간 풍경 1). (보물 256호).

철로 만든 깃발 게양대. 그 희귀성에 의미가 주어졌나 봅니다.

 

▲(갑사 철당간 풍경 2).

이 철당간도 생존본능은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네요.

벼락을 맞아 일부가 훼손된 상태에서도 건재하니 말입니다.

연두빛과 화사한 산꽃들의 희망가가 철당간 주위에 가득합니다.

 

▲대적전 앞의 또다른 보물을 만나기 위해 계단을 오릅니다.

 

▲(대적전 주변 풍경 1). 갑사 승탑(보물 제257호).

대적전 앞에는 일반적으로 석탑이 있어야 되는데,

스님의 유골을 모시는 승탑(부도)이 있는 연유는 뭘까요.

 

▲(대적전 주변 풍경 2).

대적전 앞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백일홍 이름에 걸맞는 꽃을 보려면 몇 달은 기다려야겠네요.

 

▲갑사 동종이 모셔져 있는 종각입니다.

秋갑사라 했으니 가을에 단풍과 어우러지면 볼 만할 듯하네요.

 

▲종 표면에 먼지가 뽀얗게 옷을 입고 있네요.

온세상에 종소리를 울려 번뇌를 가시게 한다는 의미를 돋을새김합니다.

 

▲충남 유형문화재(제105호)였던 갑사 대웅전은

2021년 보물(제2120호)로 승격된 조선시대 건축물입니다.

다포식 건물에는 흔치 않은 맞배지붕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대웅전 뒤편 건물인데 문패가 없습니다.

누구는 국보 제298호(갑사 삼신불괘불탱)을 모셔놓은 건물이라던데...

 

▲저 건물도 문패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추측건대, 월인석보목판보장각이 아닐까 싶네요.

 

▲갑사의 문화재 순례를 마치고 허공을 올려다보니,

문필봉이 하늘금을 일필휘지로 힘차게 그어대고 있었습니다.

 

▲보물급 문화재의 눈요기로 지적 포만감이 빵빵해졌습니다.

이젠 몸뚱이를 굴려서 그 포만감을 삭힐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일부러 자신의 登力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강제로 조금씩 더 부지런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지금, 오름의 1차 목표는 신흥암.

1km 거리, 자신을 바짝 추슬러 속도를 내봅니다.

 

▲산행은 행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누려야 할 무엇이 되어야 하거늘,

아,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반대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네요.

 

▲갑사계곡을 통해 금잔디고개로 오른 기억이 까마득합니다.

까마득한 기억 속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왼쪽 계단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용문폭 왼쪽 등산로는 낙석위험으로 폐쇄되었다고 하네요.

 

▲동학사계곡에 은선폭포가 있다면 갑사계곡엔 용문폭포가 있지요.

 

금잔디고개를 경계로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칭 구조가 있습니다.

 

갑사계곡에 甲寺九曲이 있다면 상신계곡엔 龍山九曲이 있다는데....

갑사구곡은 한일합병의 매국노 윤덕영이 개인별장용으로 새긴 것이고,

용산구곡은 구한말 학자인 권중면이 합방의 울분을 토하며 새긴 것이라.

 

지금 여기 바위에 음각된 龍門瀑 八曲은 갑사구곡 중의 하나.

자연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거늘

인간들은 왜 그 존재를 인증하려고 부질없이 욕심을 부리는 걸까.

 

▲용문폭포 옆길의 낙석위험을 피해 가파른 계단길을 오릅니다.

쉽게 생각했던 나약함의 자리는 현실적인 헉헉거림으로 대체되었구요.

 

▲폭포를 까마득하게 내려다보며 이어지는 우회길. 살 떨립니다.

 

▲히죽히죽 웃으며 오릅니다.

그게 봄 기운이 한창인 산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 같아서.

 

산기운이 집약된 곳을 오르면 날개를 단 것이나 진배 없지요.

드디어 1차 목표치로 설정했던 신흥암까지 발걸음이 이어졌네요.

 

▲신흥암을 받쳐주고 있는 암봉의 기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水晶峰의 맑고 강한 기운이 온 산자락을 휘감고 도는 듯합니다.

계룡산 기운이 뭉쳐있는 곳이 수정봉 아래 신흥암이라고들 하지요.

 

▲나한전 지붕 위로 볼록 솟아오른 바위가 보이시죠.

부처님 진신사리가 묻혀있다는 천연돌탑 天眞寶塔입니다.

 

▲천진보탑에서는 가끔 빛을 발산한다고 합니다.

야간에 放光할 때, 불이 난 것 같은 장면이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지요.

 

▲천진보탑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서,

신흥암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200 나한을 모신 나한전, 부처님을 대신한 천진보탑이 보인다 해서

통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집중해서 바라보았지만 그저 봄빛만 가득했네요.

육안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닐진대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죠.

 

▲산신각 앞으로 천진보탑 가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신흥암 山神閣 풍경).

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산신령은 마음속 理想型이 아닐까요.

 

▲천진보탑으로 향하는 길은 봄기운과 산기운이 합일하는 길이고,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떠나고 새 기운이 다가오는 시간이지요.

 

▲고즈넉한 산길 모퉁이에 침묵이 흐르고 있습니다.

나중에 산모퉁이를 만나면 이 길이 생각날 것 같네요.

