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선을 넘었다. 대자암 능선을. ▣
▲은선폭포 근처에서 바라본 황적봉 풍경.
Ⅰ. ( Prologue )
아직 봄이 머무르고 있을 산이 그리웠습니다.
산! 하고, 살짝 혀 끝을 감질나게 굴려보니
실바람 같은 자유가 가슴에 깃드는 듯합니다.
산만으로도 내 삶의 복은 차고 넘친다 봅니다.
산을 향한 내 마음의 기울어짐을 등에 업고,
오랜만에 선을 넘고 싶었지요. 비등의 선을.
문득 대자암능선의 岩香이 코끝을 스쳐갑니다.
좌표를 대자암능선 어름에 찍고 집을 나섭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5월 12일 (일요일).
2. 누구랑 : 범산 홀로 사브작 사브작.
3. 어디를 : 갑사~대자암 능선~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유성온천역에서 갑사행 버스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새벽까지 뿌려대던 5월의 봄비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5월의 아침은 산으로 향하는 길을 기분좋게 열어주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괴목대신은 갑사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늘 그랬던 것처럼 괴목대신 앞에서 입산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괴목대신도 녹색 덩굴 옷으로 치장을 하고 한껏 멋을 내고 있었네요.
▲사갑산룡계,
누군가 갑사 일주문 문패를 읽고 있었습니다.
산뜻한 미소가 산자락 들머리를 감돌며 흐릅니다.
▲자연관찰로가 묘한 매력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이 길을 참 좋아합니다.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계곡물은 몸집을 불렸고,
녹음은 조금 더 짙어져 봄볕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초미세먼지가 빨간 기둥이라고 기상청은 얼러댔지만,
산속에는 해맑은 봄바람과 봄햇살이 내려앉고 있었구요.
▲자연의 벅찬 선물에 기분이 완전 업 되어,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꼭 다물고 걸어갑니다.
▲저 다리 건너면 누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알면서도 설레면서, 이 봄날의 한때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비 온 뒤의 햇살은 늘 마음을 해맑게 청소해줍니다.
▲오늘, 갑사 철당간(보물 256호)에는 파란 하늘이 펄럭이고 있네요.
▲갑사 승탑(보물257호) 주변 대적전 뜨락에는
젊은 스님 염불소리가 우렁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종교에는 문외한이지만, 맑은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듯합니다.
▲산자락 저 어디선가 쑥국새 소리가 들려오는데,
길은 두 갈래로 갈라져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 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모두 마음에 평화를 줄 것이나,
오늘은 선을 넘기로 작정한 터라 대성암 쪽으로 향합니다.
▲귀청을 때리는 계곡물 소리에 둘러싸인 채 오릅니다.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일상의 먼지는 하나씩 털어지겠지요.
▲설렘은 봇물 터진 듯 등을 떠밀고,
발걸음은 날개 달린 듯 무게를 덜어냅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네요.
▲포장 산길은 낯설게 모퉁이를 휘감고 돌고.
범산은 오를수록 낯빛에 생기가 돌고 있었지요.
▲대성암 옆의 의승장 영규대사 추모공원.
죽창, 주먹밥, 새탑 등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이채롭네요.
▲대성암에서 대자암으로 돌아드는 산자락 모퉁이.
부시시 깨어나는 오감을 안고 바람처럼 스며듭니다.
▲무슨 시설물인지, 무슨 인연으로 길 안내를 자청하는 지.
▲낮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섰더니,
대자암이 우측 아래에 정좌해 있었습니다.
▲기지탑 시설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산길 상태가 거칠어지기 시작합니다.
▲산자락이 까칠해질수록, 신경이 곤두서고,
오직 산을 오르고 있는 자신만이 남게 되는 아이러니.
▲자신을 돌아보며, 현재 위치(포인트 1)를 확인합니다.
▲(포인트1 풍경 1). 바위에 와닿는 아귀의 느낌이 너무 황홀합니다.
위험해질수록 짜릿함이 증가되는 등가교환의 개념이 적용되는 거겠죠.
▲하늘을 겨냥하는 바위대포의 시건방짐도 목격하고.
▲한 스텝 한 스텝, 사이사이에 신경을 집중시킵니다.
