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룡산에서 태극을 그리다. ▣
▲호랭이 능선에서 바라본 자연성릉.
Ⅰ. ( Prologue )
스님, 스님, 불 들어가요.
다비장에서 火棒을 들고 唱魂하는 소립니다.
나무요, 나무요, 톱 들어가요.
벌목장에서 톱을 대기 전 둥치 두드리는 소립니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범산 들어갑니다.
입산하면서 범산이 산에게 신고하는 소립니다.
범산 나이 쬐금 먹었지만 山 나이에 비할까.
세상을 오래 산 산의 혼을 욕보여선 안 되겠죠.
산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수정암릉과 호랭이능선에 자신을 비추어 볼랍니다.
Ⅱ. 산행 얼개
1. 언제 : 2024년 5월 26일 (일요일).
2. 누구랑 : 범산 홀로 호젓하게.
3. 어디를 : 갑사~신흥암~수정암릉~자연성릉~호랭이능선.
Ⅲ. 산행 지도
Ⅳ. 산행 흔적 및 느낌표 버무리기
▲근래 들어,
산행을 갑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오늘도 산행 코스를 구상하면서,
유성에서 출발하는 340번 공주 시내버스를 떠올렸습니다.
갑사 입구 괴목대신을 먼저 뵙는 것은 통과의례가 되었네요.
▲갑사를 바람처럼 스치는 것도 통과의례가 되었구요.
▲용문폭포 등등, 통과의례를 죄다 치르고 나니,
어느 듯 오늘의 산행 출발점인 신흥암에 이르렀네요.
▲오늘의 설렘 꼭지점인 수정암봉이,
신흥암 요사채 지붕 위로 봉긋 떠올랐습니다.
▲나한전 지붕 위로는 천진보탑이 달덩이처럼 떠올랐구요.
▲천진보탑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분이 계셨네요.
여느 때는 산신각과 천진보탑을 만나러 가는 길목이지만,
오늘은 수정암릉을 만나러 가는 특별한 길목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까칠한 수정암봉이다 보니, 매양 빈산이기 일쑤지요.
인적이 드문 빈산을 생각하면 가슴 속에서 허기가 일어납니다.
▲지도를 펴놓고 오늘 산행구간을 짚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태극 문양의 생김새가 만들어졌습니다.
수정암릉~자연성릉~호랭이능선이 태극을 긋고 있었네요.
▲천진보탑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성지순례길이죠.
물론 범산에게는 聖山순례길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때깔 좋은 소나무가 천진보탐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천연 석탑인 이 바위가 마음에 평화를 선물하고.
▲천진보탑의 모습은 풍경이라기보다는,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기호로 새겨지는 수수께끼겠지요.
▲유리문 달린 토굴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는데...
보잘 것 없는 불목하니 눈에는 답답해 보이는 공간이었네요.
▲산길이 조금씩 까칠해지기 시작합니다.
▲멀리 관음봉~ 연천봉 라인과 앞줄의 대자암능선이 말을 걸어옵니다.
잊지 마. 산사람의 제일 덕목은 안전이야.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상체는 단단한 고사목, 하체는 빛깔 좋은 청솔가지!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 이야긴 들어봤어도
상반신 하반신이 각각 다른 나무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네요.
찾는 이 별로 없는 암릉에 뿌리를 내리고 세월을 삭히는 모습입니다.
▲기슭까지 날 데려다 준 오솔길은 자취를 감추고
눈 앞에는 따끈따끈한 바윗길이 대기하고 있었네요.
▲산에 길들여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암봉 꼭대기 풍경이 별이라도 딴 기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금정산과 달마산에는 금샘, 그럼 수정암봉에는 수정샘?
사람은 산을 바라보는 눈에 자기가 가진 무한한 개념을 투영시키기 마련이죠.
▲집을 나설 때 온통 설렘 만땅이던 마음은,
점차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바윗길을 찾느라 마음은 분주하기만 한데,
청솔은 어깃장을 부리며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고.
▲바람은 더위를 쫓아주며, 암벽 사이를 쓸고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오늘 구간 최대 난코스가.
이 고비에 대비해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암벽화까지 꺼내 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그림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재보고 읽어보고...
머릿속에 그리던 그림보다 훨씬 급경사인지라 꼬리를 내리고 말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좌측 사면으로,
덜 위험한, 그래도 꽤 신경 쓰이는, 차선책이 있었네요.
▲어려운 코스를 해결하고서 내려다보는 기분,
이 짜릿한 맛에 빈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가 봅니다.
▲한참을 멍 때리고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쉬운 산길만 다니면 꼭 신 신고 발바닥 긁는 것 같아 성에 차지 않지요.