 

▲(천진보탑 풍경 1).

어떤 풍경을 보는 순간, 훅 들어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요.

그래서 그 풍경이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란 걸 예감하게 됩니다.

지금 천진보탑을 목도하는 이 순간이 바로 그때임을 절감합니다.

 

▲(천진보탑 풍경 2).

평온함과 정갈함이 어울리고, 더 붙일 말도 꾸밀 필요도 없는 풍경.

 

▲(천진보탑 풍경 3).

사람은 모두 언젠간 죽게 되는 한계치들입니다.

빨리 죽거나 늦게 죽는 차이가 있을 뿐이겠지요.

 

▲(천진보탑 풍경 4).

천진보탑 앞에서 어쩐지 말하고 싶어집니다.

한계치를 떠올릴 때의 이해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서.

 

▲(천진보탑 풍경 5).

절간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니 꿈을 꾸고 있는 듯합니다.

 

▲신흥암을 나서는 기분은?

선물 받은 기분!  두려울 정도로 내적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금잔디고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오릅니다.

뭐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느 차선으로 가든, 어떤 속도로 가든,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겠지요.

 

▲산과 범산 사이의 정서적 거리가 많이 좁혀졌습니다.

산으로 인해 자신이 통째로 바뀌어버렸음을, 차차 알게 되었지요.

 

▲현호색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꽃말이 ‘희소식’이라는데, 결국은 봄소식으로 다가왔네요.

 

▲(금잔디고개).

 

▲“넌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야.”

금잔디고개에서 삼불봉고개로 접근하면서,

아담한 산길에게 넌지시 건네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노랑제비꽃이 바위틈에 ‘수줍은 사랑’으로 피어있었습니다.

 

▲단단히 미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룡산에? 이 고즈녁한 산길에. 나른한 봄날의 분위기에.

 

오늘의 작은 걸음이 산사랑의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시 올게.” 몇 번이고 이 말을 산을 향해 던지고 싶었습니다.

 

▲(삼불봉고개).

 

▲삼불봉고개를 분기점으로, 줄곧 오르막이던 산길이,

내림길이 대세를 이루는 산행 흐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남매탑 부근 풍경 1). 상운암이 앉아있는 자리가

신흥암이 앉아있는 자리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네요.

 

▲(남매탑 부근 풍경 2).

애틋한 의남매의 전설이 현재시점으로 환승한다면 어떨까?

인사치레 생략하고 본론부터 꺼내고, 에둘러 말 않고 단번에 털어놓고...

그러면 그들 사이 어색함이 이 봄날처럼 후다닥 사랑으로 오지 않았을까.

 

▲동학사로 바로 떨어지는 코스도 낭만적이지만,

오늘은 남매탑~큰배재~천장골 코스가 선택을 받았습니다.

 

▲뭐야, 깜빡이도 안 켜고 노선을 바꿔?

뒤에서 동학사 하산길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리는 듯합니다.

 

▲입맛이 돌아서 정신없이 먹게 되는 걸신 들린 먹방처럼,

산을 만날 때마다 설렘은 넘쳐서 과잉된 감정이 되곤 합니다.

 

▲(상신탐방지원센타 갈림길).

용산구곡에 담긴 애틋한 기상이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용이 태어나 승천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설정하여,

자연과 소통하며 국권회복의 염원을 바위마다 새겨 넣었다는데.

 

▲(큰배재).

 

▲일상에서 산으로 탈출해 해방을 갈구했으면서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사람이 그리워짐은 또 무엇으로 설명할 건가.

 

▲토끼처럼 커다랗고 놀란 눈으로 산자락을 돌아봅니다.

팔다리 다 잘린 저 나무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또 무언가.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

천진보탑 앞에서 지레 걱정했던 생각이 우스워졌습니다.

 

무너질 듯한 자연석굴을 보호하려는 정성이 갸륵합니다.

아예 등산로 방향을 변경하여 접근을 차단하는 방법을 썼네요.

 

▲자연보호 차원의 시설물들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그냥 그대로 두어서 좋은 것과 손을 대서 보호하는 게 좋은 것.

매사 중요도의 순서를 알아가는 게 나이 먹는다는 거겠지요.

 

▲오늘도 저 계곡물처럼 끝없이 흘러갑니다.

희망에 수반된 절망과 반복되는 일과를 땀처럼 뒤집어쓴 채로.

 

▲천정교 앞에서 실질적인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먼지털이 기계로 산을 털어내며 일상 복귀를 준비합니다.

 

▲휴일을 완성시켜준 계룡산, 고마워.

동학사 주차장 근처에는 연두색 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기지개를 켜는 산들의 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푸릇푸릇 움트는 봄빛깔을 직접 보고 싶었지요.

산에서, 몸은 뜨거워지고 정신은 차가워집니다.

오르면서, 몸과 마음의 평화까지 욕심냈답니다.

괜스레, 산이 삶의 근원인 탯줄로 여겨졌습니다.

 

올라도 올라도 질리지 않는, 진국 같은 계룡산,

산에 들면 기다리던 기운이 꽃처럼 피어납니다.

겨울이 지나간 곳에 봄빛이 수정처럼 반짝이고,

천진보탑에선 계룡을 관통하는 힘이 느껴졌지요.

그건 언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토닥임이었네요.

 

읽어주신 귀한 당신, 행복한 나날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