암면에 와닿는 까슬한 아귀의 느낌을 즐기며 오릅니다.
▲(포인트1의 조망 1).
허공에 날카롭게 금을 긋고있는 금남정맥 마루금입니다.
▲(포인트1의 조망 2).
포인트1~ 포인트2 구간이 대자암 능선의 하이라이트.
▲(포인트1의 조망 3).
관음봉~연천봉 구간의 오돌토돌한 하늘금이 가슴을 뒤집어놓았네요.
▲포인트1 지점의 하산 암릉이 아찔합니다.
보조자일이 필요한 구간, 우회하는 안전 루트를 택합니다.
▲돌아보고 건너다보면서,
거듭 현재 위치(포인트2)를 확인합니다.
▲(포인트2 풍경 1).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미세한 크랙과 조그만 홀드 뿐.
내가 얻은 것은 아주 큰 성취감과 내적인 해방감이지요.
▲(포인트2 풍경 2). 바위에 뿌리를 내리는 것.
그 불가사이한 일을 한 그루 소나무가 해내고 있었네요.
▲(포인트2 풍경 3).
포인트2의 정점에서 또 하나의 기이함을 목격합니다.
바위투성이에 생명이 들어가 누에고치로 빙의된 모습....
▲(포인트2 풍경 4).
이 대자암능선의 아기자기함에 푹 빠진 덕분에,
작은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멋진 풍경을 날로 먹고 있네요.
▲(포인트2 풍경 5). 아, 오늘 여기 오길 참 잘 했다.
일상이 막막할 때마다 들러서 한 시름 놓았다 가야겠다. 음...
▲(포인트2 풍경 6).
대자암 능선은 능선에 악어 한 마리 키우고 있었네요.
계룡산의 품은 도시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푸근했습니다.
▲(포인트2 조망 1).
돌아보니, 대자암능선 좌우로 날개를 펼친 듯
계곡과 능선이 쌍으로 날아오르고 있는 형국이네요.
▲(포인트2 조망 2).
초미세먼지가 빨간 기둥이라더니, 실감이 납니다.
▲(포인트2 조망 3).
팔재산이 금남정맥의 계룡산 기운을 이끌고 있네요.
▲(포인트2 조망 4).
공주대간도 금남정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 죽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형국으로 비칩니다.
▲(포인트2 조망 5).
수정봉 아래 신흥암은 천진보탑 덕분에 포근함을 잃지 않고 있구요.
▲(포인트2 조망 6).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신흥암의 앉은 자리가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포인트2 조망 7).
우주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훨 짧은 지구 나이에 비한대도
‘삶은 너무도 찰나’라고, 금남정맥 마루금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포인트2 조망 8).
아, 저 앞 봉우리만 넘어서면 자연성릉을 만나게 되겠지.
▲저 바윗길만 무사히 내려서면, 아슬아슬한 스릴은 마감되겠지요.
▲(돌아보기).
지뢰를 피하듯 살금살금 기어내려오던 암릉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국공의 레이다를 피해 사주경계를 하며, 제도권으로 진입합니다.
▲대자암 능선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이,
여운처럼, 매미 울음처럼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놓친 게 있는지도 모르지요.
여전히 산에게 묻습니다. ‘왜’와 ‘어떻게’의 답을 달라고.
▲초록으로 갈아입은 계룡산은 한결같이 아릅답습니다.
옷색깔 따위로 자신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쳐주고 있네요.
▲자연성릉의 한복판을 걷고 있으니,
몸 전체에 브레이크가 걸린 기분이 듭니다.
아름다움의 덫에 걸려 걸음이 자꾸 느려집니다.
▲좌측, 동학사 계곡은 동학사를 품고 자연미의 표본을 보여주고.
▲우측, 대자암 능선은 대자암을 품고 자연의 위대함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계룡산의 실질적 정상인 관음봉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우람함이 가슴을 파고 드는 느낌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노려보다가,
뾰족한 대책이 없음을 눈치채고 오르기 시작했지요.
▲오르다가 무심코 돌아보았더니,
자연성릉이 멋짐을 뿜뿜 뽐내고 있었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단이었는데...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자 5월의 햇살이 와르르 쏟아졌네요.