▲한 코스를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숙제가 주어졌네요.
숙제마다 나름의 세계가 열리는 듯이 깨우침의 순간이 있었네요.
▲지나온 길 돌아보면, 시간이 아득히 과거로 떠나고 있었습니다.
▲세월의 눈이 해골의 눈으로 은유처럼 박혀,
인생 무상을, 아니 인생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현재 위치). 쉬운 길을 걷든, 어려운 길을 걷든,
현재의 위치를 알아야 뭔가를 도모할 수 있겠지요.
▲(수정암봉 풍경 1).
계룡산은 범산에게 여느 산이 아니라 聖山입니다.
▲(수정암봉 풍경 2).
진행방향 우측 아래, 소위 ‘작은 수정암봉’이 선을 보이고.
▲(수정암봉 풍경 3).
수정암봉의 실질적인 고스락 풍경입니다.
▲(수정암봉 풍경 4). 신흥암 지붕을 내려다 보니,
쫄깃했던 기억이 뭉클뭉클 구름처럼 피어오릅니다.
▲(수정암봉 조망 1).
수정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보면서 또 다른 산을 꿈꿉니다.
▲(수정암봉 조망 2).
삼불봉 모습이 계룡산의 상징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네요.
▲(수정암봉 조망 3). 괜히 질투가 일어 부러운 생각이 밀려옵니다.
수정암봉은 늘상 저 멋진 연천봉 라인을 보고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수정암봉 조망 4).
웅숭 깊은 갑사계곡의 아우라가 가슴을 헤집고 들어옵니다.
▲(수정암봉 조망 5).
만학골재로 향하는 금남정맥의 도도함을 새삼 재발견합니다.
▲무아지경에 빠져 아무 생각없이 산길을 걸어갑니다.
이 순간은 산과 하나가 되어 그저 걷기만 할 뿐이었네요.
▲(돌아보기). 지나온 길을 복습하는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빈산에도 선답자들 체취는 세월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산은 수시로 자객을 보내 유혹합니다.
수정암봉을 찾지 않았다면 저 소나무의 고고함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산에 대한 끌림은 일상의 고단함에 내지르는 빗장이지요.
일상의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여유를 산이 찾아주곤 합니다.
▲수정봉 근처에서 바라보는 삼불봉 모습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격정적 땀방울과 실용적 해방감의 漸移지대에 계룡산이 있습니다.
▲수정암봉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서,
금잔디고개에서 자연성릉의 경계로 접어듭니다.
▲산딸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산자락을 화사하게 치장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계룡산 자연성릉 주능선에 붙었습니다.
3단계(수정암릉, 자연성릉, 호랭이능선) 중 2단계에 접어든 셈이죠.
▲잠깐 삼불봉을 바라보다가 눈에 셔터를 내렸습니다.
지나쳐온 삼불봉에 대한 어떤 미련도 유혹도 차단하기 위해서.
▲(자연성릉 갑사계곡 방향 조망 1).
연천봉능선과 대자암능선이 나란히 사이좋게 날아오르고.
▲(자연성릉 갑사계곡 방향 조망 2).
자기 안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듯, 걸어왔던 수정암봉을 바라봅니다.
▲(자연성릉 갑사계곡 방향 조망 3).
금남정맥이 수정암봉과 함께 만드는 콜라보도 보통내기는 아니네요.
▲사람 사는 풍경이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지요.
금슬 좋은 가족의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 아닐까요.
▲호랭이능선을 눈으로 따라가 봅니다.
▲호랭이능선을 코 앞에 놓고 보니,
갑자기 배속이 텅빈 듯 허기증이 몰려옵니다.
▲(호랭이능선 분기점).
삼불봉과 관음봉 사이, 딱 중간 지점입니다.
▲현재위치(포인트1).
▲‘탐방로 아님’ 표지판이 친절하게도,
‘호랭이능선’ 길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길눈 돋보기를 조금만 들이대면, 희미하게나마 걸음 흔적이 비칩니다.
▲현재 위치 (포인트2).
(포인트2 풍경1).
길 없는 능선을 따라 가면서 생기는 의문 하나.
나는 왜 이 능선을 헤매면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거지?
▲(포인트2 풍경2).
호랭이능선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자연성릉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포인트2 조망 1).
언제 어디서 보아도 멋들어진 천황봉~쌀개봉입니다.
▲(포인트2 조망 2).
중앙의 칼릉은 예리하게 칼날을 벼리고 있고.
▲(포인트2 조망 3).
관음봉에서 자연성릉으로 연결되는 천하 비경을 대하고 보니,
흥분이 수직으로 솟구치는 것 같아 일단 머릿속 두꺼비집을 내렸지요.
▲(포인트2 조망 4).
이 비경을 오롯이 감상하기 위해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었던가 봅니다.
아니, 이런 비경을 만나기 위해 여태 그리도 계룡산을 찾았던가 봅니다.
▲(포인트2 조망 5).
호랑이 머리를 바라보면서 이 자리에 서 있음이 뿌듯해졌지요.
▲(포인트2 조망 6).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릉은 또 어떤가.
여태 발견하지 못했던 계룡산의 진면목에 새삼 새 눈을 뜨게 됩니다.
▲호랑이 몸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보되었던 빗방울이 후둑이기 시작하는 가운데,
여태 만나지 못했던 야생 호랑이 등에 올라탔네요.
▲숨어있었던 호랑이가 비경의 형태로 변신하여 나타났네요.
아찔한 풍경을 등에 업은 호랭이 능선은 신나는 놀이터였답니다.
▲오늘, 빈 호랭이능선에서 조망이 열릴 때마다,
산과 범산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깝고 편한 사이가 되어 갔네요.
▲야생의 산자락을 훑으며 걸어가노라니,
방귀 뀌듯이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왔지요.
야생의 진풍경 속에 마음이 허물없이 열렸기 때문이겠죠.
▲오뚝한 조망처를 발견하고선 습관처럼 걸음이 빨라졌네요.
▲현재 위치 (포인트3).
▲(포인트3 풍경).
호랑이 꼬리 부분으로 접근할수록 고도는 낮아졌지만,
군데군데 열리는 조망의 미학은 점점 도를 더해 갔습니다.
▲(포인트3 조망 1).
드론의 시각으로 내려다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네요.
동학사가 깔고앉은 터가 날개 달린 거대한 생명체의 심장에 해당한다고.
▲(포인트3 조망 2).
고도가 낮아져서인지 쌀개봉 능선이 엄청 높아 보입니다.
그 앞에 휘늘어진 솔을 배치했더니 운치가 한층 업 되었습니다.
▲(포인트3 조망 3).
조망처에 앉아서 쓰다듬듯이 자연성릉을 바라봅니다.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으로 자부심을 묻어 둡니다.
▲(포인트3 조망 4).
풍경의 압권이네요. 자연성릉과 호랭이능선의 합작품.
▲(포인트3 조망 5).
삼불봉 주변 암봉들을 훑어가는데, 뚝, 갑자기 필름이 끊겼네요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다르지 않지만 다른,
제 각각의 아름다움이 봉마다 뿜어져나와 소화하기가 힘들었답니다.
▲(포인트3 조망 6).
尋牛精舍의 앉은 자리가 절묘하네요.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를 찾는 과정보다 쉬울까요.
▲저 소나무, 꿈틀대며 하늘로 날아갈 듯한데....
기대와 실체의 괴리 앞에선 소신껏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중요하겠죠.
▲현재 위치 (포인트4).
▲터덜터덜 구루마길이 고속도로를 만났습니다.
낙석 위험 때문에 기존의 은선폭포길이 이렇게 변경되었다는데.
▲호랭이 꼬리 부분에서 일반 등산로로 환승했네요.
▲호랭이능선 꼬리가 일반 등로에 밟히는 바람에
땅속에 계신 저 분만 좋아졌네요. 심심하지 않게 되어서.
▲새로 개설된 데크 시설 덕분에
다리품은 더 팔게 되었지만 조망의 즐거움은 배가되었네요.
▲산사람은 경청하고, 반응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산이 선물하는 시원한 조망 앞에서 쌓인 먼지를 털고 싶은 거지요.
▲현재 위치 (포인트5).
▲ 파악할 수 없게 비등의 가림막으로 막혀있는 호랭이능선이
파악하기 어려운 삶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건 아이러니합니다.
▲비등의 명목으로, 제발 빈 산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합수지점에서 호랭이능선은 꼬리를 완전히 내렸습니다.
호랭이능선에 올라탔던 기세로 일상을 경작해 나가고 싶습니다.
Ⅴ. 산행 기록
Ⅵ. ( Epilogue )
산은 모습을 송두리째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산풍경은 보는 각도, 계절, 마음상태에 따라 다르죠.
산꾼은 발걸음으로 산세상의 순수를 겨냥하지만
그때마다 떨어지는 것은 희미한 발자국에 불과하죠.
산을 볼 때마다 마음 속 빈자리를 떠올립니다.
빈산을 보고 있으면 잊었던 허기가 일어납니다.
산꾼에게 산은 해방구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지요.
수정암릉과 호랭이능선은 聖山으로 가는 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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