▲햇살과 함께 쏟아진 것은 생일 축하송이었는데....
‘happy birthday to you~’. 싱그런 청춘들이 부러웠답니다.
▲(관음봉 고개).
▲내려서는데, 전에는 없던 전망대가 나타났네요.
그러고 보니 이쪽 코스로 산행했던 기억이 까마득합니다.
계룡산에는 세월의 잣대 역할을 하는 것들이 꽤 많네요.
▲두 팔 벌리면 안겨올 것 같은 동학사계곡입니다.
두 팔로 끌어안는 심정으로 한 걸음씩 내려갈까 합니다.
▲국립공원은 왜 이리도 많이 산에 손을 댄 걸까요.
自然이라는 말의 뜻을 해석할 줄 모르는 바보들일까요.
▲생존의 힘겨움이 묻어나는 풍경이네요.
이렇게라도 해서 살아내야지요.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계룡산에는 변한 것보다는 변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지요.
속을 비워낸 저 나무는 세월의 저편 기억에도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은선산장 옛터는 구수했던 커피의 기억으로 살아있습니다.
▲산장 옛터는 ‘은선폭포 상단’이라는 이정표가 대신하네요.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새 한 마리 포르릉포르릉, 울고 있습니다.
궁금해집니다. 산장지기(김기순) 할머니는 어디에 계신지, 잘 계신지...
▲오랜만에 와 본 은선폭포 코스는 추억여행이 되었는데....
생각이 띄엄띄엄 잘려나갑니다. 시간도 듬성듬성 사라지고 있습니다.
▲(은선폭포 풍경 1).
제 기억의 마지막은 은선폭포 전망대가 갓 설치된 시점일 겁니다.
▲(은선폭포 풍경 2). 오늘은 복 받은 날입니다.
찾아올 때마다 바짝 마른 허울만의 폭포였었는데,
은선폭포의 흰 물줄기를 볼 수 있고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은선폭포 풍경 3).
녹음이 너무 짙어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던 산이었는데...
지금 귀에 걸린 건, 시원하게 귀청을 씻어내는 폭포의 물소리입니다.
▲아, 여기도 국공에서 손을 댔군요.
손을 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산길을 새로 뚫었네요.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도로를 횡단하는 새끼 두꺼비가 된 기분입니다.
▲그나마 멋진 조망을 제공하니 감사해야 할까요.
▲좌측, 송곳처럼 뾰족한 황적봉 모습이네요.
시원하긴 한데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어납니다.
▲우측, 쌀개봉이 금남정맥과 관암지맥을 교통정리 중입니다.
▲새로 낸 산길은 여기서 옛길과 합류합니다.
출입금지 목적은 낙석방지, 출입금지 근거는 자연공원법이랍니다.
엎질러 진 물, 새로 뚫은 산길이라도 잘 관리되기를 기원해야겠지요.
▲香牙橋를 건너면 산행은 끝난다고 봐야겠지요.
말 그대로, 다리를 건너면 ‘향기로운 싹이 트는’ 경계로 들어서는 걸까요.
▲젊은 기운이 움트는 오월의 신록 사이를 걸어갑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젊은 산을 닮아가는 사람이고 싶답니다.
▲맑은 물이 동학사 계곡 암반을 씻으며 흘러가고 있네요.
▲계곡을 깨끗이 씻어내리는 변함없는 물처럼,
마음 속 먼지를 깨끗이 씻어내는 산사람이고 싶습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능선에서 해바라기를 하기 딱 좋은 날이었네요.
입산 순간부터 유체이탈 모드로 변환되었고,
암릉 위 해바라기는 사념을 씻는 일광욕이었지요.
선답자들 흔적은 뒷사람 걸음의 밑거름이 되지요.
그에 대한 마음 빚이 대추나무에 연 걸린 듯하여,
대추나무처럼 우뚝 서서 허허롭게 쉬 흔들렸네요.
득달같이 안겨온 대자암능선이 아직 삼삼합니다.
그 설렘의 편린들을 모아 우려낸 산행기입니다.
부디 인터넷을 타고 ‘맑음’으로 전달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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